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성씨의 시조 전설이나 삼국시대 왕위에 오른 분들의 신화는 누구의 자식이 아니라 여성이 낳았다는 것을 상징하는 난생 설화로 포장되어 있다.

단군왕검마저 웅녀인 곰 여인이 낳은 아이였고 가야의 김수로왕이나 경주 김씨 김알지, 석탈해, 박혁거세, 고주몽 등이 모두 알에서 깨어 나온 사람들로 속되게 말할 때 여성의 ‘공알’에서 태어났음을 상징하고 있다.

성씨로 알아본 여성 우위의 역사

더욱 주목을 끄는 기록은 경주 김 씨의 시조는 중국인 성한(星韓)의 후손이라는 것이고, 박혁거세에 나온 표주박은 본디 글자가 활 쏘는 사람들을 상징하는 활박자라는 것이다. <증보 문헌비고>와 <삼국사기>에 보면 박혁거세는 중국 여자의 소생이란 기록도 있다.

신라 초기 왕들은 모두 그 부인의 이름이 ‘알’이다. 이 알은 중국 휴도왕의 부인 알(閼)씨와 연관 지어 살필 수도 있는 것으로 우미라의 ‘아가씨’나 ‘아씨’는 이 알씨가 조상 말이라는 주장이 있고, 알→알히→안히→아내→내자도 같은 계통의 변형이라 할 수 있다.

신라 2대왕인 남해왕 부인은 아루(阿婁)이고, 3대 유리왕의 부인은 허루(許婁)이며 4대 석탈해왕의 부인은 아루의 딸이라 했다. 이는 뒷날 한자 표기 때 빌려 쓴 글자일 뿐 모두 ‘알’을 상징한다.

신라 때 공주의 남편은 모두 ‘갈문왕’이라 했다. 신라는 부계 계승에 의해 왕위가 지속된 것이 아니라 여성 계승의 흔적이 있다. 김씨 중 최초의 왕이 된 12대왕 미추왕은 석씨 조분왕의 사위가 되어 왕위에 올랐고 4대왕 석탈해도 남해왕의 사위가 되어 왕위에 올랐다.

신라 때 한반도 역사상 여성으로 왕위에 오른 이는 선덕여왕, 진덕여왕, 진성여왕 등이 있었던 점이나 신라 때 박제상은 어머니 성인 김씨로도 불린 여러 사례가 있다. 이 같은 역사 사실 외에도 한반도에서의 여성 우위 사례는 고려사나 조선 시대 대왕대비 제도, 외척 세도 등에서 실증된다.

딸도 친정 재산 상속받았다

그러므로 여자 호주제도나 모성 계승 제도는 새로운 풍습이 아니라 옛 습속의 부활이다. 뿐만 아니라 딸의 친정 재산 상속제는 3백여 년 전 제도의 부활이다.

아이들의 외가 성장도 옛 풍습의 부활이라 할 수 있다. 모계 시대에 아이가 어머니 집에서 자라는 것은 당연했다고 할 수 있다. 지금처럼 여자가 시집오는 것이 아니라 남자가 처갓집에 장가가서 머슴처럼 일하면서 자식을 낳으면 외갓집에서 분가하거나 남자 생가로 돌아왔다.

이 때문에 사위가 장인 집에 사는 집을 ‘서옥(壻屋)’이라 불렀다. 조선시대에 결혼은 처갓집에 가서 식을 올리고 신부는 친정에서 아이를 낳은 뒤 1년 가량 지난 뒤 시가집을 찾아올 때 이를 ‘신행(新行)’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외갓집에서 자라고 공부했으며 외가 재산을 상속 받고 외갓집 조상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오늘날 아이들이 장인 장모에게서 자라는 풍습은 옛 제도의 부활이다. 온전한 옛 제도가 되려면 처부모를 봉양하고 처가 제사까지 이어받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완력이 주된 생산 수단이었던 산업 사회가 가고 기계와 지식이 경제 활동의 주된 수단이 된 사회에서 여성의 기능은 남성과 차별이 없어졌으므로 사회적·정치적 활동에서 여성이 차별 받을 이유는 없다.

문제는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생태적 주요 임무인 종족 번식과 양육을 소홀히 하여 인류의 종말 현상이 빚어진다면 하늘의 섭리를 저버려 천벌을 받았다는 비판을 받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뿐이다. 그러나 미래는 낙관해도 된다. 지구와 인간은 진화해가기 때문에….

대동문화 71호 [2012년 7.8월호]

김정호 향토사가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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