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는 굴곡이 있다. 길할 때가 있으면 흉할 때가 있고, 화가 있으면 복도 있다. 인간 삶은 길흉화복으로 직조된 드라마다. 그 드라마가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인가, 새드 엔딩으로 끝날 것인가 우리 인간의 판단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다. 심지어 우리는 죽음 이후에도 선악이라는 세속적 잣대로 평가된 세계로 가야 한다.

인간은 자신의 운명과 길흉화복을 도저히 스스로 어찌 해볼 수 없다. 어찌 해볼 수 없다는 것이 인간의 한계다. 그래서 신이 필요하다. 신을 청해 인간의 운명과 길흉화복을 변호하는 조정관으로 무당이 필요하다.

무당은 사제자로 신을 청하고 노래와 춤으로 제의(祭儀)를 치러 인간사의 선악의 결과를 조정하고 흥망성세에 개입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인간 입장에서는 인간의 복을 되찾아주는 수호천사이자 후원자가 된다.

우리 역사 속의 예언자 무당

단군 이래 무당은 단골, 당골 등으로 달리 불리면서 신과 땅의 인간들을 이어주는 중재자, 제사장이었다. 앞날을 내다보는 상담자, 예언자들이었다. 앞날을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영특한 사람이자 신비로운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여겨져 존경과 우러름을 받았으며 한 무리를 이끌었다.

그런 영화를 누리던 무당은 어느 때인가 7대 천민의 하나로 추락해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극단적인 신분 이동을 경험한 이들은 천민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으로 조선 후기에는 판소리 명창의 길로, 근세에는 타 직업으로의 전환, 교육을 통한 탈출, 고향과의 이별 등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도 했다.

굿은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영매(靈媒)가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노래와 춤과 연기를 위주로 인간의 행복을 비는 행위다. 어떤 때 굿을 하는가? 잡스러운 것 부정과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복을 빌어야 할 일이 있으면 늘 굿을 한다. 굿은 인간 삶의 모든 부면에서 필요하다. 제액초복(除厄招福)의 상황에서는 일늘 굿이 필요했다.

사람이 죽으면 해원시키기 위해, 병이 나면 병을 고치기 위해, 그리고 풍년 풍어를 위해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당에 모여 서낭과 용왕님께 기원하고자 굿을 한다. 짓을 짓기 위해 ‘지경닫이굿’, 집을 지어놓고 ‘성주굿’도 있고, 배를 지어놓고 ‘배영신굿’을 한다.

혼례를 치를 때도 ‘혼인굿’이 필요하다. 예전 식민 통치 시절에는 독립자금 마련하기 위한 굿인 ‘난립(亂立)’판을 벌였고, 적과 싸우기 위한 굿인 ‘의병굿’도 했다. 인간의 모든 절실한 일상사가 모두 굿의 이유가 됐다.

그러면 전라도 세습 단골들은 자기 단골 집안과 마을의 신혼부부가 잘 살라고 신랑 신부 양가에서 굿을 하는데 이것이 ‘근은손’이다. 신랑이 신부집에서 혼례를 치르고 돌아와 하는 굿인 ‘덕물림’을 하고 신혼부부가 정이 갈라졌을 때 정을 붙이는 ‘연굿’까지 했다. 이사를 했는데 탈이 많을 때는 ‘오귀 물림굿’을 한다.

방에 불이 잘 들지 않을 때도 ‘굴대 장신굿’을 한다. 지붕을 새로 이거나 기와를 올릴 때 ‘용초부인굿’, 대문을 새로 세울 때 ‘문굿’, 샘을 팠을 때 ‘샘굿’, 장독을 새로 지었을 때 ‘장독굿’을 해서 축원을 올린다.

술장사 잘되라고 ‘술서낭굿’, 삼재를 물리치는 ‘삼재맞이’, ‘삼재내기’가 있다. 산일을 할 때 ‘산신굿’, 시신이 뻣뻣해져야 자손이 해가 없는데 이를 위해 ‘복닦음굿’을 한다. 별스러운 굿까지 있다. 심지어 무당이 되려는 굿 ‘강신제’가 있고 무당마다 다른 자기의 신에게 축원하는 ‘축신제’도 있다.

사후 제의는 ‘상가 정화’ 및 ‘망인 천도’ 제의가 있고, 익사자를 위한 천도 제의도 있고 망인을 천도하는 제의도 있다. 망인 천도의 ‘씻김굿’은 망인과 유족들이 생시대로 만나 서로를 위로하고 극락에 가기를 기원하는 세계 제의 역사에서도 전무후무한 아름다움을 지닌다. 씻김굿은 드라마틱하고 슬프며 웃긴다. 죽음과 사자까지도 승화시키는 슬픔이자 웃음이다. 그래서 굿판에서 전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다.

마을 사람들이 어울려 살면서 공동으로 하는 ‘대동굿’은 두레를 짜서 농사일을할 때 하는 굿이었다. ‘도제굿’은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면서 동민 전체가 매년 당신에 제사를 드리는 굿이었다.

액을 막고 복을 부르는 굿 한 판!

길할 때는 조심하고 흉할 때는 조신하며, 화가 있을 때는 인내하며 복이 왔을 때는 겸손하게 자족한다. 이것이 우리 조상들의 삶의 지혜인데 길하고 흉한 삶의 길목에서 굿이 필요했다.

굿은 그래서 생활을 윤택하게 하기 위해, 살맛나게 하기 위해서, 재미있어서 굿을 한다. 굿을 하는 목적이 달성되고 성취감이 따르면 굿에는 신명이 안다. 그리고 굿판에 모인 사람들이 참여해 마음과 몸을 모아줘야 굿의 제대로 된 판이 벌여진다.

그래서 굿은 만남의 공동 의식이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일, 일과 일, 신과 인간이 만난다. 그 만남의 동질감과 내 안에 담긴 신성을 확인하는 일이 바로 굿이다. 이 신성끼리의 만남에 불을 붙이는 것은 노래와 춤과 장단이요, 재담과 덕담이다. 술과 음식은 이 만남의 촉매제다. 신과 만난 사람들은 신이 되어 어우러진다. 굿은 그래서 인간 삶에서 벌어지는 만남의 페스티벌이다. 생명의 판타지이자 신명의 판타지다.

푸닥거리로 간단히 음식을 차려놓고 부정을 푸는 몇 시간짜리 굿판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개 굿판은 한번 벌어지면 2박 3일은 기본이고 어떤 때는 일주일 지속되는 때도 있다. 무당은 무복을 입고, 무가를 부르며, 무악의 가락에 맞추어 신무를 춘다. 그리고 신의 말인 ‘공수’를 의뢰자에게 내린다. 굿은 신을 청하고, 대접해주고, 인간의 기원을 말하고, 신을 보내드리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하나의 굿은 12~30가지 작은 굿이 모여 이루어진다.

굿의 생명의 판타지이자 만남의 페스티벌

굿은 각각의 세계가 그것이 생과 사의 세계라 할지라도 전혀 단절된 다른 차원의 세계가 아니라 우주 질서 속에서 서로 왕래 교통하는 세계라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현세적 삶의 세계 속에서 얼마든지 시공을 초월한 감통과 예지가 가능하다고 본다. 그래서 굿은 소통의 맞손이다.

굿은 인간이 자연 질서에 적응해 그 질서에 어긋나지 않는 일생을 살 수밖에 없다고 가르쳐준다. 생로병사의 운명을 긍정하면서 그 질서에 합일하는 일생을 살라고 말해준다. 죽은 자는 현세에 대한 미련 때문에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의 질서에 개입할 수도 있어서 혼백을 죽은 자의 위치로 돌려보낸다. 이것이 굿의 인간관이다. 그래서 굿은 자연주의적이고 현세 중심적이고 인간중심적이다.

굿을 통해 우리는 인간 이익을 절대화하고 신의 권위를 상대화한다. 또 음주가무로 사람과 신이 만나는 장치로 놀이를 통해 신을 놀게 하고 사람은 즐긴다. 신과 인간이, 모인 인간끼리도 소통하고 화해한다. 그리고 삶의 가치와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개인 굿이나 마을굿을 막론하고 굿의 준비와 진행 과정을 통해 집단공동체의 조직과 역동성을 표출한다.

굿은 한국의 역사와 한민족의 문화 속에서 한 번도 단절된 적이 없이 우리 문화의 원천을 이루고 있다. 한민족의 DNA를 열어보면 그 가장 중심에 굿 문화와 굿의 철학이 박혀 있다. 굿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해가면서 문화의 지층을 쌓아왔지만 굿의 공동체 의식, 현세중심적 가치관, 현실적인 적응력, 문화 전승력 등 본질적인 요소들은 불변한 채 우리 삶을 끌어가고 있다.

굿은 강인한 생명력으로 살아남았다. 그 이유는 외래의 사상이나 학문이 주로 지배계층에 의해 수용되어왔으나 굿은 대부분 피지배층을 이루는 일반 서민 대중에 의해 향유되고 존속되어 왔다.

미래 한국인의 굿판을 위해

우리 굿은 끝없이 수난을 당해왔다. 고련 중엽 이후 관권에 의해 탄압을 받고 조선 이후부터는 유교적 사상을 무기로 무속을 탄압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의 민족 문화 말살 정책은 극악했고, 새마을 운동 이후의 서낭단 산신각 파괴 행위에서 미신타파를 하자고 국가가 나서기도 했다. 다른 종교 신자들에게 배타를 받으면서 이제 굿은 산속이나 도시 깊숙한 곳에서 은밀히 행해지는 의례가 됐다.

굿은 현세적이고 합리적인 것이 바로 서구적인 것이다라는 인식 풍토 속에서 짓밟힌 바 있다. 굿은 현실계와 비현실계 양자를 모두 인식하는 입체적 사고와 철학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입체적 사고 때문에 굿과 무당이 현대에 핍박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굿은 이것도 굿의 생명 가치로 극복해나갈 것이다. 굿은 인간의 삶을 조상의 뿌리를 이어서, 세상에 태어나, 오래 살면서, 재물을 많이 가지고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면서, 액운은 물리치고, 병이 들면 빨리 고쳐서 건강하게 살다가 죽어서도 영혼이 내세의 좋은 곳으로 가라고 비는 것이다.

인간의 삶이 유한한 한 이 기원의 말은 인류의 역사 내내 지속될 것이다. 그래서 굿은 내내 지속될 것이다. 그렇게 굿의 생명력이 이어지지 않고 끊길 위기에 있다고 해서 걱정할 것은 없다. 큰 굿을 한 판 벌이면 되기 때문이다. 다만 그 굿판은 매우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

대동문화 97호 [2016 11,12월호]

백승현 기자  porum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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