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담양군 용면 용추봉에서 발원하여 구비친 물길은 광주를 경유 나주, 영산포를 지나고 큰바위라는 뜻의 우람 바위에서 와전된 앙암 바위를 거쳐 민물장어 맛으로 기억되는 유명한 구진포와 회진에 이른다.

수은 강항 선생은 그의 문집에서 회진의 풍경을 호서 제일이라 말하고 있다. 산과 물이 어울려 풍광이 뛰어난 고장이리라. 회진 임씨 바꾸어 말해 나주 임씨의 관향인 회진의 지명은 백제 때 두힐현(豆肹縣)이라 했고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 회진(會津)이란 이름을 얻었다. 영산강에 있는 나루터와 관련되어 이름이 붙은 듯하다.

고려 충신 은둔처를 찾아 나서다

나주 임씨 9세손인 감무공 임탁은 고려가 망하게 되자 불사이군의 정신으로 벼슬을 버리고 몸을 숨길 은둔처를 찾았다.

고려 충신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이었던 그는 해남 감무를 역임한 바 있으며 풍수지리에 밝은 또 다른 두문동현의 권유를 받아 은신처를 잡게 되었다. ‘자손이 번성할 곳’과 ‘재물을 이룰 곳’ 중 한곳을 정하라고 했을 때 감무공은 주저 없이 자손이 번성한다는 ‘갈마음수(渴馬飮水)’ 형국을 택하였고 낙향하여 나주 회진에 터를 닦아 중조이자 나주 입향조가 되었다.

조선 개국 시에는 벼슬한 인물이 없다. 그 연유가 바로 입향 조의 유훈이 1백여 년 간 벼슬에 나가지 말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고을에서 학문에 열중하는 선비로서 살기를 바랐고 그들의 후손은 생업에만 종사하며 충절의 가문을 이어 왔다.

1백년이 시간이 흐른 후 14세손인 임평(1462∼1522)은 무과에 나가 종3품인 전라도병마우후 벼슬에 오르게 되었고 중종반정 후 정국공신이 되면서 가문을 열게 되었다. 그의 아들 임붕(1486∼1553)은 문과에 급제해 공조 참의, 경주 부윤, 광주 목사를 지냈다.

임붕의 자녀로는 익(장수현감), 복(승정원정자), 진(오도병마절도사), 몽 등 네 아들을 두었다. 이들의 후손들은 소과 165명, 문과 51명, 무과 120명 등이 등과하여 벌족을 형성하는 데 한몫을 했다. 가문이 번성했다.

종가의 대종손인 임정렬(1973생) 씨까지 양자를 한 번도 들이지 않고 종자종손으로 32대까지 내려온 것을 큰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한 가문을 이끌어 가는 건 종손이 아니라 종부라고들 한다. 노종부인 효찬(曉澯) 이화주(李和珠. 1946생) 씨는 본관이 경주로 스물여섯 살에 해남에서 시집을 왔다. 그러나 38세에 남편이 작고한 후 시어머니와 어린 2남 1녀 부양을 홀로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을 텐데 다행히도 자녀들은 모친의 말을 잘 따라주는 효심 가득한 아이들로 성장했다고 한다. 자녀들도 모두 객지로 떠나고 커다란 종택에는 노종부의 부지런함만이 곳곳에 널려 있다. 마루와 방안에 걸려있는 그림은 1980년도부터 배우기 시작한 서예와 문인화를 토대로 이미 전국으로 소문난 한국화가로서 종부의 기품을 알려주고 있다. 종가는 전통한옥 숙박 체험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로 활용되고 있고, 십 수년 전 종택 주변에 심어놓은 헛개나무 열매를 가공해 만든 헛개차로 방문자들에게 대접하며 인터넷을 통해서 판매를 하고 있다.

종택에서 영산강 시원한 영모정을 바라보다

3천여 평의 대지에 대종가에는 안채인 금은당, 사랑채인 금리헌(錦里軒), 임평을 위한 부조묘, 4대 봉사를 위한 사당채가 있으며 공간과 공간을 나누어 은근함을 살린 담장과 수석과 연못, 계절마다 다양한 꽃을 피우는 수목과 꽃으로 어우러진 정원을 가지고 있다.

금은당(錦隱堂)은 임탁의 고고한 충절을 기리고자 나주의 별칭인 금성의 금(錦)자와 높은 덕을 안고 숨은(隱) 은자의 집이란 뜻으로 보인다. 금은당 현판은 마당에 들어서기 전 대문간에 걸려 있으며 안채의 당호를 말한다.

임붕은 쇠락해 가는 가문을 일으킬 뜻을 세운 부친 임탁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1553년 부친의 행적을 적어 사당에 제사를 지내라는 장묘우문(藏廟宇文)을 지었다. 이후 460여년간 대대로 종택내에 임탁을 향사하는 부조묘를 세우고 매년 음력 12월 5일과 음력 1월 12일 향사를 하고 있다. 영원히 제사를 모신다는 뜻의 불천위는 나라에서 공이 큰 어른에게 내린 ‘국불천위’와 향교에서 유생들이 정하는 ‘향불천위’가 있으며 가문에서 선조를 정해 기리는 ‘문중불천위’가 있는데 이곳은 문중불천위에 해당한다.

4대 봉사를 하던 가묘는 2000년부터 종손 부친만 향사하고 그 윗대 되는 조부, 증조, 고조는 양력 4월 5일 청명 한식날을 조상의 날로 정해 하루에 향사한다.

종택에서 1백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영모정은 본디 귀래정으로 임붕이 선비들과 시회를 즐기던 곳으로 1520년에 건립했다. 이후 임붕의 아들(익, 복, 진, 몽)들이 선친의 거처를 기념하여 1555년에 중건하면서 영모정이라 개칭했다. 영모정 바로 앞에는 거북선을 설계했다는 둘째 아들 임복이 부친을 그리워하며 남긴 시가 있다. 충절의 바탕에서 효심으로 이어지는 마음을 읊을 수 있다. 임붕의 손자 백호 임제는 이 영모정에서 시문학을 공부했고 관직을 그만둔 후 이곳에서 말년을 유유자적하기도 했다. 백호 임제 문학관에서 그의 생애를 만나볼 수 있다.

깨끗하고 높은 뜻을 지녀라

안채 마루에 걸린 ‘청고근졸(淸高謹拙)’은 나주임씨가의 종훈이다. 깨끗하고 높은 뜻을 지니고 스스로 삼가며 겸손하라는 의미이다. 임탁의 13세손으로 능주 목사를 역임한 노촌 임상덕의 글을 종훈으로 삼았다.

습정공 임환은 자녀들을 훈계하기 위해 다섯 가지 몸을 바르게 하는 법인 오잠서(五箴書)를 지어 가르쳤다. 입지잠(立志箴. 뜻을 세우는 법), 경의잠(敬儀箴. 거동을 조심하는 법), 독학잠(篤學箴. 학문에 독실하는 법), 접물잠(接物箴. 사물에 대하는 법), 택교잠(擇交箴. 벗을 사귀는 법)이 그것이다.

노종부의 솜씨는 줄곧 이어지는 제사 음식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손맛은 나주전통 음식요리 강사로 초청되어 많은 사람들과 그 맛을 함께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부조묘 안에는 문중입의가 걸려있다. 내용인즉 한식과 추석에는 제수를 갖추어 축문을 읽고 토신에게 제사 지내라. 설과 단오에는 제수를 대략 갖추어 술도 한잔 올리되 축을 읽지 말고 토지신에게도 제사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제물도 설과 단오에는 세 가지 포 한 그릇, 식혜 한 그릇, 국수 한 그릇, 떡 한 그릇, 고기적 한 그릇, 술 한 병으로 적어 두었다. 제물은 모두 여섯 가지를 넘지 말고 정성을 다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정과, 약과, 민물 새우로 담근 토하젓과 삭힌 홍어찜은 나주임씨 대종가의 내림음식으로 손색이 없으며, 여름날 무더위에 지친 손님에게 대접하는 시원한 헛개차와 어름과 함께 만든 수박차는 한숨 돌리기에 충분하다.

대동문화 96호 [2016 9,10월호]

최성은 전문위원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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