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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귀엔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문틈 시인 | 승인 2016.10.05 11:01
   

아주 오래 전 일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미국 유람을 갔다. 밤중에 뉴워크 공항에 도착하기 전 하늘에서 내려다 본 뉴욕은 찬란했다. 마치 보석상자를 엎어놓은 듯 눈부신 빛들이 황홀감을 자아냈다. 마천루와 수많은 빌딩숲에서 뿜어내는 빛들은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나는 인간 문명의 승리에 전율했다.

나는 흡사 외계인이라도 된 듯한 심정으로 뉴욕의 밤 풍경을 정신없이 눈에 담았다. 여객기는 뉴욕 상공을 선회하다가 공항에 착륙했다. 방금 전 하늘에서 본 뉴욕의 밤풍경에 너무나 강력한 인상을 받아서인지 나는 흡사 비현실 속으로 발을 내딛는 것 같았다.

밤늦게 맨해튼의 한 호텔에 여장을 풀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창밖으로부터 끊임없이 들려오는 구급차의 다급한 비명 소리가 귀를 어지럽혔다. 구급차들이 도시의 이곳저곳에서 질주하며 외치는 소리는 밤중 내내 그치지 않았다. 그렇게도 아름답고 그렇게도 찬란한 뉴욕 풍경 속에는 하늘에서는 짐작조차 하지 못한 구급차의 비명 소리가 울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뉴욕을 잠 못 들게 하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에 한 숨도 자지 못하고 첫날밤을 꼬박 뜬 눈으로 샜다. 세계의 도시 뉴욕은 밤마다 현대문명에 시달리며 ‘나를 살려 달라’는 비명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뉴욕을 부러워하지 않게 되었고, 현대문명에 대해서 의문을 품게 되었다.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거대도시의 저 찬란함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서울은 어떤가. 서울 역시 그 규모가 다를 뿐 구급차가 울려대는 사이렌 소리의 공포는 오히려 더 절절하다. 서울의 비명 소리에는 우리가 애써 의식하려 하지 않는 불안과 슬픔이 있다. 서울은 지금 예측불가능한 북한의 핵위협에 맞닥뜨려 있다. 내가 보기에 서울은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오늘에 도취해 사는 군상들만 있는 것만 같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먹고 사느라, 밤의 환락에 빠져 지내느라, 바쁘게 이리저리 물방게처럼 해매 다닌다.

사람들은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를 흘려듣는다. 구급차가 비명을 질러도 길을 비껴주지 않는다. 서울이 밤마다 내지르는 비명 소리는 예사롭지 않다. 누구도 북핵의 해법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북한은 2018년 ‘통일대전’을 공언하고 컴컴한 밤에도 핵을 만들기에 정신없다, 마치 두더지처럼 야음을 틈타 핵실험 갱도를 판다.

우리는 아무런 대비책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적이 밤새도록 칼을 가는데 태평스럽게 고를 골며 자고 있는 꼴이다. 설마 북한이 서울 하늘에 핵을 터뜨리겠느냐고, 그러면 미국이 가만 있겠느냐고, 막연한 기대에 등을 기대고서 말이다. 내 귀는 서울이 내지르는 구급차의 비명소리를 듣는다. ‘나를 살려 달라’고 외치는 단말마의 외침소리.

사이렌의 내력을 알아보면 의미심장한 데가 있다. 본시 ‘세이렌‘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의 에피소드에 나오는 마녀다. 세이렌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선원들을 유혹하여 배를 난파시키게 한 후 선원들을 잡아먹었다. 그러나 후에 오디세우스는 세이렌이 있는 이타나섬을 지날 때, 선원들에게 귀를 막게 하고 자신은 기둥에 몸을 묶은 채 항해한다. 선원들은 귀를 막아 유혹에 걸리지 않았지만 오디세우스는 유혹에 걸려 선원들을 섬 쪽으로 가라 한다. 선원들은 말을 듣지 않고 마침내 세이렌의 유혹으로부터 무사히 벗어나 섬을 지나갈 수 있었다. 세이렌이 경보음 사이렌이 된 내력이다.

이따금 한밤중 악몽에서 깨어날 때가 있다.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태평할 수가 있을까. 다급한 경보음이 들리는데도 태평천하다. 선원들처럼 귀를 막고 있으면 사이렌 소리를 듣지 않고 이 위급한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는 돛대에 묶인 오디세우스 같은 느낌이다. 내 귀에는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나는 북한핵보다도 우리가 태평한 데 대해 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악몽을 꾸게 되는지 모른다. 다들 어떻게 되겠지, 한다. 다들 ‘먹방’ 을 보고 사는 것 같다. 나는 때로 미친 사람처럼 밖에 나가 큰 소리로 외치고 싶어진다. 충장로, 세종로 한 복판에 나가서 이 나라가 내지르는 사이렌 소리를 들으라고.

한때 어떤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된 일이 있었다. 통일이 되면 북한핵이 우리의 핵이 될 것이므로 그때는 우리는 핵강국이 되어 어떤 나라도 우리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 그야말로 동화 같은 내용이다. 내가 존경하는 광주 출신 어느 시인은 ‘핵을 머리에 이고 어떻게 발 뻗고 잘 수가 있겠는가.’라며 안보불감증을 한탄했다.

그렇다고 내가 우리도 핵을 만들자거나, 사드배치를 하자거나, 김정은을 어떻게 해버리자거나 어떤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땅에 핵위협이나 핵전쟁 같은 그림자가 어른거리지 않도록 모두의 마음을 합쳐야 한다는 것을 소리치고 싶다. 불이 났는데, 집이 불에 타오르고 있는데, 불을 어떻게 끌 것인가로 편을 갈라 다투기만 해서야 되겠는가.

문틈 시인  chkorea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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