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전남 영광 묘량 삼학리 916번지가 제 고향입니다. 영광 묘량초등학교 5학년 때 월반을 해서 광주 숙문중학교(지금의 송원중)를 다녔어요. 중학교를 졸업하고 16살 때 양복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지요.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자 고등학교 진학을 못했어요. 어머니께서 양복 기술을 배우라고 권유해 주셨고, 아버지께서도 이왕 기술을 배우려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라고 격려해 주셨어요. 세계기능올림픽 금메달 수상자들의 카퍼레이드가 김포공항부터 서울까지 이어지던 시절이에요. 양복 직종에 금메달 수상자를보면서 나도 양복 디자이너로 성공해 보겠다는 꿈을 그때 품었습니다.

양복기술자의 오롯한 도전 45년

1972년 대성양복점에서 견습공으로 양복일을 시작했어요. 허드레 잔심부름부터 했지요. 연탄불을 피우고 연탄불 위에 연탄 다리미을 달궈 재봉사가 다림질할 수 있게 준비했어요.

라사점에서 옷감 가져오는 심부름과, 안감과 작크(지퍼)나 단추 같은 부속품 조달 등 이런 일들이지요. 전기다리미가 사용되기 전 아이롱이라고 불리는 연탄 다리미에 불을 달구는 일부터 손바느질, 다리미질, 미싱 박음질을 거쳐 바지 만드는 봉재 일을 배웠어요.

1974년에는 태창양복점에서 바지 봉재일을 했어요. 그때는 봉급제와 도급제(성과급)가 있었어요. 봉급제는 매달 월정급을 받고 일하는 방식인데, 돈보다는 기술을 빨리 배우기를 바라는 기술인들이 선택하는 월급쟁이고. 도급제는 양복 짓는 만큼 수당을 받는 방식이라 일한만큼 돈을 많이 벌 수 있었어요.

나는 봉급제로 일하면서 기술을 먼저 배웠어요. 바지와 조끼 짓는 기술을 배우고 양복저고리, 코트, 예복등 상의 봉재를 배우게 됐어요. 그리고 처음 양복쟁이 꿈을 가졌던 기능경기대회 출전은 참가 기술 선수의 연령 제한(20세)으로 포기하고 군대를 다녀왔어요.

24살 때인 1979년 12월부터는 충장로4가 태화양복점(김득수)에서 재단사 보조로 경영과 재단을 동시에 배우는 과정을 거쳤어요.

그때 태화양복점 재단사는 신영남 씨인데 내 사부지요. 이분은 70년대 중반부터 광주 최고의 명문 런던양복점(정병모)에서 재단을 배웠고. 런던양복점 정병모 씨는 해방 직후 세워져 많은 기술자들을 양성해 광주 양복업계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대흥양복점(김백운)에서 기술을 배웠어요.

광주에서는 1910년대에 광주에 일본인이 운영하던 양복점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옷 용어들은 대부분 일본말이에요. 해방 전에 일본인 양복점에서 기술을 배운 사람들이 양복점을 내기도 했어요. 해방 후에는 양복점이 많이 생기게 되는데 대흥양복점이 대표적이에요. 70년대 80년대 양복점을 낸 분들은 여기서 대부분 견습을 받았다고 합니다.

60년대 70년대가 충장로 양복점 양장점 양화점의 전성기로 서너 집 건너 한 집 꼴로 있었어요. 양복 한 벌 값이 샐러리맨 3~4달 월급과 맞먹었어요. 그래서 티켓으로 월부 판매를 하기도 했지요.

양복 재단사가 되기 위해서는 패턴의 기술을 배우고, 체형을 알고 체형에 맞는 양복의 기술을 배우면 재단사가 되지요. 충장로 메인 재단사가 되기 위해서는 스승님으로부터 3~4년 간 기술을 배우고 독립하여 지방 재단사로 1~2년 광주 변방의 재단사로 1~2년의 트레이닝 기간을 경험하고, 충장로 양복점 재단사가 되는 게 보통의 재단사들의 걸어온 길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재단보조 1년 반만인 1981년 가을부터 태화양복점 재단사가 됐어요

그때 제가 재단사가 되는 것은 저의 기술 연구의 노력도 중하지만 저의 스승님과 김득수 사장님의 기술자를 키우고자 하는 용단과 결단이었습니다. 그 결정에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서 더욱더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태화양복점에서 84년까지 근무하다. 그해 가을철부터 1960년대부터 광주의 명문양복점으로 자리한 한성라사에서 재단사로 스카우트되어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5년간 근무하던 한성라사를 끝으로 1988년 11월 17일 날 제가 창업을 하게 되었어요. 제가 재단을 배웠던 태화양복점 상호를 김득수 사장님에게 물려받아 태화양복점으로 결정하고, 광주 동구 충장로로 들어와 개업하게 되지요. 2000년도에 전병원 양복점으로 상호를 바꿔서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양복 1벌이 3달 월급과 맞먹어

고객의 몸 치수를 잘 재고 스타일과 실루엣 등 디자인을 한 후 고객이 원하는 원단을 찾아야 합니다. 패턴을 그린 후 재단합니다. 시침한 실이 드러나게 가봉복을 제작합니다. 옷을 입어본 고객이 만족하게 되면 시가봉 옷을 해체한 뒤 보정을 마치면 한 땀 한 땀 장인의 정성으로 박음질을 합니다. 단추나 주머니, 안감 등을 제작하고 감쳐서 꼼꼼하게 마무리하고 다림질을 합니다.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 이 작업을 반복하지요.

양복 기술자가 되면 굶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성공하려면 성실해야 합니다. 고객들과 신뢰를 쌓아야 하고 양복 만드는 기술을 인정받아야 하지요. 스물다섯에 당시 최연소 재단사로 일하던 시기에 한 번은 보디빌딩 선수가 양복을 맞추려고 찾아왔어요. 어깨와 허리, 팔과 다리의 체형이 일반인과는 달랐어요. 제가 그때까지 가진 모든 기술을 총동원해 옷을 만들어 드렸는데 고객이 만족하지 못했어요. 실패한 거지요. 제가 보기에도 창피했어요,

고객은 당연히 불만을 토로했지요. 그런데 저의 실수는 더 가관이었어요. 저는 그 고객에게 일반 체형이 아니니 옷이 그만하면 됐지 않느냐고 변명을 했어요. 그 고객의 말씀은 “특별한 체형이라 맞춤 양복을 하러 왔는데 내 몸에 맞는 옷을 만들 수 없으면 그것은 양복 디자이너의 기술이 부족한 거지요.”

그 고객의 대답이 지금도 잊히질 않아요. 그 말에 마음에 맺힌 것이 많았어요. 그말씀은 지금까지 저의 기술을 열심히 채찍질하는 가르침으로 남아있습니다. 너무나 큰 가르침이었어요. 다시 한 벌 만들어 드렸지만, 부끄러웠습니다.

그때부터 양복 기술을 더 익혀 최고가 되고자 했어요. 명동의 이성우 양복 명장, 이승만 대통령 옷을 지은 서상국, 지금은 국제대학을 개설 양복 기술를 양성하고 계시는 대한민국 명장 문병지님,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의 옷을 지었다는 세기 테일러 연구원장 윤인중님, 이홍균 명장님 서일화 명장님, 부산의 박종규님 등 전국의 소문난 양복명장들에게 제가 그린 옷본 그림과 함께 궁금한 기술을 물어보는 편지를 써 보냈어요.

그리고 찾아가 필요한 기술을 가르침 받았습니다. 한분도 거절하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아이고 전라도 촌놈 전병원이 왔구나.’ 하면서 반겨주고 기술을 전수해 주셨어요. 그리고 그분들의 기술 서적, 자료 등을 책자로 복사해 와 공부했어요. 지독하게 열성을 부렸습니다.

1980년대 들어 양복점 운영이 위기를 맞게 됐어요. 기성복 시장이 성장해 충장로에도 기성복 판매점이 맞춤 양복점보다 많아지게 됐어요. 그때 400여개 정도의 양복점이 충장로에 있었어요. 그런데 이때를 기점으로 점차 양복점들이 문을 닫게 됩니다. 90년대에는 120여 곳, 2000년대에는 70여 곳, 지금은 9개 정도가 남아 있어요.

2014년 패션디자이너 명장 선정

올해로 양복점을 낸지 30주년에 양복 일을 한 지 45년이 됐네요. 기념행사를 올해 11월에 할 계획이에요. 터미널과 도청이 옮겨가고 충금-금남지하상가가 생겨나 상권이 이동했어요. 그리고 기성복 시대가 되서 양복점 하던 사람들도 사업 종목을 바꾸기도 했지요. 나는 89년에는 방송통신대학교 경제학과 학사학위도 받아 공부에 대한 한을 풀었어요.

1982년 산업기사를 취득하고 86년부터 국가기술자격시험 출제 및 심사위원이 됐어요. 93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 양복 변천 100년사 전시회를 광주, 서울, 부산에서 7번 개최했습니다. 그리고 95년부터 기능경기대회 문제 출제와 심사위원을 지내왔어요. 2005년에는 신사복 <재단재봉기술 전집>을 출간했습니다. 전국 18개 교도소, 7개 대학 의상학과 등에 무료로 기증해 남성복을 배우는 학생과 기능인들이 교재로 사용하도록 했어요.

아시아 기술시범단의 일원으로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외국에 나가 우리 양복 기술을 전했지요. 2010년에는 광주지방 기능경기대회 금메달을 받았어요. 2010년에는 대만에서 열린 제23회 아시아 주문양복 총회에서 창작 디자인 부문 대상을 받았지요. 2009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복장기술문화협회 중앙부회장을 맡아 일했습니다. 2011년에는 한국 맞춤양복 기술경진대회 대상을 받았어요.

2014년에 드디어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최근 선정한 패션디자인 부문 명장에 선정됐어요. 한복, 미용 등 분야에서 호남지역 명장이 배출됐지만 패션디자인 부문에서는 처음이었고 지금도 유일합니다. 2002년 처음 ‘명장’에 도전장을 내민 뒤 12년 간 7차례 탈락하다가 얻은 영예입니다. 양복 기술로는 전국에 명장이 15명이 있고 생존해 있는 분들은 11명 정도입니다.

이 해에 대한민국 산업현장 교수가 됐어요. 광주권의 봉제업체에 기술을 지도하고 호남대 광주대 의상학과 등에서 강의하면서 기술자를 양성하는 현장 교육을 하지요. 그리고 한국맞춤양복협회 중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시대별로 생활 습관에 따라 한국인의 체형이 많이 변화하게 됩니다. 여성복보다는 그 변화가 느리지만 남성복도 늘 체험에 맞는 양복 기술을 연구하고 디자인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2012년 ‘굴신체형의 양복 재단 방법’으로 특허를, 수직 상승 줄자 개발 등 실용신안 2건 등 기술 개발에 노력했어요.

국민소득이 1만5천불에서 2만 불 정도 되면 기성복과 같은 대중적인 옷을 입는다고 해요. 그런데 3만 불 이상이 되면 다시 개성을 중시하는 맞춤 양복 시대가 된다고 합니다. 90년대 중반 이후 2010년까지는 최악의 상황이었어요. 지금은 양복계에서 기술자가 많지 않습니다.

기술을 나누고 싶습니다

2010년도 이후 맞춤복과 기성복의 장점을 결합한 시스템 양복이라는 것이 나오면서 젊은층의 호응을 얻고 있어요. 앞으로 5년에서 10년 정도의 시기에 새로운 양복 시장 구조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젊은 기술자들이 필요하고 취업 기회도 오리라 생각해요. 또 현재 맞춤양복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들이 멀지 않은 시기에 은퇴를 앞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제 아들인 전성배(27)가 작년 12월부터 양복일의 전망을 밝게 모고 양복 일을 제 곁에서 배우고 있어 든든합니다.

양복 명장이 된 것은 저 혼자 노력으로 이룬 게 아니에요. 저에게 노하우를 가르쳐 준 선배들이 있었고 고객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 모습이 있지요. 명품 양복은 입고 싶고, 소유하고 싶고, 다시 찾고 싶은 옷이에요. 그 사람의 체험에 맞고 고객의 마음에도 들어야 명품입니다.

옷을 짓는다고 하고 그래서 옷을 짓는 것은 예술입니다. ‘고객의 몸에 70%를 맞추고 고객의 마음에 30%를 맞춰라.’ 이것이 선배들이 저에게 가르쳐준 정신입니다. 그 기술을 후배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1999년 김영진, 안상수, 조순형, 이석천, 김영선, 김도언 의원 등 국정감사 최우수 의원들에게 양복을 선물했어요. 좋은 옷 입고 좋은 정치하라는 의미였지요. 좋은 옷은 입은 사람의 마음을 든든하게 하고, 일을 잘하게 만들어요. 좋은 옷 입고 나쁜 짓 하는 사람 없습니다.

광주교도소와 목포교도소 재소자들에게 기술을 가르쳤어요. 기술을 배운 재소자 중에서 양복 산업기사가 14명, 양복 기능사가 26명 자격을 취득해 사회에 복귀했어요. 저는 명장이라고 제품 가격을 인상하지 않았어요.

고객이 편히 찾는 옷을 만들고 싶습니다. 양복 기술 서적을 출판하고 후배들에게 양복 기술을 잘 가르치고 싶습니다. 지난 40년간 많은 분들께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앞으로는 다음 세대를 위해 제가 가진 것을 나누고 싶어요. 처음 양복 기술을 배울 때 부모님이 말하셨던 당부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돈을 벌기보다 좋은 기술로 사회에 도움이 되라’는 말씀이지요. 이 말을 오롯이 간직해왔습니다.

대동문화 97호 [2016 11,12월호]

백승현 기자  porum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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