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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 가는 길
문틈 / 시인 | 승인 2016.08.24 18:14
   

2G폴더폰 때문일까. 문자 메시지가 늦게 도착하는 경우가 자주 있나 싶다. 어떤 메시지는 하루나 심하면 이틀 늦게 올 때도 있다. 친구 모친이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하루 늦게 보게 된 것도 이놈의 구식 휴대폰 탓이다.

시계를 보니 벌써 점심때다. 나는 게 눈 감추듯 요기를 대충 하고는 서둘러 길을 나섰다. 오늘이 아니면 문상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큰 일이다. 하지만 가는 길은 천리 길. 오늘 저녁까지는 장례식장에 도착해야만 한다. 택시를 불러 타고 기차역으로 갔다. 간신히 케이티엑스 표를 끊었다. 어림해도 오후 다섯 시 부근에는 장례식장에 도착할 수 있다는 셈법이 나온다. 일단 안심이다.

나는 달리는 기차 안에서 잠시 생각해본다. 천리길을 마다 않고 문상을 하러 간 친구에게 내 면목이 설 것이라는. 그러다 그런 얄팍한 생각으로 내 문상길을 정의하는 스스로를 책망하고는 사람으로서 예를 갖추는 일을 한다고 본디 마음으로 돌아갔다. 이것이 사람 사는 일이 아니냐고.

결혼식에는 사정이 생겨서 더러 못갈 수도 있지만 장례식에는 반드시 가야 한다는 내 오랜 원칙을 이번에도 지키는 셈이다. 하지만 수은주가 35도를 오르내리는 불볕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날이라 은근히 내 건강도 신경이 쓰였다.

휴대폰에는 ‘폭염주의보 노약자 외출 자제’라는 문자도 들어 있었다. 처음엔 솔직히 그곳 가까이 거주하는 동생한테 대리 문상을 부탁할까도 안해 본 것은 아니지만 그건 예가 아닌 듯해서 문상길에 나선 것이다.

국가 원수가 별세하면 각국 원수들이 그 나라로 문상을 가는 경우를 보기도 한다. 국가 원수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다. 코끼리나 기린도 동료가 죽으면 죽음을 기린다고 한다. 조문을 가는 것은 인간의 도리 중의 도리다. 친구 모친이 별세하셨는데 내가 안 가면 친구는 얼마나 섭섭해 할 것인가.

어쨌거나 길이 아무리 멀어도, 날이 아무리 더워도 문상을 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내 안의 나는 말한다. 나는 ‘내 안의 나’가 엄히 말하는 그대로 따를 뿐이다. 그런데 이번 문상길에는 예상 못할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마터면 폭염으로 쓰러져 입원할 뻔했던 것이다.

당초 K시에서 내려 H읍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탄다는 교통편을 구상했으나 K시에서는 그쪽으로 가는 버스편이 없었다. N시로 가면 있을 거라기에 택시를 타고 가보니 이번에는 Y읍 삼거리에 가면 있을 거라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40여분 간을 땡볕에 헤매다 보니 머리가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다.

게다가 은행도 들르지 못한 채라 부의금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다. 낯선 고을에서 은행을 찾아 헤매고, 택시를 기다리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길을 묻고. 온몸이 불덩어리 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 열이 오르고 숨이 컥 막힌다. 이러다 큰일 나겠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땡볕 날씨에 공포감을 느낀 것은 처음 당하는 일이다. 마침내 삼거리에 도착했더니 마트 아주머니가 방금 전에 H읍으로 가는 버스가 떠났다고 하지 않는가. 다음 버스는 한 시간 후에 있다고 한다. 날은 화덕처럼 덥고 시간은 없고.

나는 정류장에서 지나는 차량을 향해 무조건 손을 흔들었다. 히치하이커(hitchhiker)가 되기로 한 것이다. 그 방법 외에 다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몇 십년 전 옛날 방식이란 걸 알았다. 차들이 나를 못본 체 다 지나가 버린다. 그래도 손을 높이 들고 흔들어댔다.

그랬더니 어떤 낡은 승용차가 한 30미터쯤 멀리 가서 멈추더니 미등을 깜박인다. 나는 달려서 승용차 문을 열고 H읍 가는 버스가 인근 KK리에 있다는데 교통편을 못찾아 그러니 그쪽으로 가시면 태워달라고 했더니 타라고 한다.

이 40대 후반쯤 되었음직한 한없이 선량하게 생긴 사내는 날더러 어디까지 가느나고 묻는다. 나는 H읍으로 친구 모친 장례식장에 가는 길인데 이렇게 헤매고 있다고 했다. 중간에 보육원에서 아이를 데려온 사내는 말없이 차를 몬다.

그런데 차가 이상한 길로 한없이 달린다. 다 왔다고 해서 내리고 보니 그곳이 바로 최종 목적지 H읍장례식장이었다. 나는 그 순간 감정수습이 잘 안되었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사마리아인 같은 친절한 사내의 전화번호만 따고는 감사의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내가 잊어서는 안 될 사람이어서다.

나는 문상을 마치고 K시로 어머니를 뵈러갔다. 여기까지 와서 어머니를 뵙지 않고 가는 것은 절대 안 될 말이다. 온열 탓인지 밤새 한 숨도 못자고 아침에 이마를 짚어보니 열이 잡힌다. 어머니가 찬 물수건을 가져와서 내 이마에 얹어주셨다.

“올 여름은 어째 이리 덥다냐. 더우 먹어 죽은 사람들도 있단다. 이렇게 한참 하고 있으면 좀 나아질 거다. 난 더우면 누워서 찬 물수건을 이마에 얹어놓고 피서한다."

어머니의 비방 덕분인지 집에 올라와서 병원에 가지 않고도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병원에 가서 온열질환자 응급 치료를 받을 생각이었는데 다행히 찬 물수건 치료법으로 몸에 탈이 안났다. 올 여름은 나 같은 사람이 먼 길을 문상 가기에는 너무 더운 계절인 것 같다. 사람 도리하느라 무척 힘든 날이었다.

문틈 / 시인  chkorea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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