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오래된 것이 꼭 쓸모가 없는 것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한 시대의 풍마를 겪으며 한 자리를 지켜온 건축물은 또 하나의 역사가 된다. 조금만 주변을 주의 깊게 둘러보면, 익숙하고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 아주 낡고 오래된 것들이 많다.

광주 충장로에 국내 현존하는 극장 중 가장 오래된 극장이 있다. 80여 년 전 개관한 ‘광주극장’은 녹슬고 허름해 졌지만, 현재도 극장 역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한국 최초의 민간인 극장으로 1907년 개관한 단성사는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통해 옛 모습을 찾기 힘들다. 그때 그 시절 극장의 추억을 느낄 수 있는 흔적은 서운하리만큼 말끔히 사라졌다.

국내 현존 극장 중 단일 상영관으로 유일

80살이 훌쩍 넘은 광주극장은 옛 모습을 고스란히 담은 채 국내 유일 단일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극장이다. 허름한 극장은 여전히 손수 그린 간판이 걸리고, 내려지고 있다.

아날로그 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광주극장을 찾는 이들은 불평을 하는 이가 없다. 관람객은 적지만 꾸준하게 오고 있다.

광주극장은 광주에 조선인이 최초로 세운 극장으로 1935년 10월 1일 개관했다. 1968년 화재 이후에는 건물 대보수를 했다. 시설을 보수한 후 건물 구조를 바꾼 적이 없다. 1997년 내부 좌석 교체와 건물 외부 일부만 개보수 했을 뿐이다.

분명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극장이지만 우렁찬 음향시설과 엄청난 크기의 스크린이 현대식 영화관에 뒤처지지 않는다. 객석도 856석이나 된다. 본인이 원하는 1, 2, 3층의 빈 객석 중에 아무 자리를 차지해도 된다. 맨 꼭대기에는 영사실이 있다.

80년 된 단일 영화관이 지금까지 제역할을 소화하고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광주극장에 들어서면 상영시간이 붙어 있고, 손만 내미는 매표소가 보인다. 매표소 주변에 손 글씨로 써내려간 알림판들은 요즘 보기 힘든 광경이다.

극장 내부의 1층 뒤편 한 가운데 위치한 ‘임검석(臨檢席)’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극장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게 한다. 지금은 찾아 볼 수 없는 임검석에 궁금증이 생긴다.

일제강점기 시절 1922년 영화에 대한 검열이 시작된 이래 극장에는 임검석이라는 좌석이 극장 내부 한켠에 있었다.

조선총독부 산하 부서기관에서 극장에서 영화상영이나 극단 공연이 있을 때 경찰관을 파견하여 현장에서 검열을 했다. 공연의 내용이 독립을 상징한다든지 비위에 거슬리면 ‘주의’를 하고, 임검석에서 경찰관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이때 호루라기를 세 번 불게 되면 공연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임검석은 해방 이후에도 검열이나 선도를 위한 공간으로 극장에 계속 자리를 잡았다. 시대가 바뀌면서 임검석은 사라졌지만, 한 시대의 풍토를 증명하는 유물로 광주극장에 남아 있다.

역사가 스며있는 장소, 보호받지 못하고 있어

당시 극장은 조선인들이 합법적으로 모일 수 있는 장소로 사용됐다. 때문에 영화 이외에도 공론의 장으로 이용했다. 광주극장은 해방 이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전라남도위원회 결성식, 백범 김구 선생의 연설 등 역사와 함께 지내왔다.

또 학예회, 음악회, 연극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곳이기도 했다. 2층으로 올라가면 60년대 극장의자가 90년대 극장 의자와 마주보고 있다.

비교체험 극과 극으로 시대의 변천사를 몸소 느낄 수 있다. 다른 한켠에는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오래된 영사기가 놓여있다.

극장 곳곳에는 영화 사랑방손님과 어머니(1961), 영자의 전성시대(1975) 등 손수 그린 빛바랜 입간판들이 서있어 극장의 역사가 살결에 닿은 듯 느껴진다.

광주극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윤연우(31)씨는 “좌석은 너무 낡아 교체를 몇 번 했었는데 실내 자재들은 옛날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며 “아직도 극장은 손 간판이 사용되고 있고, 현재는 최근 80주년 영화제를 했을 때 관객이 참여해 그렸던 간판이 걸려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80년의 역사를 간직해온 광주극장은 영화를 상품으로 가치를 여기는 측면으로 인해 공공의 문화자산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국내의 오래된 극장들은 다시 현대식 건물로 리모델링하는 탓에 빛바랜 역사의 흔적들을 지워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신문물과 근대문화를 접하던 시기.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웃음으로 함께 지내왔던 장소가 사라지고 있다.

광주극장 역시 언제 허물어지고, 사라질지 모르는 위기에 노출되어 있다. 굴곡진 역사가 스며있는 오래된 문화공간이 문화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 아쉽고 씁쓸하기만 하다.

대동문화 97호 [2016 11,12월호]

김다이 기자  -08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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