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날 며칠 동안 필동 말동 애를 태우며 창가에 서 있는 목련이 하루 밤사이 팝콘처럼 터졌다. 창문 앞이 갑자기 환해졌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목련꽃의 자태는 화려한 유백색 한복 차림으로 단아하게 앉아 있는 여인의 모습처럼 우아하고 화려하기 그지없다. 베란다 창문 사이로 분 내음이 은은하게 풍겨 온다.

야간에는 가로등 불빛과 어우러져 화려한 봄밤의 향연이 펼쳐진다. 같은 단지에 심어져 있는 목련이라도 햇볕을 덜 받는 쪽의 나무는 아직도 꽃망울을 터뜨리지 못하고 꽃눈을 잔뜩 부풀린 채 꼭 오므리고 있다.

대부분의 봄꽃들은 이른 봄에 꽃을 먼저 피워 낸다. 지난가을 잎을 다 떨구고 꽃망울을 잉태한 후,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이른 봄에 꽃을 피워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추운 겨울을 인고의 시간으로 삼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이를 ‘춘화 현상(春花現像)’이라고 한다. 꽃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봄꽃들이 잎사귀보다 앞서 꽃을 피우는 이유는 종족번식을 위한 생존경쟁 때문이다. 모든 식물들은 자손을 퍼트리기 위해 경쟁하는데 다른 꽃들이 피기 전에 벌과 나비들을 유혹하여 쉽게 수분(受粉)하고자 먼저 꽃을 피운다. 봄에 일찍 피는 꽃들은 향과 꿀이 많지 않다. 대신 색깔이 화려하다. 색깔로 곤충들을 유혹하려는 것이다.

반면, 뒤에 피어나는 꽃들은 강렬한 향기와 꿀을 가지고 벌, 나비들을 유인하여 수분을 한다. 아름다운 꽃들도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하는 것이다. 경쟁은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의 숙명이며 본능이다. 먼저 피어난 꽃들은 화려한 색깔을 갖는 대신 나중에 피어날 꽃들에게 향기와 꿀을 양보한다. 자연의 섭리가 경이롭다. 꽃들의 생존경쟁은 인간들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꽃들에게서 ‘배려와 상생’을 배운다.

목련(木蓮)은 봄을 대표하는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 봄 하얀 꽃이 마치 ‘나무에서 피는 연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눈보라와 찬바람을 견디며 간절히 봄을 기다리는 목련은 단아 하면서도 화려한 빛깔의 꽃을 피운다. 새하얗고 커다란 꽃잎은 결코 화려함을 내세우지 않기에 고결한 기품이 돋보인다.

목련은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다. 꼭 오므리고 있는 꽃망울의 모습이 붓을 닮았다고 해서 ‘목필(木筆)’이라 부르기도 한다. 백목련은 봄소식을 가장 먼저 전한다고 ‘영춘화(迎春花)’라고 하며, 보라색의 자목련은 봄이 끝나갈 무렵에 핀다 하여 ‘망춘화(亡春花)’라 한다.

목련은 남다른 특징이 하나 있다. 대부분의 꽃들이 태양을 바라보며 남쪽을 향해 피는 것과는 달리 목련 꽃봉오리는 북쪽을 향하고 있어 북향화(北向花)라고도 한다. 꽃봉오리의 아랫부분에 남쪽의 따뜻한 햇볕이 먼저 닿으면서 세포분열이 반대편보다 빠르고, 튼튼하게 자란 탓에 자연스럽게 꽃봉오리가 북쪽을 향하게 된다고 한다.

특별한 목련이 있다. 미국의 제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은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을 그리워하며 백악관 잔디밭에 한그루 목련을 심었다. 봄마다 새롭게 피어나는 ‘아름다움과 부활’을 의미하는 ‘잭슨 목련’이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2014년 4월 25일 방한했을 때,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의미로 백악관 뜰에 심어진 잭슨 목련 묘목을 안산 단원고에 전달했다. “이번에 희생당한 학생들과 비슷한 또래의 두 딸을 가진 아버지로서, 많은 젊은이들의 희생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며 세월호 유가족들과 대한민국을 위로했다.

삼 년 전 단원고 교정에 심어져 ‘부활’을 의미하는 잭슨 목련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꽃망울을 터뜨렸다. 때마침 차디찬 슬픔의 바다 맹골수도에 잠겨있던 세월호도 삼 년 만에 떠올라 목포항에 안착했다. 녹슬고, 할퀴고, 곳곳에 구멍이난 처참한 모습에 미귀가자 가족들은 물론, 온 국민들이 절규했다.

세월호가 목포를 향해 ‘마지막 항해’를 하고 있는 순간, 검찰청의 검은색 호송 차량 한 대는 서울 구치소로 향하고 있었다. 구치소로 압송되는 차량에는 헝클어진 올림머리에 초췌한 모습의 한 여인이 호송원들과 함께 타고 있었다. 우리의 국격이 한없이 추락하는 부끄러움과 안타까움이 교차되는 순간이었다.

어느덧, 죽은 땅에서도 라일락을 피우게 한다는 잔인한 달 사월이다. ‘사월의 잔인함’은 황무지에서도 피어나는 위대한 생명의 역설 이리라. 청록파 시인 박목월은 사월을 빛나는 꿈의 계절이자, 눈물 어린 무지개의 계절이라고 노래했다.

또한,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드는 달이라 하지 않았던가. 아직도 캄캄한 세월호에 갇혀있는 우리 아들 딸, 그리고 선생님들이 하루빨리 ‘부활의 꽃, 목련’이 피어있는 집으로 돌아와 사월의 노래를 목놓아 부르길 간절히 빌고, 또 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임영열 시민기자  youngim147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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