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반 진반, 사람들은 말한다. 결혼 생활 10년차만 되어도 ‘사랑’이 아니라 ‘의리’로 산다고. 그런데 올해 결혼 43년차라는 성악가 박계씨(68)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직도 신경구 신드롬에 빠져있어요”라고. 신경구 씨(69)는 그녀의 남편이다. 남들은 3년만 지나도 콩깍지가 벗겨진다는데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달달한(?) 눈빛을 주고 받는 비결은 무엇일까?

노래는 사랑을 실고

박계씨는 조선대 음악교육과에서, 신경구씨는 전남대 영문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몇 년 전 정년 퇴직했다. 퇴직해서 조금은 한가할 줄 알았는데 퇴직 전이나 후나 바쁘긴 여전하다. 좋은 점이 있다면 남편의 일에, 아내의 일에 동행할 수 있는 시간을 조금은 더 자유롭게 조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신경구씨는 동아시아문화도시추진위원회 위원장, 광주출입국 사회통합협의회장, 광주국제교류센터 소장을 맡아서 활동하고 있으며 박계씨는 크고 작은 무대에서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데 지난 9월에는 유스케어문화관 금호아트홀에서 ‘후고 볼프 가곡의 밤’을 가졌다.

이 부부의 만남은, 음악이 매개가 되었다. 공군에서 영어 교관으로 군복무 중이던 신경구씨는 지인의 소개로 박계씨를 만났다. 노래를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좋아하던 신경구씨에게 지인이 ‘노래를 잘 하는 여선생’이 있다고 소개한 것. 당시 박계씨는 음악교사로 재직 중이었다. 신경구씨는 음악이 좋아서 노래하는 박계씨가 있는 광주에 터전을 잡았다.

그들은 종종 같이 무대에 선다. 일본 고베에서 있었던 박계 독창회에서는 앵콜송으로 노사연의 ‘만남’을 같이 했다. 신경구씨가 노랫말의 의미를 한일관계와 연계하여 설명하고 노래를 부르자, 관객들의 반응이 남달랐다고 한다.

신경구씨는 노래하는 아내의 직업이 늘 부럽다고 한다. 취미가 직업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유년기 때부터 합창단원으로 활동하면서 노래를 즐겼고 고등학교도 성악 장학금으로 다녔으며 대학도 콩쿨에 입상한 덕에 장학금을 받고 다녔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는 일을 지금까지 60여년 한길로 걸어올 수 있어서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연구하는 연주자’로 평가 받고 있다. 조선대학교 음악교육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대학, 인디애나대학 방문교수를 역임한 그녀는 미국, 독일, 러시아 등 국내외에서 독창회를 30여 차례 가졌다. ‘나비부인' 등 오페라 10여 편에서 주역을 맡았으며 한국가곡모음, 외국가곡모음, 애창곡모음 등 음반도 7집을 펴냈다.

특히 ‘영상과 함께 하는 라흐마니노프’, ‘세계음악여행 아시아편’ ‘세계음악여행 북유럽편‘ 등 다양한 기획으로 청중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러시아 작곡가 라흐마니노프의 가곡을 소개하기 위해 3년 동안 러시아어를 공부하였으며 ‘세계음악여행’을 준비하면서는 각 나라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대표적인 예술가곡을 선곡하여 악보를 구하고 발음을 익히는데 꼬박 1년이 걸렸다.

“아내는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이 있다면 찾아가서 배웠어요. 비용이 얼마든,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되든. ‘내가 교수다’, ‘내가 최고다’라는 그런 자세를 버리고 늘 배우고 연구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아요.”

그녀는 음악회를 기획할 때 남편의 도움을 받는다. 세계음악여행을 기획할 때도 곡 자체가 영어, 독일어, 스웨덴어 등 모두 외국어인데 그 속에서 자료를 찾고 곡을 선별하는 것은 만만치 않았으나 남편이 도움을 줬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한국 가곡의 시 해석에서 ‘최고의 리릭(lyric) 소프라노’라는 그녀는 부드러우면서도 풍부한 성량, 서정적인 곡 해석으로 특히 우리 가곡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 특장을 발휘하고 있다.

떡은 똑같이 나누지 않는다

노래가 좋아서 아내를 만났고 그래서 광주에 정착한 신경구씨. 그가 광주국제교류센터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9년. 1993년부터 시민연대를 도와주고 있었는데 그것이 인연이 되어 광주국제교류센터를 맡은 것. 당시 그는 전남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시민연대 참여와 영문과 교수라는 직함이 광주국제교류센터를 ‘떠밀려서’(?) 맡았다고 한다.

현재 광주국제교류센터에서는 한국어학당, 영문잡지(Ｇwangju Ｎews) 발행 등 외국인 지원사업과 국제교류사업(외국인 초청강좌·국제 심포지엄·홈스테이), 문화사업(광주국제문화축제·한국 전통문화체험 프로그램), 국제지원 사업(국제청소년 탐방)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전개하고 있다. 현재 광주국제교류센터는 어느 지역보다 후원 회원들이 많고 규모가 큰 국제 행사를 치러내고 있지만 초창기에는 ‘국제’라는 말에 걸맞지 않게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센터를 맡고 보니, 광주시청에서 연 1천만 원 지원하고 회비라고 해봤자 2-3백만원. 이것으로는 간사 봉급도 못 줄 정도였어요.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아무 것도 없었죠. 가장 큰 어려움이 재정, 그리고 회원 확보였습니다.”

전남대 재직 시절, 40여년을 자전거로 출퇴근을 했다는 그의 근성(?)은 여기에서도 나타났다. 아무것도 없다고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때 아내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지금도 아내는 교류센터 운영에 적지 않은 힘을 보태주고 있다. 아내가 오월음악회 등 다양한 음악회를 통해서 교류센터 홍보를 해주고 회원을 모집해주었다. 거기다 경제적인 지원까지. 경제적 지원이란, 자신의 급여 대부분을 교류센터를 위해 쓸 수 있게 하는 것. 그런 일이 17년째 지속되고 있다. 아내 다음으로 큰 도움을 준 것은 자원활동가.

“광주센터가 이만큼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자원활동가의 힘이 큽니다. 센터에서 발행하는 <광주뉴스>의 경우 기획하고 취재하고 디자인 하고 교열 보는 일 등 모든 과정을 자원활동가들이 합니다. 한 해 한 해 자원활동가들이 늘어나면서 센터에 큰 힘이 되어주고 있죠.”

광주국제교류센터의 장점은 수평조직이라는 것이다. 교류센터에는 소장실이 따로 없다. 그의 책상도 직원들과 같은 크기, 동일한 선상에 놓여있다.

“나는 17년 동안 한 번도 직원들을 꾸중하지 않았어요. 꾸중하는 순간 직원과 소장은 수평적인 관계가 될 수 없기 때문이죠. 서로 서로 존중해줘야 합니다. 우리 센터는 직원 수에 비해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육체적으로는 힘들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자부해요. 센터 직원들의 이직률이 낮은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센터를 운영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과 사람간의 교류라고 생각한다. 그는 광주시청과 예산 투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가 예산을 더 달라고 하지 않아도 광주시청에서 알아서 예산을 책정해줬다. 그들은 예산 지원 뿐만 아니라 회원이 되어줬고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회원을 권하여 회원으로 가입하게 했고 자원 활동도 해주었다.

회원 중에는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를, 간난 아이까지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최연소 회원이라고 자부심을 가졌다. 교류센터의 도서실도 외국인 회원 중 한 명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책 20권을 기증한데서부터 시작되었다.

<광주뉴스>를 만드는 자원활동가는 자신이 광고도 따오고 배달도 하고 기사도 쓰면서 ‘머리 털이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광주뉴스>는 9월 현재 통권 175호로 월간으로 발행되고 있다. 내용이나 디자인이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이런 작업을 모두 자원활동가가 하고 있다니 놀랍다.

예산 투쟁을 하지 않아도 예산이 확보되고 자원활동가들이 해마다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편이 저에게 프로포즈 하면서 한 이야기가 있어요. ‘떡을 똑같이 나누면 상대는 자기 떡이 작다고 생각한다. 상대방 떡을 조금 크게 나누면 좋다. 우리 손해 보고 살자’라고.”

손해를 보고 살자는 그의 마음, 그 내려놓음이 광주교류센터를 여느 지역보다 더 규모 있고 활성화 시키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는, 자신이 본 손해를 누군가에게 베풀었다고 생각지 않는다. 자신이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에 대한 반환이요 사회에 대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결혼 43년차, 이 부부의 달달한 눈빛의 비밀은, 여기에 있었다. 남편은 아내의 직업이 부럽고 아내는 남편의 손해 봄이 존경스럽다. 서로가 서로를 부러워 한다. 존경하지 않으면 부러워할 수 없다. 서로의 행보가 늘 부럽고 존경스럽기 때문에 긍정의 에너지가 넘치고 지금도 그들은 신드롬에 빠져있는 것이다. 필자는, 그것이 더욱 부럽다.

대동문화 96호 [2016 9,10월호]

정명혜 남부대 언어치료청각학과 교수  chkorea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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