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3대 명주(名酒)하면 경주법주, 전주이강주에 또 하나가 한산소곡주다. 맑게 빗은 소곡주 한잔에 앉은뱅이가 되어버린 나그네는 달빛 청초한 한여름 밤을 헤어나지 못한다.

한여름 밤의 앉은뱅이가 어디 나그네뿐이랴. 천년동안이나 앉은 채 길쌈을 이어온 한산지역의 아낙네들이 들으면 서럽겠다. 그러고 보니 한산지역은 모두가 앉은뱅이인 채 한 세월을 더듬는 지역이 되어 버렸다.

여름의 땡볕이 이마에 강타할 즈음 한산면 소재지에 도착했다. 길거리에 걸린 간판이 온통 소곡주다. 잘 정리된 수수밭을 걷는 것처럼 술 밭을 거니는 기분이다. 온천지가 소곡주를 판매하는 간판뿐이다. 그것도 직접 빗은 곡주라니 놀랍다.

시원한 모시옷 한 벌 차려입고 헤픈 하루를 안주삼아 곡주를 삼켰을 선비들을 생각하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취한 듯 아닌 듯 진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한산면 충절로에 위치한 한산모시관으로 들어갔다. 사랑으로 피어나 장인의 손길로 완성된 자연의 선물, 모시문화의 우수함과 품격을 말해주듯 한 세월을 모시와 함께한 방연옥 선생이 앉아있다.

방연옥 선생은 1947년 충남 서천군 기산면 가공리에서 태어났다. 사방 천지에 널린 모시 때문에 온통 마을 사람들은 낮 동안 힘든 농사일을 마치고 밤이면 자연스레 베틀에 앉는다. 비싼 비단 대신 품팔이만으로 그냥 얻어지는 모시베는 주민들의 피복비용에 경제적인 해결을 톡톡히 했기 때문이다.

주로 여자들이 베를 짰다. 방연옥 선생도 어머니 곁에서 늘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랐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고 했다. 환경적인 영향이 6살 때부터 바디를 꿸 정도의 선생을 만들었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공부대신 자연스레 모시짜기에 익숙했다. “학교에 가서도 공부보다는 모시짜는 것이 생각나서 공부를 못 할 때가 많았어요.” 잔잔한 입가의 미소는 어린 시절 추억을 되새기나보다.

한산지역의 질 좋은 모시와 베 짜는 기술의 합작

한산모시는 충남 서천군 한산면 지역에서 생산되는 다년생 식물이다. 저마(苧麻)껍질을 쪼개고 이은 실로 짠 우리나라 여름철 직물이다. ‘밥그릇 하나에 모시한필이 다 들어간다.’고 할 정도로 가늘고 곱기로 유명하다. 모시는 보통 1년에 3번 정도 수확하는데 수확시기가 이르면 섬유가 약하고 늦으면 올이 굵고 거칠기 때문에 8월 초순에서 하순사이에 수확하는 모시가 제일 좋다.

한산지역의 특성은 토양과 기후, 지세를 바탕으로 생산된 모시풀의 질과 제직 기술면에서 우수성을 갖는다.

방연옥 선생은 10살 때부터 ‘모시째기’를 시작했다. 모시째기는 실을 입술로 찢어 모시섬유를 만드는 일로 숙련도에 따라 품질이 좌우될 정도로 중요한 작업이다. 어린나이에 시작된 선생의 모시작업은 20살이 되도록 계속되었다.

힘든 모시짜기를 하는 딸이 안쓰러웠을까 그 일을 반대하는 어머니의 성화에 결국 중단하고 말았다. 거의 10여년을 모시짜는 일을 멀리했다. 29세 되던 해에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이소직 선생과 혼인했다. 그 후 한 동네에 살았던 문정옥 선생 댁에서 일을 도와주던 중 선생이 권유하여 본격적으로 모시짜기를 배우게 된다.

한산모시의 숨은 비법은 모시째기에 있다. 모시풀 껍질을 벗겨서 말린 다음 앞니로 쪼개는 과정은 입술이 다 부르트고 피가 날 정도로 매우 고단한 작업이다. 여러 과정을 거쳐 베틀에서 모시를 짤 때도 건조한 날에는 모시가 다 바스러지기 때문에 한여름에도 문을 닫고 찜통 속에서 모시를 짜야한다.

선생도 처음 모시째기를 할 때 입술이 터지고 피가 나서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였다. 나중에는 입술에 굳은살이 박혔다. 온몸은 파스에 의존하였고 이는 이대로 흔들거리거나 잇몸이 부셔져 치과치료도 빈번하였다.

그렇게 30여 년 동안 온몸을 혹사 시키면서 문정옥 선생으로부터 모시짜기의 전 과정을 습득하고 연마하였다. 한산지역에 시집와서 이곳의 삶을 배웠고 모시를 짜왔다. 1980년 전수장학생이 되었고 1986년 이수자로 인정된 후 1987년 전수교육 조교가 되었다. 그리고 2000년 8월 2일 중요무형문화재 제 14호로 한산모시짜기 기능 보유자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제작과정의 다양함이 질 좋은 모시옷 탄생시켜

모시나무를 베어 겉껍질을 벗기는 과정을 태모시 만들기라고 하며 첫 번째 공정이다. 모시나무에서 겉껍질을 벗긴 후 다시 부드러운 속살만을 골라내는데 낫과 같이 생긴 손가락 크기의 특수한 칼로 훑어서 겉껍질과 속살을 분리시킨다. 벗겨낸 속살을 한주먹의 다발로 묶어 4~5회 물을 반복해서 적신 후 양지에 말리는 과정이다.

잘 말린 태모시를 입술을 이용해 쪼개는 과정을 모시째기라고 하는데 두 번째 과정이다. 이때 모시의 굵기가 정해진다. 모시는 굵기에 따라 올의 굵기가 정해지는데 가장 가는 상저, 중간 굵기의 중저, 가장 굵은 막저로 구분한다. 모시의 품질은 장인의 입술에 달려있는 샘이다.

세 번째 과정으로는 모시삼기가 있다. 모시째기가 끝난 모시는 ‘쩐지’라는 틀에 걸쳐놓고 한 올씩 입술의 침을 이용하여 이어 붙인다. 한주먹 정도의 모시 한 타래를 ‘한 굿’이라고 하는데 10굿 정도가 돼야 한필의 모시를 짤 수 있다.

그 다음으로 모시날기가 있다. 모시째기가 끝난 모시는 ‘조슬대’라는 틀에 매어 한필의 모시를 짤 만큼의 실을 감는다. 모시날기를 할 때 실이 엉키지 않게 잘 해야 모시를 잘 맬 수 있다.

다섯 번째 공정으로 모시매기가 있다. 모시날기가 끝난 모시를 모시짜기에 앞서 날실을 부드럽고 보푸라기가 생기지 않도록 콩풀을 먹이면서 모시베틀에 얹어 ‘도투마리’라는 틀에 감는 과정이다. 이때 왕겨 불에 콩풀을 말리면서 작업을 한다.

여섯 번째 작업이 꾸리감기이다. 모시는 날줄과 씨줄로 엮는다. 모시매기는 날줄로 쓸 모시원사이고 씨실이 되는 실꾸리를 만들어서 북집에 끼워 넣는 작업과정이다. 모시한필을 짜는 데는 날실로 모시굿이 10굿이 필요하며 씨실에는 꾸리용 모시굿 8굿 정도가 필요하다.

일곱 번째 공정으로 모시짜기인데 모시매기 과정을 거쳐 날실이 감긴 도투마리를 베틀의 누운다리 위에 올리고 바디를 끼운 날실을 빼어 각각의 잉아에 번갈아 끼운다.

짜기를 할 때에는 베틀신대에 달려있는 베틀신끈을 오른발의 끌신에 걸고 오른손에는 북을 쥐며 왼손에는 바디집을 잡아서 짤 준비를 한다. 모시가 짜이는 원리는 끌신을 당기고 놓고 함에 따라 베틀신대가 고정되어 있는 원산이 눈썹대를 움직여서 사올과 잉아올을 교차시켜 주게 되므로 천이 짜이는 것이다.

실질적인 모시짜기의 과정은 이렇게 끝이 나지만 도중에 실이 끊어지는 불상사가 빈번하다.

실이 가장 잘 끊어지는 이유는 모시의 질에도 문제가 있지만 습기가 부족하여 실이 건조하면 잘 끊어지게 된다. 실이 끊어지면 베틀 옆에 늘 준비해둔 잇기용 모시실과 눈썹끈에 붙여둔 풀솜을 이용하여 실을 이어준다.

다 짠 모시는 흐르는 물이나 더운물로 대충 헹군 뒤에 콩 즙을 빼기위해 잿물에 한 두 시간 담궜다가 건져내고 더운물을 끼얹어가며 방망이로 두들겨서 콩 즙을 깨끗이 빼낸다.

그해 옷을 만들어 입지 않을 경우에는 콩 즙은 빼되 풀을 하지 않고 잘 접어서 보관하고 염색을 할 경우에는 풀을 하기 전에 해야 하며 모시염색은 쌀겨나 쪽, 치자나 홍화 염색 등 색이 차분하고 은근한 천연염색을 많이 한다.

차분하고 섬세한 인고의 시간이 세계유네스코 등재

방연옥 선생은 46년의 모시짜기 경력을 가지고 있다. 세월만큼 우여곡절도 많았다. 문정옥 선생에게서 모시짜기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81년도에 처음으로 본인이 짠 모시 4필을 내다 팔아서 12만원을 받았다. 당시의 가치로 보면 쌀 2가마에 해당하는 큰 금액이었다. 모시를 판돈으로 아이들 교육비와 생활비 등 가정경제에 보탬을 주기 시작한다.

낮에 들에 나가 농사일을 하면서 주로 밤으로만 모시를 짜는 억척스러운 생활이 어찌 보면 선생의 정해진 운명이 아니었을까? 온몸에 파스를 붙이고 밤으로 끙끙 앓으면서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그 일을 하는 자신이 어쩔 땐 자랑스럽기도 했다.

현재 선생은 후진양성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모시짜기를 희망하는 젊은 아낙들을 군청의 도움으로 선정하여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

모시짜기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기나긴 시간과의 싸움이며 인내와의 싸움이다. 베 한필을 짜기 위하여 1주일에서 10일이 걸린다. 전 공정을 소화하기위하여 온몸의 상처는 물론 섬세하고 차분한 인고의 시간을 겪어야 한다.

선생은 충남 서천군 한산면에 위치한 한산모시전수관에 출근하면서 지금도 베를 꾸준히 짜고 있다. 품질로 보나 정성으로 보나 서양에서 들여온 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양질의 베를 짜는 것이다. 모시 한필이면 전통한복 한 벌하고도 남자 저고리 하나가 나온다.

베 한필에 50~60만원씩 하다 보니 좀 비싼듯하나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대도시 백화점의 명품 옷, 명품 백들에 비하면 저렴하다. 전통적인 멋에 실용적인 가격, 대물림까지 하여 입는 옷이고 보면 어찌 그러지 아니 하겠는가.

한산지역에 시집와서 이곳의 정서와 삶을 배웠고 선생의 한산 모시짜기 기능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선생은 “이제 세계인의 전통이 된 만큼 기술을 배우는 후학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옛날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가 그랬듯이 모시를 벗 삼아 오순도순 함께 모여 일했으면 좋겠다.”며 대대로 한산 모시짜기의 명맥을 이어나갔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내 비쳤다.

대동문화 95호 [2016 7,8월호]

이동호 기자  ddmh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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