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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궐에서 보낸 선물
문틈 시인 | 승인 2016.09.18 09:05
   
 

조선시대 왕들은 신하들에게 선물을 하사해서 충성을 얻었던 모양이다. ‘국왕의 선물’(책문)이라는 책은 흥미 있는 이야기들을 전한다.

인조가 승지 이경석에게 귤 10개를 선물로 하사했다. 이경석은 “신이 세상에 드문 특별한 예우를 얻었으니 어찌 감히 간에 새기고 폐에 아로새겨서 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부서질 때까지 충성을 다하지 않겠습니까?”하고 왕에게 글을 올렸다.

나라의 최고 존엄 왕이 보낸 선물에 감동하여 충성을 맹세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조선의 왕들은 한강 얼음을 서빙고, 동빙고에 쟁여두었다가 한여름에 신하들에게 얼음조각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소주, 생선, 소금도 선물로 하사했고, 책, 벼루, 나막신, 부채 같은 것도 보냈다고 한다.

선물 내용이 무엇이건 간에 왕이 하사한 선물을 받은 신하는 왕의 뜻에 감읍해 충성 맹세를 다짐했다. 지엄한 왕의 선물 정치는 그 효험이 대단했던 듯하다.

선물의 역사는 인간의 기원만큼이나 오래되었다고 외국 문헌은 전한다. 선물은 서로를 향해 사랑과 애정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된다. 선물은 감사, 고마움, 애정, 존경, 기부 등 여러 가지 뜻을 담아 주는 이와 받는 이의 기쁨을 공유한다. 당신과 나는 연결되어 있다는 신호보다 더 기분 좋은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물론 왕이 신하를 나라의 주요 포스트에 앉히거나 죄를 사면해주거나 백성이 파라오에게 우상을 바치는 것 같은 것도 선물일 수 있겠다. 우리가 일상에서 상대방에게 진심과 호의를 표하느라 보내는 소소한 선물들은 그런 선물보다 훨씬 큰 의미와 효과가 있다.

가족과 친구들끼리 흔히 하는 선물은 생일, 결혼, 입학, 졸업, 승진 때 하는 선물이 가장 일반적인 듯하다. 청춘 남녀가 연애 시절에 하는 선물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고. 우리 가까이, 혹은 멀리 있는 사람에게 선물을 보내는 것은 주는 이와 받는 이가 ‘당신과 내가 선의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리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어떤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선물의 효과에 대해서 연구한 것을 보면, 선물을 하는 것은 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주는 사람에게도 행복감을 준다고 한다.

이 연구에 따르면 선물을 보내는 것은 개개인에겐 행복한 느낌을 공유하는 것이고, 사회적으로는 커다란 연결감을 주어, 주고받는 이의 마음의 상태를 고양시킨다고 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존경하는 사람, 큰 어른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는 행위로 이끈다는 것이다.

명절을 정해 선물을 보내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일이라고 할밖에 없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선물도 예외 없이 빛과 그늘이 있음은 어쩔 수 없다. 선물을 보내야 할 거래처는 많은데 선물 준비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어떨까.

어린 시절 아버지는 명절 때면 늘 어두운 눈길로 먼 곳에 망연히 시선을 주고 있었다. 명절 때면 으레 저 거래처에서 온 선물을 다시 포장해서 다른 거래처로 보내고 하던 시절이 잊혀지지 않는다. 어린 나는 그때 선물이란 돌고 도는 것인 줄 알았다.

어떤 가난한 부부가 크리스마스 때 서로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다. 아내는 남편의 시계와 어울리는 품위 있는 시계줄을 발견하고, 그 시계줄을 남편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기 위해 자신의 길고 고운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 마련한 돈으로 시계줄을 샀다. 남편은 아내에게 주려고 자신의 시계를 팔아서 고급 머리빗을 사주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있다. 미국 작가 오 헨리의 단편에 나온다.

선물도 이렇게 보면 어느 정도 있는 집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순천 출신 작가 김승옥은 가난한 젊은이들이 애인에게 선물을 사 줄 돈이 없어서 줄 것이라곤 서로에게 줄 몸밖에 없다는 좀 야릇한 이야기를 문장으로 쓰기도 했다. 70년대였던 것 같다.

청와대에서 지난 추석 때 대통령이 국회의원들 전원에게 선물을 보냈다고 한다. 장흥산 쇠고기를 포함한 몇 가지 선물들이라고 하는데, 선물을 받은 국회의원 중에는 청와대로 곧장 반환한 의원도 있고, ‘나는 선물을 못받았다’고 SNS에 글을 올려서 화제가 된 국회의원도 있다. 사실은 선물을 안 보낸 것이 아니라 배송 과정에서 조금 늦은 것이었다는 해명이 있었다.

하여튼 내가 이상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행정부 수장이 입법부 의원들에게 굳이 선물을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어딘가 좀 어색한 느낌도 든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 김정일이 선물로 보낸 송이버섯을 받은 적도 있는데, 자기 나라 대통령이 보낸 선물을 ‘나 못받겠소’하고 되돌려 보내는 것이나 못받았다고 동네방네 외는 것은 어째 좀 뒷맛이 씁쓸하다.

앞으로 청와대는 그렇지 않아도 선물을 많이 받는 축에 드는 국회의원들에게 선물을 보낼 것이 아니라 그해 부상을 입고 제대한 상이군인, 의로운 일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의사자 가족들, 그해의 탈북자들에게 보냈으면 한다. 그러면 국민들 보기에도 참 흐뭇할 것 같다.

문틈 시인  chkorea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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