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이름으로, 광주아버지합창단

자신이 불행하면서 타인을 행복하게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행복은 바이러스와 같은 것이다. 자신이 행복해야 주변 사람들에게 그 기운을 나눌 수 있다. 따라서 행복의 당사자인 내가 ‘지금 이 순간의 체험’에 대해 적극적인 참여와 몰입을 통해서 유쾌함과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이 즐거움 삶이다. 몰입하는 삶은 즐거운 삶을 극대화 시키는 방법이다.

매일의 삶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활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몰입함으로써 자신의 강점과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자기실현을 이루어가는 삶을 의미한다. 또한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닌 자신보다 더 커다란 어떤 것을 위하여 공헌하고 있다는 인식, 타인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기여할 때 더 큰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데 이러한 삶을 의미 있는 삶이라고 할 것이다.

내가 행복하니 내 주변이 행복하다

광주아버지합창단(단장 유영수, 지휘자 윤원중)은 광주의 아버지 80여 명으로 구성된 합창단이다.

1998년 창단, 매주 월요일 연습시간이면 형님, 아우님 80여명 한자리

“광주아버지합창단은 IMF로 힘들어 하는 우리의 아버지들에게 용기를 주자, 사회를 밝고 아름답게 변화시켜보자라고 해서 1998년 창단했습니다. 성악을 전공했던 김성일 선생님이 발의했는데 그분께서 참으로 열정적이고 헌신적으로 많은 노력을 하셨죠. 안타깝게도 지병으로 작고하셨지만 그 분이 싹을 띄워놓은 합창단은 지금까지 힘차게 20여년 역사를 가지고 자라고 있습니다.”

광주아버지합창단원으로 15년째 활동해온 이춘범 전 단장의 말이다.

광주아버지합창단은 30대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참여하고 직업 또한 다양하지만 모두 형님, 동생으로 부른다. 그렇게 부르다보니 80여 명이 모두 가족이다. 이런 연대감은 이춘범씨 딸 결혼식에 30여 명의 단원이 '선라잇, 선셋(Sunrise, Sunset)' 합창으로 이어졌으며 합창 이벤트는 하객들에게 훈훈한 감동을 선사했다.

“내가 합창단을 하면서 좋았던 것은 감성적 열정을 가지고 사는 분들을 만났다는 것, 그리고 그분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사회에서는 각기 다 색을 가지고 사시는 분이지만 여기에 오면 다 내려놓습니다. 우리 합창단의 하모니의 힘은 바로 이 내려놓음과 끈끈한 인간관계에 있습니다.”

화가이자 합창단원인 황순칠씨의 말이다. 그는 7년째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단원 자격은 아버지여야 하나 출산을 앞둔 예비아빠도 가능하다. 그러나 예비아빠는 정단원이 아니라 예비단원이다. 단원은 수시로 모집하나 오디션에 합격해야 한다.

이들은 매주 한 차례 월요일 오후 8시에 모여 10시까지 연습을 한다. 그러나 공연을 앞두고는 연습의 강도를 높인다. 공연 한 달 전에는 주 2회, 공연 일주일 전에는 매일 연습한다. 1년이면 정기연주회를 비롯하여 10여 차례 무대에 서게 되니 매주 평균 두 차례 이상 연습하는 편이다. 각자의 생업에 종사하면서 정기적으로 저녁 시간을 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참석률이 높다. 특히 윤원중 지휘자가 온 후 합창단은 르네상스를 맞았다고 한다.

7년째 광주아버지합창단 지휘를 맡고 있는 윤원중 씨

“아버지합창단은 유대관계가 좋습니다. 열정도 넘치죠. 좋아서 하니까 일주일에 두 번이든 세 번이든 연습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개성을 다 내려놓으니까 개성이 나옵니다. 개인적으로 미비하더라도 하모니가 나올 수 있는 것이죠. 정기연주회를 1년에 두 번 하는데 이때는 양쪽 집안사람들이 다 옵니다. 가족의 개념이 파괴되는 이 시대에 연주회를 통해서 화합의 장이 열리는 거죠. 이것이 광주아버지합창단의 또다른 매력입니다.”

7년째 광주아버지합창단 지휘를 맡고 있는 윤원중씨의 말이다.

“합창단에 들어오기 전에는 노래방을 자주 갔죠. 노래를 좋아하니까. 그런데 여기에 들어오니까 자연히 건전한 노래를 하게 되고 클래식 음악도 좋아하게 되고 그것에 대해 공부도 하다 보니 저도 모르는 사이에 큰 변화가 왔어요.”

아버지합창단에서는 최연장자인 김우종씨의 말이다. 그는 “합창단을 하면서 감성적 열정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마음이 포근하고 아름다워지는 것 같다”면서 정서적으로 젊어지고 세상을 더 긍정적으로 보게됐다고 한다.

“남자들의 삶에서 가장 큰 사건이 있다면 아마 아버지가 된다는 것일 겁니다. 누구나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죠. 그러나 과거에도 현재에도 아버지는 ‘부양’의 이미지가 큽니다. 그러다 보니 가족 내에서 아버지 존재가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데 공연을 하는 아버지를 보고 ‘일만 하는 사람, 늘 집에 늦게 들어오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저렇게 멋진 모습도 있구나’ 하면서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실제 어떤 단원은 딸과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딸이 노래하는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처럼 살고 싶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로서 역할 모델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잘 살고 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삶의 성공은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이죠.”

유영수 단장의 말이다.

늘 푸른 소나무처럼, 20여년 이어오는 단단한 우정.

아이의 아버지를 너머 사회의 아버지로

광주아버지합창단은 제주도합창대회를 비롯하여 각종 합창대회에 출전했다. 대회에 나가는 것은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기 위해서다. 2003년도에는 제주도에서 열린 전국합창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또한 구례 산수유축제, 함평 나비축제, 완도 해조류박람회 등 다양한 지역축제에 초청을 받고 순천시여성합창단을 비롯한 지역합창단들과도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년소녀가장돕기 자선음악회, 소년원 방문 공연 등 나눔과 봉사 활동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한 순간 실수로 소년원에 들어간 아이들이 저희들이 한국가곡을 비롯해서 K-팝에 이르기까지 여러 장르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그럽니다. ‘나도 여기서 나가면 선생님들처럼 아름답게 살아봐야겠다’고.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 뭉클하죠.”

추영식 부단장의 말이다. 추영식 씨는 아버지합창단이 청소년 문제, 사회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고 낮고 소외된 곳을 찾아가서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그들의 마음에 환한 빛을 비춰주며 아버지의 사랑을 나눠주고 싶다고 말한다. 즉, 한 아이의 아버지가 아닌 사회의 아버지로서 그 역할을 할 것이라는 다짐이다.

연습과 실전은 매한가지, 늘 최선을 다하는 모습

광주아버지합창단에게 잊혀지지 않는 무대가 있다. 담양에 있는 가난한 예수의 집 위문 공연이다. 무의탁 노인들이 머무는 집인데 몇 년 전부터 찾아가 금일봉과 함께 아름다운 하모니를 선사해왔다.

“90을 넘긴 한 할머니가 아버지합창단이 온다는 소리를 듣고 잠을 이루지 못했대요. 저희 공연을 본 후로는 항상 그리워하고 꿈을 꾼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저승사자가 날 데리려 오거든, 아버지합창단 공연을 열 번 보기 전에는 못 간다고 일러라’라고.”

백수를 바라보는 할머니가 홍조를 띄며 하는 그 말은 그 어떤 칭찬보다, 그 어떤 갈채보다 감동적이며 단원들을 모두 숙연하게 했다. 그것은 늘 가진 게 넘쳐서 나누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할 수 있을 때 전하는 것이 나눔이라는 걸 아는 광주아버지합창단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이요 기쁨이며 보람이 아닐까 한다.

취재차 그들을 찾아간 날은 완도 해조류박람회와 함평 나비축제 초청공연, 5월 정기공연 등 공연을 앞두고 있어서 연습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노래에 따라서는 율동도 했는데 그 모션이 어색한지 조금은 쑥스러워했지만 자신이 맡은 파트에 열중하는 모습이, 삶의 즐거움을 음미하면서 현재의 순간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열정의 아버지, 건강한 아버지, 행복한 아버지였다.

소년소녀가장돕기 자선음악회

광주아버지합창단이 앵콜곡으로 자주 부른다는 <소나무>처럼 광주아버지합창단의 50년 아니 100년 후의 모습도 언제나 푸르고 변함없는 우정을 나누면서 희망을 노래하리라 믿는다.

<대동문화 100호. 2017년 5-6월>

정명혜 남부대교수  somchanel@naver.com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