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칠흑 같은 세상에 한 올의 희미한 그림자가 드리운다.

곤한 잠에 취한 호수도 뒤척이며 입김을 뿜어낸다.

이윽고 대지가 기지개를 켜며 용트림을 하자 실루엣들이

앞다투어 다가선다. 세상이 열리고 있다.

깜깜한 밤은 어머니 자궁속이며,

새벽은 내가 세상과 첫 대면을 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낮은 내가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나의 존재는 빛이 있기에 드러난다.

세상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구분하는 것은

우리의 인지능력이 아니라 태양의 몫이다.

 그것은 태양광 가운데 가시광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들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태양에서 뿜어져 나온 수많은 광선 가운데 겨우 가시광선의

좁은 파장에나 반응하는 미약한 시각인지 능력을 가졌으면서

세상 모든 것들을 다보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다.

우리들이 지금 보고 있는 것들은 대상의 본질이 아니라

가시광선의 반사광에 의해 드러난 허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세상 만물들을 품어 않은 새벽녘 풍경처럼 ...

대동문화 94호 [2016 5,6월호]

라규채 사진작가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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