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 강과 바다
빛고을 광주의 젖줄, 광주천이 숨 쉰다94호 특집-2 광주천
일제강점기부터 불러온 이름 ‘광주천’
바쁜 현대인들의 도심 속 휴식공간으로 변화
김다이 기자 | 승인 2016.07.19 08:38

광주 사람들이라면 광주천에 아련한 추억이 하나쯤은 있을게다. 20살 풋풋했던 대학생 새내기 시절, 학과 동기들과 함께 무더운 더위를 피해 잔잔하게 흐르는 광주천으로 발걸음을 했던 일 말이다. 막걸리나 맥주를 들고 웃음이 끊이질 않았던 여름날의 밤을 보내기도 했을 것이다.

광주천(光州川)은 수백 년 전부터 광주의 살아있는 역사와 함께 해온 산 증인이라고 말한다. 광주 시민들에게 심장과도 같은 공간으로 애환의 삶과 빛바랜 추억이 뒤섞인 곳이다.

구불구불한 사행천으로 흘렀던 광주천은 수십 미터에 달하는 넓은 폭의 하천이었다. 광주천에서 고기를 잡기도 했으며, 아낙네들의 빨래터로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여름이면 아이들이 멱을 감았고, 천변 주변에는 빨래 하러 나온 부녀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빨래를 삶아주는 찜통업자도 진풍경 중 하나였다. 명절엔 백사장에서 줄다리기, 불놀이 등 민속놀이가 펼쳐졌고, 천변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장들이 들어섰다.

무등산 ‘샘골’에서 발원되어 흘러

지금의 광주천은 경관사업을 제법 해놓은 덕분에 산책하는 시민, 하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바이커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시민들에게 도심 생활 속 휴식공간의 자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봄기운을 가득 머금고 있는 광주천을 따라 걸었다. 광주천의 여기 저기 피어있는 벚꽃과 개나리가 시민들에게 따뜻한 봄기운을 선물해준다. 하천 곳곳은 겨울잠에서 깬 듯 생기가 돌았다.

광주천은 무등산 샘골에서 발원되어 도시의 심장을 흐르듯 광주지역의 복개된 지류천들의 물을 받아 영산강 합수지점까지 흐르는 총길이 24.2km하천이다.

광주천의 발원지는 무등산 장불재 800m 지점 ‘샘골’에서 시작한다. 이곳에서 용트림을 시작한 샘물은 용추계곡을 따라 제2수원지로 모아지고, 증심사천을 만나 광주천으로 이어진다.

숱한 역사를 함께 해왔던 만큼 크고 작은 다리들도 30여개에 이른다.

증심사에서 내려온 하천은 증심교부터 운림교-홍림교-증심천교-원지교를 지나 광주천으로 들어서면 방림교-학강교-양림교-금교-서석교-부동교-중앙대교-광주교-천교-태평교-양유교-양동교-발산교-광천1교-광천철교-광운교-광천2교-광암교-동림교-유촌교-무진교-상무교-극락교-벽진교까지 이어진다.

광주천이라는 명칭은 일제강점기부터 부르기 시작했다. 1916년 일제가 전국의 하천 명칭을 정리하면서부터다. 지금의 ‘광주천’ 이름이 탄생하기 전까지는 하천이 지나가는 인근 동네와 연관시켜 건천, 한강, 용추천, 금계, 조탄 등 각기 다르게 불렸다고 한다.

옛 사람들은 명칭을 하나로 모아 부르는 데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지만, 없어서는 안 될 하천이었던 점은 분명하다. 동네사람마다 다르게 불렸지만, 오래토록 시민들의 생활 속에 젓줄 같은 역할을 해왔다.

광주교, 부동교 등 역사적 의미 깊은 다리

한 때는 넓은 폭을 자랑했었던 광주천의 현재 모습은 징검다리를 몇 개만 사뿐 사뿐 밟으면 건널 수 있을 정도로 폭이 좁아졌다. 1920년대 직강공사를 통해 직선형으로 바뀌면서 폭이 좁아진 것이다.

19세기 말엽까지는 서문 밖을 흐르는 개천이란 의미를 지닌 서천교가 불로동과 서동을 이어주는 다리였다. 흙다리로 겨우 사람이 지나다닐 정도였던 서천교는 세월을 겪으면서 훼손이 됐다.

1907년 이곳에 ‘광주교’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다리가 만들어졌다. 영산포를 거쳐 광주로 들어오는 일본인들은 이곳을 지나가는 것이 필수코스였다. 1908년 기삼연 의병장이 이 다리 근처 백사장에서 처형당한 곳으로 알려졌다.

초창기 나무다리로 놓였던 광주교는 교통수단의 통행을 생각해 만들었다. 사실상 최초의 광주천 교량이었다. 점점 통행량이 늘어나면서 1935년 단단한 철근콘크리트 다리로 바뀌었다.

옛 녹십자병원 앞 ‘부동교’는 광주 3.1만세운동이 발생한 역사적인 곳이다. 부동교는 1920년대 조선인 전용다리로 불리기도 했다. 부동교 인근에서는 크고 작은 장터와 5일장이 열렸다. 하지만 직강공사로 인해 장터가 사라지면서 점점 아래로 밀려나 지금의 양동시장 자리로 옮겨졌다.

1920~30년대를 거치면서 광주천에는 6개의 다리가 들어섰다. 광주사람들의 생활에도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다. 광주천에 막혀 왕래가 드물었던 동쪽 지역과 남쪽 지역은 다리가 생겨나면서 교류가 빈번해졌다.

없어진 광주의 역사, 광주천이 기억한다

1950년~196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은 광주천에 놓였던 ‘뽕뽕다리’를 대부분 기억하고 있다. 시민들은 큰 비용이 들지 않고 공사장에서 구할 수 있는 구멍이 뽕뽕 뚫린 철판을 이용해 다리를 만들었다.

광주천 주변에는 여러 개의 뽕뽕다리가 있었지만 방림동의 뽕뽕다리가 마지막까지 버텼으나 1986년에 사라졌다. 이외에도 다리의 모양이 아래로 휘어있어 배가 홀쭉하게 들어갔다는 의미로 ‘배고픈 다리’, 위로 볼록하게 올라와 있어 배가 불렀다는 ‘배부른 다리’도 있었다.

광주천은 근대역사마을로 이어지는 양림오거리까지 물길이 흘렀다. 지금은 콘크리트로 복개 되었지만 당시에는 양림동 일대에 물방앗간이 많았다고 한다.

광주천은 해마다 홍수로 물이 범람하곤 했다. 광주천의 범람을 막아주는 것은 1960년대 말경 사라진 ‘경양방죽’이었다. 뱃놀이도 했던 경양호의 수원은 광주천이었다. 지금은 볼 수 없다. 일본인 거주지역을 만든다는 이유로 태봉산을 헐고 경양호를 메워버린 탓에 우리는 아름다운 두 가지의 자연경관을 잃어버렸다.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북구 유동과 임동의 일대에는 버드나무가 울창했던 ‘유림숲’이 있었다. 이 숲이 있던 자리도 광주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조성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유림숲 역시 개발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1968년 수령 350년 이상의 나무들을 전부 벌목해 사라지고 말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1970년대에는 양동시장 인근 광주천변의 356m를 복개공사를 했다. 이 구간의 광주천은 콘크리트 속에 숨어 더 이상 빛을 볼 수 없게 됐다. 1988년에는 천변주차장을 만들었고, 천변도로를 4차로로 차도와 보도를 만들었다. 한때 복개된 광주천을 복원하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아직 그것은 실현되지 않았다.

광주천 살리기 취지 다양한 문화행사 열려

광주천은 오랜 역사를 지닌 만큼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변하고 있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하천정화사업으로 많은 것을 간직해왔던 옛 옷을 벗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최초의 교량이었던 광주교는 완전히 해체되고 새롭게 가설됐다.

동그란 원형의 조형물이 커다랗게 들어선 광주교는 더 이상 차량이 통행할 수 없는 보도전용 다리로 바뀌었다. 광주교의 둥근 조형물은 단박에 광주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광주교 건너편 광주공원 입구에는 밤마다 포장마차로 불야성을 이룬다.

 

천변길 걸으며 부르는 나의 거친 노래에

잠자던 잉어 한 마리 깜짝 놀라 튀어 오르는

아~ 바람 너 였구나

누군가 다칠 것 같은 나의 노래를 안아준 것이

아~ 흐르는 광주천 너 였구나

 

실제로 광주천을 거닐며 옛 추억을 노래한 김원중의 노래 ‘광주천’도 있다. 광주천에서 환경, 문화 단체가 여는 다양한 문화행사가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 석가탄신일이면 형형색색, 알록달록한 연등이 광주천에 둥둥 떠다닌다. 번쩍번쩍 화려한 야경을 만드는 미디어아트페스티벌이 열리는 무대로 활용되기도 한다.

광주천의 파수꾼 ‘빛가람 지킴이 모니터링단’은 백일장, 시민축제, 환경캠프, 환경교육 등으로 광주천 보호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도심의 생기를 북돋는 광주천. 오랜 광주 역사를 함께해온 광주천의 생태계를 후손들에게도 물려줘야 한다. 더 이상 오염되지 않고, 도심 속 힐링 장소로 사랑받을 수 있도록 진심어린 관심과 관리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대동문화 94호 [2016 5,6월호]

김다이 기자  -0811-@hanmail.net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다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61478 광주광역시 동구 천변우로 329-5 (고운하이츠 2층)  | 대표전화 : 062-674-6568 | 등록번호 : 광주 아 00227
등록일 : 2016.02.19 |  발행인 및 편집인 : 조상열 | 발행 : 사단법인 대동문화재단 | 사업자등록번호 : 410-82-11184
청소년보호책임자 : 조상열
Copyright © 2022 채널코리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chkorea95@hanmail.net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