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로 녹아 난 남도의 한과 흥

대한민국의 원조 노래방, 생활의 애환을 즐기듯 노래하는 일상에서 흐르는 소리가 진도아리랑이다. 걸군농악, 명다리 굿, 들노래, 강강술래, 베틀노래 등 지역전통의 민속이 살아숨쉬는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를 찾았다.

북의 대가 김대식 선생의 북춤

진도는 우리 남도가 자랑하는 예향의 뿌리가 되는 지역이다

우리나라에 분포된 섬 중에서 제주도와 거제도에 이어 3번째로 큰 섬이 진도이다. 그림과 노래와 민속이 살아 숨 쉬는 보배로운 섬이다. 서해와 남해가 만나는 한반도의 서남쪽에 위치한 진도는 약 23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다. 섬인데도 불구하고 주로 농경생활이 주류를 이룬다.

진도 소포만 어구에 자리한 소포리는 예로부터 ‘소개’, ‘소개나루’등으로 불리는 마을이다. 진도대교가 건설되기 이전만 해도 목포에서 진도로 통하는 뱃길의 유일한 나루터였다. 이 마을 사람들은 바다가 가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업보다는 주로 농사를 지으며 산다.

그래서인지 진도홍주의 원료인 검정쌀이 처음으로 생산되었다. 농사일에 지친 농민들은 늘 소리를 즐기며 스스로를 위로해왔다. 이처럼 수많은 민속놀이와 전통 민요가 지금까지 옛 모습그대로 전승보존 되는 지역이 지산면 소포리다.

나에서 선물하는 ‘쉼’ 한 자락 소포리

지난해 12월 27일 (사)대동문화재단의 회원 50여명이 소포리를 찾았을 때는 마을 사람들이 마침 마을회관에 모여 있었다.

대동문화재단 회원들의 소리체험 후 기념촬영

이 마을을 찾는 사람들에게 아름답고 멋스러운 전통의 가락은 물론 꽹과리, 북, 장구, 징소리 등 우리 전통의 사물을 모아 그들이 담고 사는 혼을 일깨워주고 우리가 지닌 세계 유일의 민속놀이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근사한 공연장에서 특별공연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흔히 일반적인 행사장의 식전행사, 또는 행사중간 짬 시간에 잠깐 하는 공연이 우리가락의 설자리로 전락한 것이 요즘이다.

전통의상에 멋스런 표정과 진지한 행위에서 비롯되는 우리 전통가락의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화려한 의상에 현란한 춤사위를 선보이며 지면도 화면도 장악해버린 아이돌 그룹에 밀려 쓸쓸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리소리, 우리가락 그리고 소포리 주민들, 마을회관으로 들어가자 우리를 환영한다.

그들이 우리 앞에 서서 당당히 선보이는 베틀노래는 서툰 듯 아닌 듯 어깨춤이 절로나는 감동의 도가니였다. 그들의 삶이 바로 이런 거였다.

“짤그락 짤그락 짜는 베를 언제 짜고 친정에 가나~”

“잠이 오네. 잠이 와 안개 같은 잠이 오네.~”

어떤 아낙은 오일 장날 장에 가서 행인에게 들려오는 이야기 중 친정집 오빠가 많이 아팠다는 소리를 듣고 걱정에 쌓인다. 망설임 끝에 시어머니께 말씀드려 승낙은 받았으나 시어머니는 조건을 붙인다. “친정에 가려거든 저기 저 베를 다 짜 놓고 가거라.”

짜도짜도 끝이 없는 베, 아낙의 두 눈이 스르르 감기며 안개처럼 아스라이 베틀이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한다. 그러나 친정에 갈 생각에 밤새도록 밀려오는 잠을 이겨내며 베를 짜면서 부른 노래다.

그들의 삶의 현실은 늘 망망대해이며 애환이 담겨있다. 베틀노래를 하는 박승경(75세. 소포리)어머니의 표정에서 그 간절함이 느껴진다.

“새벽서리 찬바람에 울고 가는 기러긴가”

“울고 가는 저 기럭아 잠든 나를 깨고 가냐”“검은 종이 흰 종이는 우리 님을 보건만은”

“어이하여 이내 나는 우리 님을 못 보는가”

“꿈아 꿈아 내꿈아”

“오시는 님을 보내는, 잠든 나를 깨워나 주지”

가락 마디마디에 숨겨져 있는 한스러운 여운의 가사이다. 꿈속에서 님을 보내고 만 아낙은 푸념 섞인 말투로 “잠 좀 깨워 못 보내게 해주지” 하는 아쉬우면서 아름다운 가사이다. 이렇듯 그들이 부르는 가락은 늘 삶의 애환과 아름다움이 배어있다.

소포리 주민들의 가락은 전문 국악인들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제도권 교육기관에서 학습을 통해 소리를 익힌 국악인들이 무대라는 공간을 통해 그 기량을 뽐내는 것과는 달리 소포리 주민들은 삶 속에서 대대로 익힌 그 끼를 다시 생활 속으로 토해내는 것이다.

할아버지로부터 배운 흥타령이 아버지로 전해지고 다시 아들로 이어지니 그들의 소리 속에는 삶의 희로애락이 절절이 배어 있는 것이다.

소포리 주민들의 가락은 전문 국악인들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제도권 교육 기관에서 학습을 통하여 소리를 익힌 국악인들이 무대라는 공간을 통해 그 기량 을 뽐내는 것과는 달리 소포리 주민들은 삶 속에서 대대로 익힌 그 끼를 다시 생활 속으로 토해내는 것이다.

모이면 북장단에 흥타령, 소포리의 밤

마을 아낙들의 강강술래는 어깨춤을 추게만든다

소리가 삶이요 생활이다 보니 마을에 소리꾼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모이면 북장단에 흥타령이요, 약주한잔 걸치면 육자배기 한탄이다. 일상을 담는 소리이니만큼 밭일 이야기, 하늘과 바다이야기, 사람 사는 이야기 등을 담고 있다.

베틀노래에 이어 소포리 이장 김병철씨의 입담이 오가는 동안 임이박(임춘심, 이옥지, 박정자) 트리오의 신민요 ‘해방가’가 이어진다. 그들의 소리는 모든 장르를 오가며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민요풍의 해방가가 베틀노래와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세분의 가락에 어깨춤이 절로 난다.

우리가락은 연주자와 반주자, 그리고 소리꾼과 관객이 대등한 입장이 되어야 좋은 가락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늘 하나가 되는 것이다.

고수의 장단에 맞추어 가락을 한다. 북이 없다면 장구가 북을 대신한다. 우리 가락이 훌륭한 것은 비단 가락의 아름다운 선율 뿐만은 아니다. 가락을 즐기는 이들의 마음이 천진하고 선하며 멋있고 웅장하기까지 하다. 북을 치다가 장단이 틀리거나 박자가 맞지 않아도 “틀렸어”가 아닌 “삐였어”라고 한다는 거다. 이것이 소리꾼에 대한 배려이다.

‘북’의 대가 ‘김내식’선생의 제자 임원식 군의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같은 ‘북’연주가 현란하게 우리 곁을 찾아왔다. 굵은 장작을 툭툭 걸쳐 놓은 것처럼 선이 굵은 몸놀림이 우리의 눈동자를 휘둥그레지게 만든다.

‘북’소리가 힘이 넘친다. 작은 북안에 사계절이 담긴 음양의 조화가 이채롭다. 그리고 이어진 ‘홍복동’ 어르신의 ‘상모’돌리기, 84세의 연세에도 상모 끝에서 회오리치는 깃털이 젊은 시절 그들의 이야기로 모아져 우리에게 전해진다.

덩실거리는 박수소리가 우렁차다. 그리고 그들 틈으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오는 ‘김내식’선생, 머리에 하얀 띠를 두르고 허리엔 노란 띠를 둘렀다.

어깨띠로 장식한 커다란 북을 메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75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찬란한 북장단이 우리를 감동케 만든다. 이것이 이들의 놀이고 삶이다. 그들의 북은 그렇게 또 하루를 여물게 만든다.

상모돌리기와 북춤으로 분위기를 띄운 후 마을 아낙들의 소리판이 이어진다. 강강술래, 비단 진도뿐 아니고 우리나라 곳곳에 강강술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강강술래가 이곳 진도에서 퍼져나갔음을 그들은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남도소리는 흐느끼는 느낌의 슬픈 계면조가 특징이다.

이제 강강술래도 슬프게 들린다. 그리고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우리는 손에 손잡고 뛰면서, 돌면서 강강술래를 통해 한이 흥으로 승화되는 진도의 정서를 직접 느껴본다. 진도만의 이 독특한 문화도 소포리에서는 민속의 하나로 포용을 하고 있다.

[대동문화 92호. 2016. 1,2월호]

이동호 기자  ddmhok@hanmail.net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