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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를 찾아서
문틈 시인 | 승인 2016.08.31 09:11
   

‘1평방인치의 고요‘를 찾아서 전 세계를 헤맨 사람이 있다. 마이크를 손에 들고 세계를 떠돌며 인간의 소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을 35년 동안이나 찾아다녔다. 이 음향생태학자가 찾은 장소들은 진공 속 같은 절대 고요의 곳이 아니라 자연의 소리가 잘 들리는 곳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인간이 내는 소음이 미치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 그렇게도 오랜 동안 겨우 50여 곳밖에 찾지 못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이마저도 향후 10년 내 그런 고요한 공간은 다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한다.

‘고요한 장소’의 기준은 ‘동틀 무렵 자연의 소리가 한창일 때 최소 15분 동안 인간의 청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인위적인 소음이 없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만일 가청 주파수대의 음파가 1시간에 4번 이상 축음기에 탐지되면 그런 곳은 고요한 장소가 아니라고 정의한다.

인간의 귀는 20킬로미터 바깥에서 발생한 소리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만일 그 사이에 비행기 한 대가 날아가기라도 한다면 고요는 깨져버릴 것이다. 이 음향생태학자의 주장으로는 인간의 활동과 관련된 소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안식처는 이 세계에 몇 군데가 안된다니 우리가 소음 속에서 살고 있음을 새삼 자각하게 한다.

인류문명이란 것을 어쩌면 소음의 문명이라고 한대도 좋을 듯하다. “이전에는 수 시간 동안 고요한 상태가 지속하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기껏해야 20분 정도밖에는 지속하지 않는다”라며 아쉬워한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이런 흥미있는 내용이 실린 블로그를 찾게 되었다. 이 세상에 고요한 장소가 그렇게나 드물다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나라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고요한 집을 짓고 싶어 했던 ‘얼토당토 않은’ 꿈을 간직해 왔었기에 더욱 이 사람이 찾아 헤맨 ‘고요한 장소’ 이야기에 나는 눈길이 쏠렸다.

파도소리나 바람소리, 시냇물 소리, 새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들은 고요를 깨뜨리지 않는다. 오히려 고요를 더 깊게 해준다. 자연의 소리는 인간의 심장박동수와 잘 맞는 소리라서 아무리 들어도 시끄럽지 않다고 들었다. 말하자면 자연의 소리는 지구의 숨소리라고 할 수 있는 지극히 고요한 소리인 셈이다.

내가 고요한 장소에 집을 짓고 싶은 꿈을 버리지 못한 것은 단지 시끄러운 곳을 피하고 싶어서만이 아니었다. 이 음향생태학자의 말대로 고요한 장소에 은신해 있으면 “저는 무엇이 좋은 것이고 무엇이 나쁜 것인지 알게 돼요. 고요 속에서 저는 제가 누구인지 알고, 제가 무엇을 하는지 알아요.” 바로 내가 누구인지를 전 우주와 함께 사색해보고 싶어서였던 것이다.

스님들이 조용한 곳을 찾아 명상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에서다. 자연의 고요함을 들으면 삶에 시달린 내 영혼이 치유될 것만 같아서다. 오늘날 우리는 누구나 소음에 부대끼며 살고 있다. 자기가 누구인가를 명상해볼 여유와 시간과 공간을 가질 수 없다. 바쁘게 사느라 고요 속으로 들어갈 기회가 없다.

번잡한 도시에 사는 내가 정적인 공간을 갖지 못하는 것은 불행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현대인의 삶의 조건이 그렇게 되어 있다. 하지만 신경이 예민한 나로서는 소음을 그대로 두고 지낼 수 없어 내년엔 숲 가까이 짓고 있는 새 아파트로 짐을 꾸려 가기로 했다.

‘1평방인치의 고요’는 기대할 수 없지만 소음이 훨씬 덜한 곳이어서 주저없이 결정한 것이다. 지금 1년 가까이 살고 있는 이 집은 햇볕도 잘 들고 위치도 그만하지만 하루 종일 들려오는 소음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 질주하는 주변 도로 위의 자동차 소리는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다.

“도시에 살며 정적의 공간을 갖지 못한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세계의 고요한 곳을 찾아 헤맨 이 사람은 묻고 답한다. “우리가 오늘날 잃고 있는 것은 진정으로 들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듣는 방법을 다시 배우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잎사귀 사이로 부는 바람의 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그리고 천둥소리에 푹 잠긴 채 명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들을 수 있는 인간의 본질적인 능력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1년 중 하루쯤은 ‘고요의 날’을 정해서 최대한 소음을 내지 않고 지내보면 어떨까. 물론 실현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고요한 시간을 갖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을 진지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일 성싶다.

우리는 오래 전에 고요를 잃어버렸다. 아니, 사람들은 오히려 떠들썩한 곳을 찾아다닌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인간이 소음에 길들여진 것은 외로움을 두려워해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음 속에서는 우리는 진정한 것을 발견할 수 없다. 정말로 중요한 것들은 고요 속에 묻혀 있다.

문틈 시인  chkorea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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