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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지켜야 하고 또 회복시켜야 한다특집 6 해외사례
강동진 경성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 | 승인 2016.07.19 08:36

강에 대한 우리의 오해

강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의 속성이 표현된 자연의 물길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강의 속성을 이용하여 각종 물건이나 사람을 옮기고, 더러운 것을 흘려보낸다. 강물은 이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동 중에 발생하는 자연과의 접촉을 통해 흙과 바위를 하류로 내려 보내고, 다양한 생물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자연의 원리 속에서 생성되고 살아가는 물속과 물가의 동식물들은 사람들에게 최고의 먹거리다. 물의 흐름에 따라 생겨난 모래와 자갈 없이는 현대문명을 지탱할 수 없다. 이뿐 아니다. 사람들은 강물을 모아 마실 물을 확보하고, 또 물 위나 물가에서 놀이를 즐긴다. 깊고 넓은 강(부분)은 방위의 목적으로도 사용된다.

강의 이런 쓰임새 때문에 사람들은 강변에 살기를 좋아했다. 우리 조상들도 ‘계거(溪居)’라 하여 물가에 집을 짓고 물을 즐겼다. 물과 땅의 접촉이 쉽고, 또 생산물이 풍부한 지역에는 어김없이 마을이 생겨났다. 이런 마을들은 지역 여건이나 거래 물품의 양과 질에 따라 선창을 가진 큰 마을로, 또 항구도시로 번성했다.

닫힌 내륙의 온갖 자원들과 문명적 지식을 국제교류의 현장으로 내보내는 일도 강의 임무였다. 강을 낀 사대문명 발상지들이 그랬고, 중세의 몰락과 르네상스의 도래를 있게 했던 유럽의 항구도시들도 그랬다. 사람들은 이처럼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강을 자연에 맡겨두지 못했다. 조선기술과 토목기술을 발달시켜 편익과 방재를 위한다며 물가를 직선으로 만들고 또 아예 강을 매립하거나 덮어 버리기도 했다.

사람들은 강을 바다보다 훨씬 다루기 쉬운, 만만한 것으로 여겼다. 강이 사람들 곁에 늘 있었기에 강물은 거저 생기는 것으로 알았다. 이러한 짧은 판단은 수많은 강들을 온갖 부산물을 버리는 가장 손쉬운 곳, 즉 하수구로 오인케 했고 공짜로 온갖 자원을 제공하는 생산공장으로 여기게 했다.

심지어 하수구로 전락한 강은 덮어서 또 다른 용도(도로)로 사용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전국의 많은 강들이 복개의 희생양이 되었다. 사람들의 짧은 시야와 공짜 땅에 대한 욕심이 불러온 결과였다.

‘깨달음’을 준 회복의 강들

우리보다 강에 대한 이해가 빨랐던 선진 도시들도 개발 시대를 지나며 강을 매우 홀대했다. 그들은 우리보다 깨달음이 조금 빨랐다. 유럽의 수많은 산업도시들이 그랬고 일본의 도시들도 같았다.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드라이잠강(Dreisam River)과 일본 삿포로의 토요히라강(豊平川) 지류인 모에레누마(モエレ沼)는 그 모습이 매우 닮았다. 자연 속에 파묻힌 쪽빛의 건강한 강물들이 꽉 찬 그런 모습이다. 맑은 드라이잠강은 공짜가 아니다.

빗물을 지하수로 보존하는 공공정책과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교육정책, 그리고 시민들의 강 보호운동이 중심에 있다. 주말마다 강물 속 생물들을 모니터링하며 강의 변화를 살피는 그들(단체명: 드라이잠강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드라이잠강은 힘차게 흐를 수 있는 것이다.

불과 20여년까지 쓰레기매립장으로 사용되던 모에레누마(モエレ沼) 일대는 습지 보존과 공원녹지 인프라 조성의 일환으로 회복되었다. 모에레누마는 삿포로의 북동부를 흐르는 토요히라강 지류의 범람원이자 늪지대였다.

우리 상식으로는 당연히 친환경적인 보전을 하여야 할 대상인데도 삿포로시는 이곳을 쓰레기매립장으로 사용과 동시에 공원으로 조성하는 엉뚱한 발상을 했다. 삿포로 북동지역의 새로운 녹색거점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인프라 투자의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그들만의 창의적인 발상에 지체 없이 머리가 끄덕여 진다.

스페인 빌바오의 네르비온강(Nervion River)은 빌바오의 젖줄이다. 철강과 조선업으로 산업 번성을 누리다 오염과 경제 몰락의 길을 걸었던 빌바오. 그들의 선택은 도시재생이었다. 보통 발바오 재생의 주인공은 ‘구겐하임 제2미술관’으로 생각한다. 아니었다. 네르비온강의 회복에 그 비밀이 있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15여 년의 여정 속에서 회복된 강은 빌바오에 ‘유럽문화수도(European Capital of Culture)’라는 명예를 선물했다. 강을 살렸는데 문화가 번성하고 돈이 흘러 들어오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강의 회복에 근거한 도시재생의 사례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1960년대 말 일본 오타루운하(小樽運河)를 지켰던 시민보존운동! 일본 도시재생의 원조가 된 이 사례는 놀랍게도 한 명의 여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초등학교 여교사였던 ‘미네야마 부미(峯山冨美)’이다.

청어잡이로 번성했던 시대, 청어를 부리던 운하를 매립하여 해안도로를 개설하려던 오타루항 재개발계획(1966년 발표)의 유일한 반대자였다. 그녀는 시민운동가(小樽運河を守の會 설립)로 나섰고 결국 계획은 부분매립으로 변경되었고, 오타루는 매년 천만이 찾는 일본 최고의 근대관광의 보고로 변신했다. 반대운동에 대한 오타루시의 대응은 매우 옳았다. 운하 보존은 물론, 주변 모두를 ‘경관형성지구’로 보호하는 일본 최초의 보존형 도시계획조례를 선택한 것이었다.

비슷한 예가 있다. 이젠 고유명사가 되버린 ‘쿠라시키미관지구(倉敷美觀地區)’. 1960년대부터 시작된 쿠라시키강(倉敷川) 일대의 역사경관 보존운동은 국가 차원에서의 ‘면(面) 보존’의 효시가 되었다. 자그마치 50여 년 전 이들은 어떻게 운하 회복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 그 중심에는 지역의 대부호였던 ‘오오하라가문(大原家)이 있었다. 가문의 지역사랑은 강마저도 역사의 실체로 보게 했고, 지속가능한 지역사랑의 원천이 되게 했다.

그러고 보니, 강 회복 사례에 모두 ‘특별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우연의 일치이거나 의도한 결과라 할 수도 있겠지만, 강의 회복은 사람의 관심과 마음, 그리고 정성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강과 사람의 관계!’ 그것이 어떤 모습으로, 또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따라 미래 도시의 생사가 결정된다는 것은 이미 실증된 사실이다. 이제 의무적으로 선택해야 할 명제인 것이다.

다시 우리의 강을 보자

전 세계에서 회복된 강 모두는 몇 가지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피폐해진 물길의 정화와 생명체의 귀환을 추구하는 ‘생명 복원’, 흩어진 자산들의 융합과 연계를 통한 ‘지역 활성’, 그리고 약해지고 해체된 사람들의 관계 회복을 위한 ‘공동체 회복’ 등이다. 지향점들은 거의 모든 사례에서 일치한다.

강의 회복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강에 얽힌 사람들이 ‘신념과 의지를 가지는 일’이다. 그 사람들은 공공이라 할 수 있다. 시민들은 ‘강에 대한 정성과 사랑’을 가져야 한다. 신념과 의지, 정성과 사랑을 가지는 일은 말은 쉽지만 실행은 그리 녹녹치 않다.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시간’이다.

재개발은 수년 만에 끝낼 수 있지만 재생은 최소 10년이 걸린다고 한다. 강의 회복에 초 집중했던 네르비온강을 보아서도 최소 15년이다. 그렇다. 강의 회복을 위한 투자는 ‘다음 세대를 위한 눈에 보이지 않는 투자’여야 한다. 당장의 것에 관심을 둔 강의 회복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강을 눈앞의 강으로만 보지 않는 지혜가 우리에겐 절실해 보인다.

강은 자연 자체이지만, 사람의 이야기와 체취가 스며있지 않다면 진짜 강이 아니다. 강의 회복은 즐거운 일이어야 한다. 강의 회복에는 숨어있던 또 잊고 있던 기억이 드러나고 새로운 상상력이 보태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함께해야 한다. 강 회복을 위해 내 것(시간, 돈, 열정 등)을 내어놓고 또 흔쾌히 따라 지키며 누군가를 설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강의 회복을 빠르게 끝내면 끝낼수록 좋은 평가를 받는 사업으로 이해한다면 그 보다 불행한 일은 없을 것이다.

2년 전 부산의 동천의 회복을 위해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때 시민들과 만들어 본 지도가 ‘2030 동천 상상지도’였다. 동천이 회복된다면 우리에게 돌아올 혜택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답을 구하는 작업이었다. 우리는 그 혜택을 이렇게 정의했다.

“고밀의 도심에 꽃향기와 신선한 강바람이 불어 들고, 나비를 따라 도심 한복판으로 아이들이 몰려들어 서면에는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동천을 따라 걷는 시민들에 의해 동천에 연결된 시민회관. 문현금융단지, 송상현광장이 덩달아 살아날 것이다. 더군다나 동천의 시․종점은 부산시민공원과 북항재개발의 현장이지 않는가. 시작과 끝이 명확하기에 동천만 회복된다면 도심의 재생은 따 놓은 당상일 것이다. 이러한 재생이 제대로 진행된다면 땅 밑 어둠 속에서 동천으로 흘러드는 호계천, 전포천, 부전천, 당감천도 변할 것이다. 강을 따라 움직일 사람들의 보행 활력이 강과 실핏줄처럼 연결된 뒷골목의 지역 상권을 살려 줄 수 있다면 복개된 지천들 모두가 햇빛을 만나는 환희의 순간이 오지 않을까.”

강은 거짓이 없다. 스스로 오염되며, 그래서 사람들의 심에서 멀어져 버렸던 강의 희생정신을 우리가 이제 보여주어야 한다. 이 강들에 대한 보은은 에코와 환경시대를 열망하는 이 시대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예의다.

반드시 강은 돌아온다. 회복된 강은 다시 지역과 도시를 살려 줄 것이다. 강의 회복에 대한 투자는 미래를 위한 가장 크고 확실한 ‘즐거운 저축’인 셈이다.

대동문화 94호 [2016 5,6월호]

강동진 경성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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