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백수해안도로 ⓒ영광군청 홈페이지

영광군 백수읍 길용리에서 백암리 석구미 마을까지 16.8km에 달하는 해안도로, 바로 전남의 명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 백수 해안도로이다. 칠산바다의 아름다운 정경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특히 일몰 때 서해안 낙조는 동해의 일산 일출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절경을 선사한다. 해변은 갯벌이 없어 깔끔하고, 물빛마저 푸르고, 섬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에 역사의 아픈 상처가 숨 쉬고 있다. 바로 전남 기념물 제23호로 지정된 정유재란 열부 순절지이다. 정유재란 때 함평군 월야면 월악리에 거주하던 동래정씨, 진주정씨 문중의 9명의 부인들이 왜란을 피해 지금의 영광군 백수읍 대신리 묵방포까지 피신하다가 왜적들에게 잡혀 배로 대마도를 향해 가던 중 칠산 앞바다에 몸을 던져 죽음을 선택하였다.

1681년(숙종7년), 이들의 정절을 기리기 위하여 나라에서 함평군 월야면 월악리에 정렬각과 열녀 순절리를 세웠는데, 이 때 후손들의 의견차이로 8명의 부인의 것만 세웠다. 1942년 영광군 백수읍 대신리에 8열부 순절비를 세웠다.

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정유재란하면 명량해전이 생각나고, 승리했고 외침을 막았다는 데 어찌하여 내륙의 아녀자들이 죽어야 했는가? 였다. 임진왜란에 대한 나의 인식에 많은 문제점이 있음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임진왜란 7년 전쟁은 대체로 세 단계로 나눠 볼 수 있다. 제 1단계는 1592년 4월의 개전으로부터 1593년 6월말 제2차 진주성 전투가 벌어진 기간까지 약 1년 2개월간이 제1차 전쟁기였다.

제 2단계는 1593년 7월 이후 1597년 일본군의 재침이 있기 전까지, 이 기간은 전쟁이 소강상태에 빠진 긴 휴전기였다. 제3단계는 재침이 시작된 이후 1597년 7월의 칠천량해전으로부터 1598년 11월말, 일본군이 모두 철수하기까지 약1년 4개월간이 제 2차 전쟁기였다.

1차 침공의 목표는 조선을 친 뒤에 여세를 몰아 명을 공격함으로써 대륙까지 장악하는 것이었다. 2차 침략의 목표는 조선의 곡창인 전라도를 먼저 장악한 다음, 조선의 남부 4도를 일본의 영토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1597년 2월 21일에 발한 작전명령서에 “전라도를 남김없이 쳐부순 다음 충청도와 그 밖의 지역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대로 공략하라”는 엄명에 따라 우군 6만여 명은 모리 데루모토 지휘하에 양산, 거창, 함양을 거쳐 전주로 향해 쳐들어가게 하고, 좌군 5만여 명은 우키다 히데이에 대장으로 하여 수군의 엄호를 받으면서 해상으로 진격한 뒤 남원성을 공취하게 하였다. 8월 16일 남원성이 함락되고 곧 바로 전주성까지 적의 수중에 들어갔다. 이후 9월 하순에 이르기까지 호남은 침략군의 지배하에 들지 않은 고을이 없었다.

점령군 50여개 부대가 호남 전역에 바둑판처럼 깔려 포진한 다음 닥치는 대로 주민들을 살육하였고 초토화시켰다. 명량해전 직후 약 일주일이 지난 뒤, 강항이 전라우수영 관내 무안현의 낙두마을의 광경을 묘사한 기록에 의하면, “무수한 적선들이 항구에 가득 차 있어 홍백기가 햇빛에 번쩍거리는데 우리나라 남녀들이 서로 뒤섞여 해변 양쪽에 쌓인 시체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울부짖는 곡성이 하늘에 사무치고 바닷물도 오열하는 듯했다”라고 하였으니, 그 참상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영광 정유재란 열부 순절지 ⓒ영광군청 홈페이지

조선인이라면 닥치는 대로 죽이고, 또 코를 절단하여 그 숫자의 많고 적음에 따라 전공평가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부녀자로부터 어린 아이들에게 이르기까지 희생되었다. 현재 일본의 교오토오시 동산구에 있는 비총(鼻塚)에는 정유재란시 희생된 약 10여만 명의 코와 귀가 묻힌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엄청난 국란 속에서 호남사람들이 어떻게 싸웠는지 상기해보자. 명량해전 직후에 벌어진 강진의 밤재싸움과 병치혈전, 고흥의 첨산전투와 보성의 안치혈전 등은 고립무원의 하늘 아래서 소수의 병력으로 처절하게 싸우다 모두가 순절한 의병항전이었다.

내가 살았던 영산강 고향 근처에도 두군데나 유적이 있다. 점령군의 부대가 50여개나 되었음을 볼 때 최소 50여 차례 전투가 있었음을 짐작한다. 적의 대군에 맞서 변변한 무기도 없이 소수의 인원으로 장렬히 싸우다 전사한 것이다. 당시의 대표적인 의병장들로서는 영암, 강진지역의 전몽성, 김덕란, 유장춘, 박문립, 염걸, 윤신형제, 보성의 최대성, 전방삭, 정회, 고흥의 송대립, 신군안, 김붕만이 있다.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이고 울부짖는 곡성이 하늘에 사무쳐도 호남인들은 불의한 세력에게 절대 무릎 꿇지 않았다. 죽음이 뻔 한 싸움 앞에서 끝까지 항쟁한 것이다.

전쟁포로로 끌려가던 여성들도 바다에 몸을 던져 조국의 품안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정유재란 열부 순절지 앞에서 고개 숙여 묵념을 올렸다.

평소 왜놈, 또는 쪽바리라 부르며 문화적으로 열등한 일본을 업신여기던 우리가 그들에게 침략당하고 그들의 통치를 받는 굴욕을 당하였다. 그들은 나라를 개방하고 앞선 문물을 도입하고 개혁해 나갈 때 우리는 문을 닫아걸고 안주한 결과인 것이다.

역사의 아픈 교훈을 잊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귀백 시민기자  gasun61.@ne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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