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에선 사극이 활발하다. 멀게는 삼국시대를, 가깝게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다양한 사극이 만들어진다.

물론 해학과 풍자, 연애물 등 시청률 위주의 드라마가 대부분이다. 내용과 시대가 어떻든지 사극에는 반드시 왕이 출현한다. 왕은 집무에 시달리며 상당한 고민과 고통을 느끼기도 하고 간혹, 후원을 거니며 한가롭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왕권 중심의 세상이었던 만큼 업무량은 폭주하고 날마다 이런저런 잡다한 정사에 시달리며 일과를 보냈을 것이다. 이런 왕들이 집무의 답답함을 덜기 위하여 드나들던 곳이 바로 후원이다.

후원(後苑)은 창덕궁 뒤편에 있는 국내유일의 궁궐정원이다. 임금이 자신의 처지를 저어하며 후원에 있는 부용지를 거닐다 더러운 물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올리는 연꽃에서 일순간 용기를 얻었을 법도 한 곳이다. 이 정원을 포함한 창덕궁 궁궐 전체가 1997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됐다.

창덕궁은 조선 태종 5년(1405년)에 세워진 궁궐이다. 정궁인 경복궁 다음으로 지어진 궁궐로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동궐(東闕)이라 불렀다. 고려시대 궁궐의 전통을 이어받아 개성 송악산의 만월대처럼 자연지형에 맞추어 북악산 자락의 응봉에 지어졌다. 궁궐은 대부분 인위적으로 존엄성과 권위를 드러내도록 건축되지만 창덕궁은 이러한 얽매임 없이 산자락의 생긴 모양에 맞추어 적절하게 궁의 기능을 배치하였다.

창덕궁은 광해군부터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까지 13대에 걸쳐 270년 동안 왕들이 거처한 궁궐이다. 공식적인 조선의 궁궐은 경복궁이었지만 조선 초기부터 여러 임금이 경복궁을 기피하는 일이 많았다. 그때마다 창덕궁이 궁궐로서 그 역할을 하게 된다.

임진왜란 때 불탄 궁궐 중 가장 먼저 복구된 창덕궁

창덕궁의 위상은 임진왜란으로 더욱 확고해졌다. 선조 25년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한양(서울)의 모든 궁궐이 불타버렸다. 그 후 10여년이 흐른 후 재건 준비를 시작하여 광해군 원년(1609년) 10월에 인정전 등 창덕궁의 주요 전각이 어느 정도 복구되었다. 이듬해 2월부터 다시 보수공사가 진행되어 9월에 완료되었다. 이후 역대 왕들은 창덕궁에서 주로 정무를 보게 된다.

인조반정 때 다시 궁궐 대부분이 소실되었고 그 후 인조 25년(1647년)에 재건하였는데 그때 후원의 여러 정자와 연못을 조성하였다. 정조 때 인정전 앞에 품계석을 세우고 후원에 부용지를 중심으로 부용정, 주합루, 서향각을 세웠다. 또한 국내외 서적을 보관하기 위하여 열고관, 개유와, 서고를 지었다.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는 의두합과 연경당을 지어 오늘날의 후원 모습을 마무리하였으며, 헌종은 짧은 재위 기간 동안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를 건설하여 오늘에 이른다.

조선 말기에는 서구의 문물을 도입하면서 창덕궁에도 서양식의 전등이나 차고를 설치하였다. 대한제국 시기인 1907년에는 순종이 즉위 후 이곳으로 이어(移御)하여 황궁(皇宮)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돈화문 앞에 도로가 생겨 창덕궁과 종묘가 갈라졌다. 또한 주요 전각 외의 여러 건물이 대부분 헐리는 등 궁궐이 크게 훼손되었다. 1912년부터는 창덕궁의 후원과 아울러 인정전(仁政殿) 등의 중심부와 낙선재(樂善齋) 등이 창경궁과 함께 일반에 공개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7년에는 대조전과 희정당 같은 핵심 전각이 소실되었으며, 이곳을 재건하기 위하여 1918년에 조선총독부와 이왕직에서는 경복궁 교태전, 강녕전과 그 앞의 행각을 헐어다 창덕궁으로 개조·이건하였다.

해방 이후에도 창덕궁은 한동안 그대로 방치되었다. 주변에는 민가와 학교, 대형 건물이 들어서고 1990년대 이후 복원 작업이 진행되었으며, 1997년에는 조형미와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동양의 3대 명원으로 불리는 창덕궁 후원

창덕궁의 후원은 정자와 누각과 수목이 잘 어우러진 한국전통정원이다. 예전에 매를 사냥하던 자락인 북악산 남쪽의 응봉(鷹峯) 위에 세워진 궁인만큼 자연과 어우러지는 아름다움이 또한 특징이다. 중국의 이화원, 일본의 가쓰라리큐와 함께 동양 3대 명원으로 불리기도 한다.

후원, 비원, 금원 등의 명칭이 있는데 후원은 궁과 건물의 뒤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또 아무나 함부로 출입할 수 없다고 하여 금원(禁苑)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비원’ 이름은 대한제국 시대에 창덕궁을 부르는 이름 중 하나였다.

하지만 역사의 기록 등으로 볼 때 ‘후원’이 더 타당한 이름이라 하여 공식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후원에는 약 160여종의 수목이 있는데 그중 70주 이상이 300년이 넘은 고목이다.

부용지의 연못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동아시아의 옛 생각 즉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에 의해 지어졌다. 네모난 호수는 땅이고 가운데 동그란 섬은 하늘을 뜻한다는 것이다. 섬 가운데에는 신선과 함께 한다는 소나무가 한그루 있다.

연못 왼쪽에는 두 다리를 연못가에 담그고 있는 건물이 있는데 이곳이 부용정(芙蓉亭)이다. 부용은 활짝 핀 연꽃이다. 지붕은 부용지의 연꽃이 활짝 핀 모습과 닮아 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볼 때 열십자에 정 사각형이 합쳐진 모양으로 마치 연못위에 연꽃이 활짝 핀 모습이 부용정의 모습인 것이다.

연못가의 난간은 시 쓰기도 좋고 경치 감상하기도 좋았겠지만 22대 정조대왕이 그 위에서 낚시하던 장소로도 유명하다. 거기서 신하들과 함께 시를 짓는 풍류도 즐겼다. 시를 짓지 못하는 신하에게는 벌도 내렸다고 하는데 그 벌은 바로 연못 가운데 섬으로 유배를 보내는 것이었다. 부용정 반대편 누각은 주합루다. 정조임금 때 조성된 곳인데 이 누각의 낡은 현판은 진품이다. 글씨는 정조대왕이 직접 쓴 어필(御筆)로 알려져 있다.

1층에도 현판이 걸려 있는데 규장각이라고 쓰인 현판이다. 역대 임금님들의 글을 모아두던 일종의 왕실 도서관이던 것이 정조 때부터 점차 정책개발 등을 위한 학술기관으로 발전하였다. 규장각 왼편의 서향각은 규장각의 책을 보관하거나 말리던 공간이다.

주합루로 들어가는 문은 세 개인데 그 크기가 다르다. 가운데 커다란 문은 왕이 드나들던 문이고, 그보다 작은 좌우의 아치형 문은 신하들이 드나들었던 문이다. 가운데 문 위에는 어수문이라는 현판이 남아있다. 어수문의 어원은 수어지교(水魚之交)로 임금과 신하를 물과 물고기의 관계로 비유한 것이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임금과 신하의 관계가 좋게 유지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으리라.

부용지 우측방향으로 창경궁의 담벼락이 보인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더불어 동궐로 불리던 서울의 5대 궁궐 중 하나다.

국내 다섯 번째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1997년 유네스코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창덕궁을 지정하였다. 유네스코는 교육, 과학, 문화 등 지적 활동 분야에서의 국제 협력을 촉진함으로써 세계평화와 인류발전을 증진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유엔전문기구다.

역사, 예술, 학문적으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는 유산이나 민족학상, 인류학상 그 가치가 보존할만한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 유무형 문화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다. 세계문화유산은 우리나라에 몇 곳이나 될까? 2015년까지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합하여 12곳이다.

유네스코는 세계문화유산 뿐 아니라 세계기록유산, 인류무형문화유산 등도 심사하여 관리 중에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문화유산 12곳과 기록유산 13개, 인류무형 문화유산 18개 종목 등이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1995년도에 처음으로 석굴암과 불국사, 종묘, 해인사 장경판전 등 세 곳이 한국의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후 1997년 화성에 이어 다섯 번째로 창덕궁이 지정되었다.

대동문화 97호 [2016 11,12월호]

이동호 기자  ddmhok@hanmail.net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