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을현 기자

환갑, 육십갑자의 갑으로 돌아온다는 뜻으로 만 60번째 생일을 말한다. 회갑(回甲), 화갑(華甲), 주갑(周甲) 등으로 불리는 환갑은 예순을 넘기기 힘들 던 시절 부모님의 장수를 빌며 잔치를 벌이는 것이 통례였다. 잔칫상에는 국수가 올랐는데 국수가락처럼 오래사시라는 뜻을 담았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환갑문화가 사라졌다. 딱히 언제부터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환갑잔치를 벌이면 눈총을 받게 됐다. 꿈만 같던 100세 시대를 살면서 60은 청년일 수밖에 없는 처지, 환갑잔치를 벌여놓고 청년의 모습으로 손님을 받기도 쑥스럽거니와 바쁜 와중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퉁을 놓기도 한다. 또한 핵가족이 되다보니 잔치를 위해 십시일반해야 할 자녀들이 없는 것도 이유다. 게다가 베푸는 잔치문화에서 잔치를 열면 의례적으로 따라오는 축의금도 한몫을 했다.

축의금(祝儀金). 우리 미풍양속에서 축의금은 품앗이의 개념이 강하다. 돌이네 결혼이네 하면서 떡을 돌리고 서로 상부상조하는 것이 오랜 전통이었지 않은가. 따라서 아무리 그냥 와서 먹고 가라 해도 쉽사리 그렇게 되질 않는다. 빈손으로 갈 바에야 적당한 구실을 대고 다음 기회를 찾는다. 또 축의금의 액수에 따라 마음이 나뉘기도 한다.

간혹 부자들의 결혼식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기도 한다. 초호화잔치에 억대(億臺)의 돈이 쓰이기도 한다. 정치인들은 축의금의 루머에 시달리기도 한다. 치맛바람에 눈도장 인사, 줄서기도 생겼다. 한편에서는 간소화하자는 이야기가 계속 회자되지만 축의금의 유령은 쉽사리 없어지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김영란법 같은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등을 제한하는 법이 생겼을까.

순수했던 잔치문화가 점점 위축되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잣대가 되면서 환갑은 점점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치부되는 듯했다. 환갑 대신에 칠순(七旬)잔치가 대세가 됐다.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종심(從心)의 나이, 칠순이 되면 사회적으로 어른대접을 받는다. 잔치를 열어 한번쯤 맘껏 베풀고 싶어진다. 가족이야 두말할 것이 없지만 희로애락을 함께한 이웃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이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다시 환갑연에 대한 소식이 들리기 시작한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란 말을 체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집집마다 자동차도 있고 있을 만한 가전제품은 대부분 있지 않은가. 앞만 보고 달리던 어르신들도 점점 자기관리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소가족에서 핵가족을 지나 1인 세대도 흔해진 마당에 자신이 망가지면 세상이 끝난다는 것이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선배가 불쑥 환갑잔치를 열어야겠다고 선언했다. 작게나마 친분이 있는 주변사람들을 불러 식사라도 대접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요즘 세상에 웬 환갑타령인가’를 생각하다가 이내 마음을 바꿨다. 진정한 마음으로 이웃사람들을 불러 감사를 전하고, 다시 한 번 최선을 다해 살아보겠다는 선배의 말에는 진심이 배어있었다. 이래서 환갑이구나.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 또 한 번의 생(生)을 시작하겠다는 다짐. 그 속에는 아예 축의금을 사양하며, 오히려 작은 선물을 준비하고 식당을 예약하고 새치를 염색하는 선배의 얼굴은 봄마중 가는 홍조 띤 소년의 얼굴이었다.

김을현 기자  somchane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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