한겨울 쌀쌀한 바람을 가르고 영산강 둑길을 달린다. 나주 혁신도시에서 나주시청 가는 쪽으로 영산강 둑길을 한참이나 달리자 휑한 들판에 야구장이 나타난다.

전남 나주시 영산강변 영산동 저류지, 야구장 4개면이 칼바람을 맞고 서 있다. 하천부지, 유휴공간에 번듯한 야구장이 들어선 것이다. 마사토로 그라운드를 정돈하고 배수시설을 갖춘 그럴싸한 야구장이다. 타 지역에서 부러워할만한 규모다. 단지 겨울철 전지훈련을 하기엔 부대시설이 없는 게 흠이라면 흠일 뿐 손색이 없다.

이 정도의 야구장이 나주시에 들어서게 된 데는 순전히 오리 궁뎅이, 김성한 전 기아 타이거즈 감독(58)의 정성어린 염원과 발 빠른 행동에 의해서다.

김 전 감독은 2011년 나주 임성훈 시장과 의기투합해 전국 유소년, 초등 및 중등 야구대회를 유치했다. KBO 기술위원이던 시절, 나주에 전국대회 유치에 성공했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야구장 조성에 나섰다.

야구 불모지인 나주에 대회를 유치하기도 힘들었지만 야구장 조성문제도 만만치 않았다. 일단 대회 유치에 성공하자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야구장을 만들어야 했다. 처음엔 남평에 만들기로 했으나 예산이 여의치 않았다. 마침 4대강 개발의 대상이었던 영산강의 드넓은 저류지가 적격으로 부각됐다. 그러나 그곳을 야구장으로 조성하려면 예산을 조성해야 했다.

지자체에 여유자금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불철주야로 뛰어다니며 일을 성사시킬 궁리를 했다. 완전 무대포로 일을 몰아붙였다. 때마침 4대강 개발이 한창 진행됐고 그 사업의 일환으로 야구장 건립을 추진했다. 무대포가 효과를 발휘하던 순간이었다.

사방을 쫓아다니며 야구장의 존재 이유를 설명했다. 그렇게 밀어붙였다. 그 결과 어느 지역에서건 찾아볼 수 없는 4개 야구장이 2만여 평에 만들어졌다. 김 전 감독이 아니었다면 언감생심이 아니고 무엇이랴.

벌써 여기서 전국대회를 세 번이나 치러냈으며 올해 중등대회를 한차례 더 남겨놓고 있다. 대회를 치를 때마다 타 지역의 부러움을 한 몸에 사고 있다.

오리궁뎅이, 무대포로 야구장 만들다

전국대회를 한 번씩 개최할 때마다 전국 150~280여개의 팀이 나주를 찾는다. 유소년대회는 280여개, 중등대회엔 150여개 팀이 참가한다. 여름 방학기간 동안 전국에서 학생 선수 뿐 아니라 학부모들이 대거 몰려오자 나주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주뿐만 아니라 광주까지 그 여파가 미쳤다.

나주에 숙박시설이 부족한 관계로 수많은 참가팀들이 광주에서 머물며 나주 야구장에서 대회를 치렀기 때문이다. 지역경제 발전에 적잖이 일조했다는 게 김 전 감독의 소회다. 이 전국대회는 포항, 속초, 군산을 거쳐 네 번째 개최지로 나주가 유치에 성공했다. 한 번 유치하면 4년간 연속 대회를 치러낸다. 올해 나주에서 마지막 대회를 치르면 2017년부턴 경주에서 치러질 예정이다.

김 전 감독이 전국대회의 나주 유치에 그토록 매달렸던 것은 광주·전남에 야구로 활기를 불어넣고자 하는 희망 때문이었다. 그가 광주·전남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2년. 프로야구가 창설되면서 해태타이거즈에 영입됐던 김 전 감독은 오랜 세월 동안 해태 타이거즈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주역이었다.

그의 물리적 고향은 군산이지만 이미 마음의 고향은 광주·전남인 셈이다. 광주·전남사람들로부터 받았던 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다. 이미 광주·전남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때문에 지역에서의 야구 텃밭을 가꾸고 싶어 유소년, 초등, 중등 전국대회 유치에 나섰고 뒤이어 그 대회를 치를 야구장 설립에 힘을 쏟았던 것이다.

김 전 감독과 나주시의 인연은 전국대회 유치 이전인 2010년 무렵이다. 야구테마파크를 나주에 건립할 계획이었으나 무산됐다. 부지 확보와 예산 문제에 부딪혀 건립이 좌초됐으나 나주에서의 야구 관련 일을 계속하고 싶었다. 유소년 야구로 뜻을 바꾸고 나주 소재 초, 중등학교에 야구부 출범을 돕게 된다.

그 때까지 야구에 관심이 크지 않았던 지역사회를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지자체와 학교장, 학부모를 차례차례 만나며 야구 붐 조성에 힘썼다. 김 전 감독의 헌신적인 활동으로 세지중과 나주북초교에 야구부가 만들어졌다. 내친 김에 고등학교까지 야구부를 만들고자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나주 지역의 아이들이 나주시 타이틀을 걸고 야구 활동을 하는, 멀지 않은 미래를 그리며 열심히 물밑작업을 벌이고 있어요. 그렇게 된다면 지역의 아이들이 굳이 외지로 유출되지 않고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을 하게 될 겁니다.”

나주 초, 중등학교에 야구부 설립

이제 나주 사람이 다 되었다. 나주에 전국대회를 유치하고 영산강 저류지에 야구장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자주 나주에 왔다 갔다 하면서 나주 혁신도시를 눈여겨보았고 16개 공사기관이 입주해있는 혁신도시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영산강 저류지에서 혁신도시까지의 거리는 불과 10분 정도.

나주 혁신도시에서 부인, 그리고 둘째 아들과 함께 중국요리집 ‘하이난’을 운영하고 있다. 가게에서 걸어서 10여분 거리의 아파트에 입주해 살면서 집과 가게, 그리고 야구장을 오가며 일상을 보낸다. 거기서 그는 나주 사람으로 살아간다. 혁신도시 입주 공기업 관련인사들과 혁신도시 입주민, 그리고 나주 사람들과 더불어 나주와 야구를 고민하면서 산다.

그가 다른 직업을 생업으로 삼고 있을지라도 그는 영원한 야구인이다. 특히 해태 팬들이 기억하는 한 그는, 오리궁뎅이 김성한이다. 프로야구 초창기인 80년대 초반부터 90년대 중후반까지 해태 타이거즈의 전성기의 주역이었고 해태왕조의 마지막 감독을 역임했으며 기아 타이거즈 초대 감독을 거쳤다.

현재는 국민생활체육회 광주시야구연합회장, 나주시야구협회 상임부회장, 그리고 광주CMB 야구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의 야구인생은 현역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라 영원히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야구 불모지인 나주에 야구의 씨앗을 뿌리고 그 결실을 맺기 위한 노력을 왕창 쏟고 있는 중이다.

중국요리집 하이난에 있어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야구인 김성한으로 그의 존재를 인식한다. 하이난의 주인이 아니라 영원한 해태맨이자 오리궁뎅이 김성한으로 받아들인다. 식당을 찾는 사람들은 김 전 감독을 보면 매우 반가워한다.

물론 음식 맛도 베스트이지만 그의 존재자체가 고객들에게 굉장한 서비스인 셈이다. 거기서 사람들은 해태의 옛 영광을 기억해내며 즐거워하고 진득한 고향사랑을 다시 확인한다.

김 전 감독 또한 어찌 마운드에 섰을 때의 감격을 잊을 수가 있겠는가. ‘목포의 눈물’, ‘남행열차’의 응원가가 아직 귓전에 선연하다. ‘목포의 눈물’은 슬픈 애가임에도 응원가로 쓰였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얼마나 그 시절에 그 대목이 우리의 가슴을 복받치게 했던가를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울렁거린다. 호남에 가해졌던 여러 가지 역차별을 야구로 풀었고 응원가로 달랬던 시절이 지금도 그립기만 하다.

야구만이 내 인생의 전부

야구를 떠나선 인생의 어느 한 토막도 말 할 수 없는 김 전 감독의 소망이라면 혁신도시 나주가 야구의 도시였으면 하는 거다. 퇴근 후 여가생활이 없고 오로지 정주시설에만 관심 있는 도시 계획에 김 전 감독은 불만이 있다.

혁신도시 내부의 사람들도 즐겁고 또 외부에서 찾아주는 사람들을 늘릴 수 있는 수단으로 실내야구장 건립을 꿈꾼다. 현재 구비돼 있는 야구장 4개면 근처에 실내야구장을 건립하면 겨울철 전지훈련도 올 수 있고 각종 대회도 유치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또 야구장 4개면에도 간단한 부대시설을 갖출 수 있기를 희망한다.

뼛속까지 야구인인 그의 소망과 꿈은 모두 야구와 관련된 거다. 그게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주고 기운을 전해주며 나아가 지역의 경제발전까지 도모해줄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다. 일정정도의 시설을 갖춘 실내야구장이 건립되면 아마야구인은 물론 전문야구인들의 전지훈련까지도 유치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래서 사방팔방 다니면서 설득을 거듭한다. 나주 혁신도시에 실내야구장을 건립해야 한다고.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김 전 감독은 사람을 만나고 설득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하루하루가 보람차고 기쁘다.

대동문화 93호 [2016 3,4월호]

김영순 광주문화재단 문화예술교육팀장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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