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숙종16년에 태어난 이중환은 성호 이익의 학풍을 이어받은 남인의 실학자다. 24세 때 증광별시라는 시험에 합격하여 관직에 처음 나간다. 신임사화 때 병조좌랑으로 승차하였으나 4년 뒤 섬으로 유배 되었고 해배된 후 30여년을 팔도를 누비며 사대부가 살만한 곳을 찾아 헤맸다. 그 결과 사대부도 없고 농.공.상도 없고 살만한 곳도 찾지 못했으니 이것이 땅 아닌 땅(非地之地)이었다.

이중환은 조정에 다시 출사할 기회가 있었으나 이를 뿌리치고 남다른 기질과 고집으로 산천을 누비며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풍에 따른 최초의 풍수(風水)를 가미하여 인문지리서인 ‘택리지’를 저술하였다. 그때 그의 나이 62세였다. 당시엔 지금처럼 자동차나 기차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전국 산천을 도는데 거의 한세월을 보냈다는 것이 된다.

현대는 급진적으로 성장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면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한다. 이러한 요즘 쳇바퀴 돌 듯 빙빙 도는 도심을 떠나 어딘가를 향해 간다는 것은 참으로 설레는 일이다. 그것이 여행이든, 기행이든, 답사든 말이다.

초여름의 후텁지근한 습도가 온몸을 휘감아 도는 우중충한 날씨지만 탁 트인 고속도로를 달려 여수 흥국사 홍교를 향해 달려간다. 흥국사는 화엄사의 말사로 1196년(명종26) 지눌이 창건한 사찰이다. 흥국사의 홍교는 부채꼴 모양의 화강석 86개를 맞추어 만든 반원의 다리이다.

도원수 권율과 명나라 제독 유정의 군사가 주둔한 검단산성

여수를 향해가다 길목인 순천에 잠시 머물렀다. 순천은 바다가 있는 전라도 동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역사적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곳이다. 그러다보니 문화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문화재도 많다. 역사적인 것은 물론, 학술적인 가치를 담고 있는 검단산성이나 순천왜성이 그중의 하나다.

순천 시내에 근접해 있는 두 곳의 성을 가보기로 했다. 먼저 검단산성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쯤이다. 가려졌던 해가 뜨겁게 나오더니 이마의 땀을 토하게 한다. 워낙 가파른 산길 때문에 길은 넓은데 자동차를 가지고 올라갈 자신이 없다. 차는 산 중턱에 두고 20여분을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물탱크 묻어놓은 수리시설처럼 큰 언덕이 나오고 안내판이 외롭게 서있다.

검단산성은 해발 138m의 피봉산 7부 능선에 쌓은 산성이다. 이곳 주민들은 이 산을 ‘안산’ 또는 ‘검단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검단산은 여수반도와 순천을 잇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며 동쪽은 순천왜성이, 서쪽은 해룡산 토성이 보인다.

1598년(선조31년)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이 이 산성에서 동쪽의 왜성에 주둔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이끈 왜군과 공방전을 펼치기도 한 곳이다. 도원수 권율과 명나라 제독 유정의 군사가 이곳에 주둔하면서 장도와 송도에 진영을 둔 통제사 이순신, 명나라 도독 진린의 연합함대와 함께 연락하면서 왜군을 격퇴하기도 하였다.

1997년에 조사를 한 결과 이미 이 성은 백제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확인 되었다. 성벽의 둘레는 약 430m이다.

성 안쪽의 우물터나 창고 등의 흔적을 뒤로한 채 검단산성을 내려와 순천왜성으로 향하였다. 검단산성과는 가깝게 위치한다.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이끈 왜군이 주둔한 순천왜성

순천왜성에 도착하자 검단산성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순천왜성(順天倭城)은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에 있는 낮은 구릉지대에 내·외성 2중의 돌로 쌓아 만든 성이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왜장 소서행장(고니시 유키나가)이 일본군의 호남 공격을 위한 전진기지 겸 최후 방어기지로 삼기 위하여 쌓았다.

성벽은 외성 3첩과 내성 3첩으로 쌓았는데 내성만 그 흔적이 분명하고 외성은 분명치 않으며, 성 주위에는 연못을 둘러 판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성은 1598년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군과 소서행장이 이끄는 왜군 사이에 최대의 결전이 벌어진 곳이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소서행장을 노량 앞바다로 유인하여 대승을 거둔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축성 후 1만 3천 7백 명의 병력이 주둔하였던 곳이다. 조·명 수륙연합군과 두 차례에 걸쳐 최후·최대의 격전을 벌인 곳이기도 하다. 1999년 2월 26일 전라남도의 기념물 제171호로 지정되었다.

본성은 석벽으로 그 안에 천수대 등의 각종 시설이 있었다. 외곽성은 석벽과 성루가 혼용되고 있으며 축대형식으로 쌓았다. 대체로 선형에 가까운 모습이나 호구(虎口) 부분은 ㄱ자형으로 꺾인 형태이다. 순천왜성에 현재 남아 있는 호구(虎口)는 6개소로 외곽성에 3개소, 본성에 3개소가 남아있다. 왜성은 일반적으로 여러 겹으로 축성되어 있기 때문에 호구가 여러 개일 수밖에 없다. 모든 호구는 평면상 굴절되어 꺾인 호구로 적의 적진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배치했다.

순천왜성을 나와 여수로 가는 구 도로를 달리다 여수공항 외벽을 휘감고 들어가면 애양원이 나온다. 애양원은 사랑으로 양을 키우는 동산이라는 뜻으로 1925년 한센병 환자들의 치료를 목적으로 조성을 시작, 1928년 600여명의 한센환자가 옮겨오면서 지금의 애향원을 이뤘다. 경남 함안 출신인 손양원목사가 이곳에서 한센인들을 위하여 봉사하였으며 1948년도에 일어난 여순반란 사건으로 두 아들을 잃고 자신도 6.25가 일어난 1950년도에 순교하였다. 현재 애양원에는 1909년 4월, 광주 선교진료소에서 한센병 환자 치료를 시작으로 애양원으로 이주한 애양병원, 1928년 문을 연 성산교회가 있다. 이밖에 애양원 역사박물관, 손양원목사 순교기념관, 평안요양소, 토플하우스, 삼부자의 묘소와 사랑의 열매탑 등 볼거리가 즐비하다.

무질서하면서도 정제된 석축, 흥국사 홍교

여수산업단지에서 뿜어내는 새하얀 공장연기가 건물 사이로 간간히 보이는 새파란 바닷물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 같다. 여수 엑스포로 들어가는 외곽 길 중간에서 우회전하여 들어가면 임진왜란 때 300명이나 된 승병을 일으켜 국난을 극복하는데 일조했던 사찰로 유명한 흥국사가 나온다.

이 절은 고려 명종 때 지어진 절로 나라의 안정과 융성을 기원했던 기도처로 알려져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물 제 396호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하여 15동의 건물이 있다.

어느 절 고랑이나 마찬가지지만 흥국사 주변도 계곡이 흐른다. 심산유곡이라 했던가. 사찰이 산중에 있다 보니 계곡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 계곡 주변으로 먹을거리가 풍부하다. 매표소 앞 주차장 우측으로 높이 5.5m 부채꼴 모양의 화강석 86개를 맞추어 들어 올린 홍예(虹霓)가 반원을 그리며 웅장하게 서있다.

보물 제 563호인 흥국사 홍교다. 단아하고 시원스러운 홍예의 양옆에는 학이 날개를 펼친 듯 둥글둥글한 잡석으로 쌓아올린 벽이 길게 뻗쳐 조화를 이룬다. 다리 밑에서 올려다보면 홍예 한복판에 양쪽으로 마룻돌［宗石］이 돌출되어 있고, 그 끝에 용두(龍頭)가 다리 밑 급류를 굽어보고 있다. 다리 바로 밑에는 울퉁불퉁한 바위가 솟아 작은 소(沼)를 이루었고 물속으로 보이는 바닥도 역시 너럭바위여서 홍교는 결국 암반 위에 세워진 셈이다.

흥국사의 홍교는 석축의 구성, 노면의 자연스러운 곡선, 굽이치는 계류와 바위가 혼연일체가 되어 아름다움을 상승시키고 있다. 남도의 홍교는 그 수가 부지기수지만 조계산 선암사 승선교, 보성군 벌교읍에 홍교 그리고 고흥읍 성터에 있는 홍교, 흥국사 홍교 등은 보물로 지정되었거나 역사적으로 높은 가치가 있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대동문화 95호 [2016 7,8월호]

이동호 기자  ddmh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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