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이 지역 사람들은 김을 해우(海牛) 즉, 바다의 소고기라고도 불렀다. 김은 식재료가 부족했던 겨울철 귀한식품 중 하나였다. 아침마다 온가족이 밥상머리에 둘러앉으면 할머니는 부뚜막에 앉아서 사그라져 가는 잿더미를 뒤집으며 살짝 구워낸 김을 한 장씩 나눠주셨다.

밥상에 앉아 김 한 장을 받는 날이면 가족들은 모두 날아갈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배급? 받은 김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김치 한 조각 얹어 먹었던 그 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바다에 기둥을 박아 줄을 걸고 잘게 쪼갠 대나무를 엮어서 김이 대나무에 붙어 자라면 시린 손을 부여잡고 겨울철 김을 훑던 그 시절에 갯마을마다 건장이 있었다. 구운 김을 갓 지은 밥에 얹어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린 간장을 살짝 찍어 먹으면 바삭함과 고소함이 입안에 번지는데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던 시절이었다.

우리나라 김 양식의 시초

해태(海苔)라고 불렀던 김은 바다에서 채취해 종이처럼 얇게 떠서 말린 겨울에 생산된 우리지역 대표 수산식품이다. 우리나라에서 김을 처음 양식한 때는 1420년대에 쓰인〈경상도지리지, 慶尙道地理誌〉에 해의(海衣, 바다를 옷처럼 뒤덮었다는 뜻)가 지방 토산품으로, 〈동국여지승람〉에 전라남도 광양군 태인도의 토산품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면 그 이전부터 김을 양식 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후 대나무나 참나무 가지를 간석지에 세워 김을 달라붙게 하는 섶양식이 시작되었고, 1800년대에 이르러 산청지역 산죽나무를 이용한 대나무 쪽으로 발을 엮어 한쪽은 바닥에 고정시키고 다른 한쪽은 물에 뜨도록 한 떼발 양식이 개발되었다. 1920년대에는 떼발 양식에서 뜬발 양식으로 개량되는데, 이 방법은 김을 날마다 일정기간 햇빛을 받을 수 있도록 조절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이 방법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광양시 중마동에서 광양제철소를 지나 태인대교를 건너면 공장지대가 펼쳐지고 망덕포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최초의 김 시식지가 보인다. 정면에서 바라본 광양 김 시식지는 전라남도 기념물 제 113호. 우리나라에서 김 양식을 가장 먼저 시작한 곳으로 알려졌다.

김의 최초 시배지로 알려진 궁기마을 앞에 보이는 논들은 제철소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바다였다. ​처음으로 김을 양식한 김여익(金汝翼,1606-1660)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곳으로 이곳에는 김의 유래와 역사, 제조과정 등을 볼 수 있는 역사관과 유물전시관이 있다.

김여익은 인조 18년(1640)태인도에 들어와 우리나라 최초로 김을 양식하였다. 광양 김은 섬진강의 민물과 광양만의 바닷물이 합치는 섬진강 하구의 합수지점에서 생겨나 그 향과 맛이 독특하기로 유명했다. 해태를 ‘김’이라 부른 것은 하동장(河東場)에서는 태인도의 김가(金家)가 기른 것이라 전하기도 하고, 토산품으로 진상되었을 때 임금님이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만들었다하여 ‘김’이라고 불렀다는 설이 전한다.

태인도 일대에서는 김양식은 전통 방법인 섶 꽂이가 주로 사용되었는데, 섶 꽂이는 산죽섶, 갈대섶, 대나무섶 등을 갯바닥에 꽂아서 김을 양식하는 방법으로 최초로 사용한 양식 방법이었다. 섶 꽂이를 하기 위해 광양에서는 주로 산죽 갈대 또는 밤나무 가지 7~8개를 짚으로 묶어서 섶을 만들었다.

1960년대 섶 작업은 산청이나 함양 지리산 자락에 자생하는 산죽(시누대)을 마을 단위로 구입해서 트럭에 가득 싣고 와 그 산죽을 추석 무렵이면 짚으로 감아 차곡차곡 쌓아둔 모습들과 이 지역 사람들의 김 양식과 가공하던 그 시절의 모습들이 그대로 사진에 전시되어 있어서 한 눈에 들어온다.

광양제철소가 건설되면서 옛 모습이 자취도 없이 사라졌고 갯벌에 가득했던 꼬막은 벌교로 양식장을 옮겼고, 김 양식은 완도, 해남, 신안지역에서 대량양식을 하게 되었다.

전남 최대의 김 양식장

김은 인류가 이용한 해조류 중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로 세계적으로 약 80종 이상, 우리나라에는 10여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중국에도 널리 분포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염분에 대한 적응성이 강하여 해조류 중 가장 넓게 분포하고 있다.

김은 자연산으로 그 수요를 충당하지 못해 일찍부터 양식이 이루어졌다. 전남이 전체 생산량의 약 4/5를 차지하고 충남, 경남의 순으로 이어지는데, 완도군은 소안도, 해남은 만호바다가 있는 어란포, 신안의 임자도가 생산량이 가장 많다.

완도군에서 생산된 김은 1980년도 초반까지 대일 수출을 통해 외화획득과 주민소득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요즘 해조류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변화와 웰빙식품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김 소비량과 수출물량 증가 추세로 인해 정체된 수산업의 대안이 되고 있다.

현재, 완도군은 미국과 중국에 수출홍보를 하면서 세계시장을 확보해 가고 있으며, 해양수산부 공모사업으로 유치한 ‘다목적 해조류 종묘생산시설’을 통해 기후변화 적응과 완도 해역에 적합한 우량종자를 개발, 부가가치 높은 수산업으로 육성중이다.

해남군은 물김 생산량이 전국 최대다. 2015년 해남의 물김 생산은 8만9503톤이 생산돼 지난해 생산량 7만9108톤 보다 13% 많았다. 올해 위판액은 660억1100만원으로 전년 565억5700만원보다 16%, 94억5400만원이 증가했다. 올해는 8132㏊ 10만5717책에서 김이 생산돼 전국 24%를 차지, 전국 자치단체 중 가장 많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생산된 신안 명품 지주식 김은 압해읍 소재 신안수협 송공 물김 위판장에서 10월부터 생산 위판을 한다. 신안군 압해읍 송공 김양식어장에서 생산된 조생종 잇바디돌김은 일명 ‘곱창김’이라고 부르며, 맛과 향이 만생종인 모무늬돌김에 비해 뛰어난 맛을 자랑한다.

전국 처음으로 어민들이 만든 ‘주식회사 1호’ 장흥 무산김(주)은 2013년 설립 6년 만에 수익을 나눠 갖게 됐다. 이 회사는 2009년 2월 어민 110명이 200만원(400주)~5000만원(1만주)을 투자, 자본금 6억3500만원으로 출발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품질을 좋게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염산을 바다에 뿌리는 관행이 이어지면서 바다가 황폐해져 김 생산이 위기를 맞았다.

2009년 장흥지역 어민들의 다짐이 모아지고 마침내 관산읍 송천마을에 생산과 유통을 겸한 회사를 차렸다. 이 회사는 그동안 친환경수산물 인증, 미국 농무부(USDA)국제유기농인증 등 각종 기준 통과, 시설현대화 등에 안간힘을 쏟았다. 2013년부터 주주 배당에 쓸 수 있는 이익잉여금 2억8490만원을 기록하는 등 흑자를 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전남의 각 지자체에서는 김양식의 현대화와 수산업 기술 확보로 일본, 대만, 홍콩, 미국으로의 판로를 확대시켜 흑자 규모를 크게 늘리기 위한 어민들의 노력이 진행 중이다.

김 가공 산업의 변화

김은 단순히 말려서 밥에 싸서 먹던 지난 시절의 식재료에서 다양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김의 단백질은 소화흡수가 잘되고 비타민A가 특히 높아 김 한 장에는 달걀 2개분에 상당하는 비타민A가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비타민 B1, B2, C, D가 풍부하며 칼슘, 칼륨, 철, 인 등의 무기질이 풍부한 식품으로 겨울철 비타민 공급원으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물김이 생산되는 어촌에서는 생김을 된장에 풀어서 끓여먹는 방식의 김국과 각 가정에서는 여러 장의 김을 충분히 구어서 손으로 비벼 가루를 낸 다음 냉수에 소금과 간장으로 알맞게 간을 한 지국을 별미로 먹었다. 그리고 찹쌀로 만든 풀을 바르고 통깨를 뿌리고 실고추 고명을 얹어 햇볕에 말린 김부각과 부각튀김은 고급 간식으로 이용되었다. 광양지역의 김양식은 옛이야기가 되었지만 광양 김부각만큼은 아직도 으뜸으로 친다.

김 수출의 효자상품은 단연 조미김이다. 잘 말린 김이 가공공장에 납품되어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조미되어 삼부자김, 양반김 등등 유명상표로 세계 각지에 있는 사람들의 입맛을 자극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세계적 커피브랜드인 스타벅스에서 한국의 스낵김 판매를 시작했다. ‘한 입에 쏙 바다칩’이라는 제품으로 페이스북, 이베이 등 실리콘밸리의 유명 기업들이 임직원에게 제공하면서 소위 ‘실리콘밸리 스낵’으로 알려진 스낵김은 전남 수산업의 이미지를 급상승 시켰다.

그밖에도 김단자, 김장아찌 등을 만들어 겨울철 농가에서는 농산물 가공식품의 대체 품목으로 김가공품 생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가공시설 현대화, 고유 브랜드화, 우량종묘 공급 등 넘어야 할 문제들이 아직 많지만, 국내 김 수출이 5년 만에 3배로 성장해 지난해 단일 품목으로 3억달러 수출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는 우리나라 농수산 식품 가공 및 원양 제품을 제외한 국내 생산물 중 가장 많은 수출을 기록해 수출 효자 품목으로 자리매김했다.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한국의 명품김과 수산식품이 바로 전남지역의 겨울바다에서 생산되고 있다.

대동문화 98호 [2017 1,2월호]

정지승 프리랜서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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