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風流)란​, '풍치가 있고 멋스럽게 노는 일' 또는 '음악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로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풍류방'은 '풍류'와 '방'이 만나서 만들어진 단어로 세상의 속된 일을 떠나서 음악과 함께 운치 있고 멋있게 인생을 즐기려는 음악 애호가들이 모여 연주활동을 하는 곳이라 할 수 있겠다. 야외활동의 풍류와 달리 실내공간에서는 관악기보다 상대적으로 음량이 작은 현악기를 주로 연주하게 되므로 풍류방의 음악을 '줄풍류'라고 일컬어 왔다.

향제줄풍류의 산실, 정읍 진산동 영모재

조선 후기에 이르러 유교적 신분 질서가 점차 붕괴되고 사회적 관습의 가치체계도 신분의 격차를 떠나 양반, 중인, 악사 등 각기 다른 계층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함께 어우러지는 풍류방 활동이 생겨났다. 이러한 풍류방의 운영은 몇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가능한 일이었는데, 문화적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경제적 안정은 물론이거니와 학문과 사회문화적 교양을 지녀야 했으며 실학의 영향으로 음악활동을 펼칠 수 있는 악(樂)에 대한 실질적인 실기 능력이 요구되었다.

당시의 풍류를 즐기던 공간으로 정읍의 진산동에 있는 '영모재(永慕齋)'는  한국풍류의 본고장인 호남의 풍류를 이해할 수 있는 곳으로 정읍예기조합 소속 기녀(技女)들의 기예능을 심사하는 곳이기도 했다. 오늘날 향제줄풍류가 이 곳 영모재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후 '아양정' 풍류방과 '이심정'의 풍류방으로 이어졌다. 영모재의 풍류방은 기예를 배우고 행하는 장소로 사용되었으나 한국전쟁 이후 방치되었던 것을 최근 이용찬씨가 발굴하여 문화재로 등록하였다.

영모재는 구한말 강원도 평창군수를 지냈던 정읍의 부호 김평창(본명 김상태)이 1885년 죽산 안씨의 사당을 사들여 1915년 솟을 대문과 다채로운 민화 벽화들을 그려넣는 등 현재의 풍류방 형태로 개축하였다.  현재 광산김씨의 재실인 '영모재'로 등록은 되어 있지만  매입후 재실의 기능은 하지 않고 김평창에 의해 풍류방의 기능으로 사용되었다. 이곳에 그려진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유행하던  민화벽화들은 당시 풍류방의 전형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솟을대문 기둥 위 공포의 '떡방아를 찧고 있는 옥토끼' 그림

솟을대문 앞쪽 기둥 위, 공포 안에 떡방아를 찧고 있는 옥토끼 그림은 풍류방 영모재가 영원히 지켜지기를 염원하고 있으며, 벽화엔 두 마리의 학을 타고 피리를 불며 하늘을 나는 두 신선, 두 마리의 현무와 해태, 그리고 봉황과 호랑이 등 모두 짝을 이룬 음양의 공간을 나타내고 있다. 본채의 추녀를 받치고 있는 4개의 활주에는 연꽃과 팔괘 문양을 새겼고, 솟을 대문의 삼태극과 꽃담 등은 이 곳이 우주의 본체를 머금은 매우 존귀한 공간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영모재에는 김평창이 꿈꾸던 이상적 세계관이 건축양식에 고스란히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주련에도 그가 추구하던  음악적 소망들이 나타나 있는데, "흰 구름 용문에든 이 암자의 그림자가 청청하게 맑다(백운용문 암영청청)" "노래와 춤, 거문고 생황을 즐기며 사는 것이 노년의 낙이다(가고현생 모년행락)" 등의 내용이다. 김평창은 이곳에서 당대의 명인들과 가객, 기생들을 불러들여 풍류를 즐겼으며, 동학농민혁명 최고의 지도자 전봉준과 본채의 상량문을 썼던 문장가 옹택규, 손화중, 강증산 등과 교유하며 새로운 세상을 도모하는 장소로도 이용하였다.

솟을대문 안쪽의 주련

이처럼 본래의 제각을 누정형태로 꾸며 풍류방으로 사용했음에도 영모재라는 제각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했던 것은 당시의 어려웠던 상황들 속에서도 비교적 화려한 삶을 살았던 자신의 모습을 외부에 드러나지 않도록 하고, 여러가지 야기될 수 있는 분란을 막는 숨은 의지가 담겨있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따라서 풍류방 영모재를 다녀갔던 사람들 역시 대부분 질곡의 역사속에서 시대사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들로 전해진다.

영모재의 재실은 정면 4칸 측면 2칸에 전퇴와 우측퇴가 설치되었고, 김평창과 기인들의 거처와 취침공간이었던 4개의 방은 대청으로 통하는 들문을 들어 올리면 내부의 공간이 하나로 연결되는 공연장이 된다. 4칸의 대청마루는 모두 들어열개문으로 설치되어 많은 기인들이 창과 악기 등의 기예를 배우고 연습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하며 가야금과 장구 등의 악기도 보관되어 있어 그때의 모습을 회상할 수 있다. 

'학을 타고 하늘을 날며 피리를 부는 신선'이 그려진 벽화

풍류방 영모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문화사적 가치를 느낄 수 있겠지만 솟을대문의 민화벽화와 건물 전체의 주련, 본채의 각종 편액과 벽면의 시어들 속에 19세기 풍류가객들이 꿈꾸던 다양한 측면의 내용들이 담겨있어 또 다른 의미를 찾아볼 수도 있다. 최근 영모재의 마당과 대청에서는 매년 판소리와 기악의 공연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리고 있는데 널리 알려져 문화공간으로 꾸준히 활용되기를 기대해 본다.

＃ 정읍 진산동 영모재는 2005년 11월 11일 근대문화유산 제213호(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소재지는 전라북도 정읍시 진산1길 25(진산동)이다.

이근섭 시민기자  rmstjq2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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