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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뜨거웠던 올해 여름, 출근하자마자 맨 처음 했던 일은 머그컵을 씻는 일이었다. 컵에 남아있던 어제의 자국들을 지워내고, 깨끗해진 컵에 시원한 물을 가득 담아 마신다. 혼자만 들을 수 있는 크기로 볼륨을 조정하고 음악을 듣는다. 그러면 신기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전기뱀장어의 정규 2집[Fluke]까지 함께하면 더할 나위 없었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머그컵은 2012년 전기뱀장어가 단독콘서트 ‘최고의 하루’를 관람하고 받은 것이다. 머그컵의 내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전기뱀장어라는 밴드를 소개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전기뱀장어의 음악적 색깔 때문이다.

그들의 음악을 들을 때면 종종 오래된 일기장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2012년 그들의 라이브를 처음 보고 나서는 마치 매일 사용하는 하얀색의 단정한 머그컵처럼 늘 전기뱀장어의 노래가 나의 하루와 함께했다.

밴드명 때문에 전기뱀장어가 꽤나 자극적인 음악을 할 것 같다고 짐작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전기뱀장어의 음악은 국제 올림픽 대회의 강렬함보다는 친근한 사람들과 꾸준히 함께하는 생활체육의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 일상성이 녹아있다.

높이뛰기 경기에서 선수가 허공에 떠 있는 장면을 슬로우 모션 화면을 볼 때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는 걸 인지한 적이 있다. 전기뱀장어의 음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 그들의 음악에는 스쳐 지난 줄도 몰랐던 어제의 감정들, 청춘의 경험들이 고스란히 포착되어있다.

음악을 들을 때면 정지된 화면으로 보이는 높이뛰기 선수의 젖은 머리칼, 도약 후에도 계속되는 운동성을 목격하는 기분이다. ‘이 정도의 노출쯤이야 아무렇지 않다’는 너를 누군가에게 뺏기는 기분이 든다고 질투하기도 하고(1집 송곳니), ‘화장 잘 받은 날 밀린 월급 받는 날(…) 헤어진 네가 자꾸 생각나는 날이면’ 스테이크(1집 스테이크)를 먹자고 외치기도 한다.

‘좋아했던 너에게 두 손 모두 잡혀버린 한마디 말도 할 수 없어 너의 두 눈만 한없이 바라보았어 너의 두 눈 속에 내가 비친 10초 동안의 골목길’을 회상하며 우리의 유년을 소환하기도 한다. 간결한 가사와 멜로디와 리듬으로. 그래서 더욱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5월에 발매한 정규 2집 [Fluke]은 더욱이 여름에 어울리는 열두 곡이 수록되어있다. ‘함께 춤추는 파란 모래’와 ‘눈 감으면 머리를 흩트리는 무역풍’이 불어오는 해변이 있다. ‘쏟아지는 별빛 아래 나는 너의 손을 잡고’ 전기뱀장어는 묻는다.

‘우리 함께 하는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오면 점심이나 먹을래?’ 전기뱀장어스럽다. 영화처럼 특별한 순간이 아닌 일상으로 ‘너’을 초대하는 하는 모습에서 건강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귀여움과 유쾌함이 느껴진다 특히나, 기존에 발표한 적 없는 온전히 새로운 열두 곡으로만 앨범을 채웠다. 앨범을 위해 모았던 데모만 50여 곡, 최종 레코딩 전까지 수차례 편곡 작업을 거듭했다고 한다.

직접 라이브를 들어보길 원한다면 전기뱀장어가 라인업에 올라있는 2016 렛츠락 페스티벌(장소:난지한강공원 내 중앙잔디광장, 날짜:09.25 일요일)을 찾아도 좋을 성싶다. 영화제나 전국노래자랑 컨셉의 전기뱀장어다운 자체 공연을 기획하기도 하니 연말 공연도 기대할 만하다. 연이은 폭염에 심신이 지쳤던 분들에게 권한다. 기분 좋은 짜릿함을 선사하는 전기뱀장어의 음악을.

전기뱀장어(The electriceels)

황인경(보컬·기타), 김예슬(기타), 김민혁(드럼), 이혜지(베이스)로 이루어진 4인조 혼성 락밴드. ‘전기뱀장어’라는 밴드명은 황인경과 김예슬이 장어구이집 간판을 보고 지은 것이라고 한다. 2010년 여름 예술가들을 위한 창작지원센터인 문래예술공장의 지원으로 충전(EP)을 레코딩 했다. 주요앨범으로는 충전(chage) [EP], 최신유행(Trendy) [EP], 최고의 연애(The Best Date) [정규 1집], 너의 의미(I Think of You) [EP], 오리온자리(Orion) [Single], Fluke [정규 2집]가 있다.

Today’s Playlist

1. 거친 참치들

2. 송곳니

3. 스테이크

4. 적도

5. 트램폴린

6. 그녀의 모든 것

7. 최고의 연애

8. 별똥별

9. 흡혈귀

10. 써드임팩트

대동문화 96호 [2016 9,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