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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녹여 쓴 흔적 없는 시를 경계한다연탄재 시인 안도현
김영순 광주문화재단 문화예술교육팀장 | 승인 2016.10.26 08:46

그에게로 가는 길은 가깝고도 멀었다. 아니 쉽지 않았다. 약속한 날 그를 찾아 전주로 가는 고속도로 위에서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발치를 해서 인터뷰가 어렵다는.

그러나 우리 일행이 이미 도착 직전이라는 것을 알고 차나 한잔 하고 인터뷰는 다른 날 다시 잡자는 내용이었다. 시인 안도현과의 만남은 그렇게 이뤄졌다.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하는 그의 얼굴은 대체나 부어있었다.

계속되는 치통에 급작스럽게 발치를 했고 그로 인해 부은 얼굴은 일단 사진촬영에 도움이 되지 않았고 대화도 순조롭지 않은 터였다. 전주까지 먼 길을 왔는데 정말 미안하다며 모월모시를 기약하고 그냥 되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모월모시가 문제였다. 동행해야 할 사진작가에게 피치 못할 급한 사정이 생겼다. 그 모월모시에 우린 만날 수 없었고 그래서 다시 날을 잡아야 했다. 급하게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급한 상황에서 바로바로 연락을 하지 못하는 게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다.

처음 노크하던 때부터 쉽지 않았다고 했다. 편집부의 이야기다. 핸드폰이 없는 관계로 접선은 애오라지 이메일뿐이었다. 며칠의 기다림 끝에 겨우 메시지를 받고 답신을 보내며 간신히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고 했다.

디지털 세상에 휴대전화도 없는 시인

빨리 약속을 변경해야 할 필자로선 마음이 급했다. 시인이 근무하는 전주 우석대 문창과 조교에게 연락해보아도 “이메일로 연락을 남기세요”란 답뿐이었다. 문명의 이기를 거부한 시인에게 가는 길은 녹록치 않았다.

사정을 간단히 적은 내용을 이메일로 보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수신확인을 하지 않는, 시인의 느긋함이 그 때 정말 싫었다. 약속한 날은 뽀짝 다가오고, 가슴은 타들어갔다. 다 같이 문명의 이기에서 벗어나면 모를까.

때로는 젖어들고 싶은 아날로그의 방식이 이미 현대의 문명 이기에 젖어버린 우리에게 얼마나 큰 불편을 던져주는지. 상호 접근 채널이 다른 게 정말 답답하고 불편했다. 당일 아침에야 겨우 그가 이메일을 확인함으로써 약속을 간신히 미룰 수 있었다.

우여곡절을 거쳐 이뤄진 두 번째 만남. 고창의 한 커피숍에서였다. 고창의 모 고등학교에서 특강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라 했다. 최근 특강이나 워크숍 등을 통한 일반 대중과의 만남이 잦다. 요청을 물리칠 수가 없어서라고 간단히 말한다.

품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목이다. 자신을 찾는 이들에게 거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년이면 1백회 가깝게 특강에 나선다. 박근혜 정부 하에선 시를 절필하겠다고 한 그를 대중은 시로 만나지 못하기에 직접 만나고 싶어 하나 보다.

자신만 편하고 상대방은 너무 불편하다는 필자의 하소연에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핸드폰이 있었으나 시인으로서 외로움의 시간이 차단돼 없애버렸고 그 이후 자신은 자유와 해방을 맞았다고 실토한다.

그는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다 아는 ‘연탄재’ 작가다. 시 제목은 ‘너에게 묻는다’인데 제목을 대신해 연탄재 작가로 통한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너에게 묻는다)

 

따뜻함을 지녔을 법했다. 만나기 전부터 그런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따뜻한 감성 못지않게 결기와 독기 넘치는 강단짐도 있을 법하다.

박근혜 정부 하에선 절대 시를 쓰지 않겠다는 절필선언을 한 시인, 그의 컬러를 단정 짓는 일은 간단치 않다. 정말 그랬다. 만나고서도 그랬다.

일단 편했다.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약속 연기가 쉽지 않아 전전긍긍했을 필자를 위로해주었다. 다정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었다. 질문을 하면 어느 글에 그걸 적었는데 그 내용을 보내준다 한다.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문목록을 이메일로 보내주길 요청한다. 얼핏 보기에 굉장히 친절한 듯 싶은데 필자에겐 불편하기 짝이 없다. 간단한 1~2분용 콩트를 희망하는데 1시간짜리 다큐를 주겠다는 거다. 결국 조직에 소속돼 업무에 치인 필자는 즉석에서 듣고자 했던 몇몇 질문을 굳이 이메일로까지 보내는 여유로움을 갖지 못했다.

대동문화 독자들에겐 치명적인 실례다. 필자를 통해 대신 시인의 이야기를 이모조모 들어보고 엿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낱낱이 전하지 못한 점은 사실, 필자의 잘못이 크다. (하여, 독자 분들에게 정중하게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 연탄재 시에서도 느끼다 시피 따뜻하고 편한 감성이 뚝뚝 묻어난다.

시를 쓰지 못해 근질거리지 않느냐는 말에 일단은 마감을 하지 않는 게 정말 편하고 좋다고 한다. 그래도, 뭔가 미적지근할 것 같다고 하자 “아, 그건 트위터로 해결합니다.”란 답이 돌아온다. 세상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전엔 시로 썼다면 이제 그 트위터로 날린다. 그러면 다소의 근질거림이 해소된다.

세상을 보는 그의 시각과 관점이 트위터를 통해 사방으로 흩어지고 모아지며 사람들과 스킨십을 멈추지 않는다.

“이제 위로의 문학이 답은 아닙니다”

따뜻함과 까칠함을 동시에 지닌 다소의 이중성과 복합성을 지닌 시인이 절필을 다시 되돌릴 때 세상에 어떤 포효를 날릴까. 궁금했다. 넌지시 묻는다. 어떤 글을 쓰실래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시를? 아니란다. 그건 그동안의 것으로도 족한 듯 하단다. 이젠 다소 수용하기에 불편할 수도 있는 시를 쓴단다. 달콤함만으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없기에 듣기에 불편하고 꾹꾹 찔리는 걸 쓰고 싶다고 말한다.

“이제 위로의 문학이 답은 아닙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그건 자신 안에 품었던 부분이다. 일면 따뜻함으로 표현했지만 세상의 수많은 상황을 품었던 시였고 글이었다. 이제 절필을 접는 날, 그걸 따뜻함만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토해내겠다는 이야기다. 알 듯 하면서도 사정없이 궁금해진다.

시인은 어느 글에선가 이렇게 고백했다. 일필휘지의 필법을 익히지 못했다고. 그러나 후회하지 않는다고. 그의 시작법은 결코 통찰력이나 직관력에 의존하지 않는다. 시 쓰는 실력은 퇴고실력이다고 단호히 말한다.

자신 안에 있는 언어를 직관적으로 뽑아내 쓰는 게 아니라 쓰고 또 쓰고의 반복, 즉 조탁과 퇴고를 통해 시가 이뤄진다. 그 방식은 그에게 변함이 없을 터이다.

그에게 시를 읽지 않고 시를 쓴다는 건 불경에 가깝다. 그래서 대중강좌에서도 강조한다. 시를 잘 쓰고 싶으면 많이 읽고 쓰라고. 대체나 첫 번째 만남 때 찾아갔던 그의 연구실은 책의 숲이었다.

종대로 한권씩 천장을 향해 쌓인 책은 여러 그루의 나무, 즉 숲을 연상케 했다. 책의 숲, 핸드폰과 연을 끊은 세상에서 시인들이 쏟아내는 시세계에 빠져 지내는 그는 행복하면서도 불편하다. 시 세상으로 들어간 덕분에 행복하고 세상이 똑바로 돌아가지 않는 듯 해서 불편하다. 그런 복잡한 심정이 불편함을 그대로 달고서 시로 표현될 날이 머잖았다.

독자들도 시인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가슴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시간을 녹여 쓴 흔적이 없는 시’, ‘말 하나에 목숨을 걸지 않는 시’에 경계를 품고 있는 시인은 어떤 시를 쓰더라도 시간을 차곡차곡 채워 한자 한자 눌러쓸 것이다. 불편함이 있을지라도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다독이는 일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다, 아마도 그는.

대동문화 96호 [2016 9,10월호]

김영순 광주문화재단 문화예술교육팀장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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