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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수 년 되니 글자도 더 보인다광주 서창 '農船夫' 시주비, 1769년
김희태 문화재전문위원 | 승인 2017.03.27 13:16
이 십수년만에 다시찾은 광주 서창의 농선부 시주비

광주 서창동에 오래된 듯 아닌 듯 우뚝 서있는 비석 3기엔 어떤 비밀이 있을까. 오다가다 만나는 서창동 434-2번지의 비석 3기가 의문을 준다.

3월 27일, 호남권문화재지킴이 기본교육의 강의를 마치고 나주 영산강 옛 갯골 근처 웅어회가 생각나 길을 재촉한다. 백동 산자락 소재 삼봉 유배지를 돌아 나와 나주다시의 영산강 둑길을 가보고 싶다는 지인의 말에 나주를 향해 가다가 언뜻 생각나 들린 서창 비석군이다. 처음 이 비석을 접할 때가 1994년이었는데 몇 차례 들러 보고 또 보고 이십 수 년 만에 다시 보니 오늘따라 글자가 잘 보인다.

동학 農船夫 施主碑다. 서창동 치안센터 앞 건너편 길가에 시혜불망비 2기와 시주비 1기 등 총 3기의 비석이 그것인데 농선부 시주비는 조선시대 후기(1769년), 시혜불망비는 일제강점기에 세운 것이다.2기의 시혜불망비는 박호연(朴浩連)의 시혜를 기리기 위해 서창면민 일동이 1926년과 1929년에 세운 것이다. 앞면에 비제와 4언 4구의 명문(銘文, 찬문), 뒷면에 세운 해의 간지와 건립 주체(서창면민)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또 1기는 조선시대에 세운 농선부(農船夫) 시주비이다. 서창나루에서 운행하는 배와 관련해 주민이 이용하는데 도움을 준 선부(船夫) 시주완 관련 된 것이라 한다. 1970년 3월에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오각 형태의 비면 가운데 네 면에 음각 내려쓰기로 새겼다.

앞면의 비제 농선부시주비(農船夫施主碑)와 함께 좌우로 시주자의 직역과 성명이다. 通政 曹昌佐와 閑良 姜善周가 보인다. 몇 글자는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나 송학산 산명도 보인다. 송학산(松鶴山)은 서창 동쪽에 있는 산이다.

뒷면 두 곳 가운데 한쪽에 화주(化主)의 거주지(金夫村里)와 성명(金順奉)이 있다. 금부촌리는 조선시대 후기 광주 당부면(當夫面) 관할이었다. 1914년에 금부(金夫)와 만호가 합해져 금호리가 되면서 서창면에 속하게 된다.

다른 한 면은 세운 연대의 연호 간지가 있다. 건륭(乾隆) 34년 기축인데 1769년(영조 45)이다.

앞면과 연대 표기면 사이의 옆면 한 곳은 시주 인명(徐日仲)과 금액(3兩)이다.

둿 면은 건물 벽과의 사이가 가까워(15cm 내외) 판독과 촬영에 어려움이 있다. 다행히 스마트폰을 이용해 몇 차례 나누어 찍으면서 판독하였다.

농선부 시주비의 글자가 선명하다. 비의 앞부분

용어, 지명, 인명으로 보아 서창나루를 이용하는 몬선의 선부완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관창이 있었던 곳인지라 '세곡선'의 출입과 세곡의 저장 운송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절 이름은 뚜렷이 보이지는 않지만 송학산 인근에 절이 있었을듯하다. 시멘트로 마련한 좌대에는 음각으로 옮겨 온 연대(1970년)를 기록했다.여전히 원위치, 용어, 인명, 지명, 사회 사정, 성격, 주민의 인식, 전래 경위, 관련 기록이나 구전 수집 등 할 일은 많다.1994년 30대 청년시절 첫 만남이래 몇 번 들렀는데 이번에 가장 많은 글자를 읽었다. 눈은 어두워져 가는데 오히려 몇 글자 더 보이는 것은 무언가 계시가 있는듯하다. 그건 아마 <영산강 삼백 오 십리>-인심따라 풍류따라로 빨리 귀결하라는 것 같다.

영산강 1집 격인 지리편 <영산강 삼백오십리>-물길따라 뱃길따라-(김경수, 1995)를 내기 위해 김경수 동지와 쏘다니면서, 1994년 서창 농선시주비를 만난 것. 1집을 내면서 2집 격인 역사 문화편을 <영산강 삼백오십리>-인심따라 풍류따라-로 책이름을 명명하고 1집의 '날개'에 [김희태, 근간]이라 표기했는데 어느덧 이십 수년이 훌쩍지났다. 30대의 그 청년들은 이제 환갑줄이지만 여전히 쏘다닌다. 올해는 마무리 해야겠지. 그 계시가 아닐까.

시혜불망비

향좌

朴公浩連施惠不忘碑

節用節食 절약해 쓰고 음식도 아껴서

剩知求賓 잉여물로 가난을 구제할 줄 알았으니

恩深於海 그 은혜 바다보다 깊고

德高於山 큰 덕은 산보다 높네

乙丑(1925) 二月 日 西倉面 共立

크기 비몸 87×34×22cm, 비머리 33×51

 

향우

朴浩連施惠不忘碑

飢恩若已 기아 주민에 베푼 은혜 전과 같고

傳施恤賓 연이어 베풀어 가난을 구휼하니

萬口咸誦 주민마다 입모아 칭송하고

道德日新 도덕은 또 날로 새로워 졌네

己巳(1929) 十一月 日 西倉面 一同

크기비몸 86×36×12, 비머리 27.5×48

 

농선천시주비

가운데

農船夫施主碑

오른쪽

通政曹昌佐

張□□八年 松鶴山□□

왼쪽

閑良姜善周 □宇□□□

徐日仲三兩

化主 金夫村里 金順奉乾隆三十四年(1769년, 영조 45) 己丑

좌대서기 1970.3.25 옮김크기 비몸 높이 74cm 너비 42, 높이 46, 전체 높이 91(상 8, 하 9)좌대 74×54

비의 뒷부분의 글씨도 선명하다.

김희태 문화재전문위원  ddmh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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