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 3년 후인 1900년에 건립된 구 목포 일본영사관.

건축물에 관련된 한국의 근대유산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해볼 수 있다. 적산건물과 선교 유적군이 전형적인 양 갈래의 맥락이다. 개인 소유의 가옥이나 업무 시설과 같은 또 하나의 범례가 있긴 하지만 보존된 경우가 극히 드물어 하나의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기가 쉽지 않다.

개항지를 중심으로 근대 건축 유적이 집중해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 중에서 선교 유적들은 기독교의 발흥에 힘입어 내륙 도시에 있는 것들까지 잘 보존된 편이지만, 적산 건물들은 그 명맥을 유지하는 데 꽤나 힘겨운 부침을 겪었던 편이다. 적산은 의미 그대로 ‘자국의 영토나 점령지 안에 있는 적국 혹은 적국인의 재산’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해방 후 일본인들이 물러간 뒤 남겨놓은 건물을 지칭한다.

결국 어두운 역사의 흔적일 수밖에 없는 이들 건물군의 보존은 난감한 과제일 수밖에 없었고, 훼손을 부추기게 된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김영삼 정부 때 진행된 구 조선총독부 건물 폭파 해체 사건이 가장 극명한 사례다. 그런 의미에서 근래의 일이긴 하지만, 적산 건물들을 근대유산으로 수용하게 됐다는 점은 획기적 의식의 전환이라 여겨볼 수 있을 것이다.

목포, 식민지 수탈에 저항하다

1897년 개항 이전 목포는 19세기 후반 조선의 여느 해변 마을에 다를 바 없는 반농반어의 조그마한 촌락에 불과했다. 도시로서의 역사를 개항에서 찾아야 할 정도로 목포는 개항 이후 일인들의 주도 아래 급속하게 개발이 진행된다.

개항 후 한 달여 만에 영사관이 설치되고, 그로부터 3년 후 정식 영사관 건물이 완공됐으니 그 속도를 짐작할 만하다. 전국 10위권 안에 들 정도로 화려한 근대 도시로의 탈바꿈이 일제 강점 이후 초기 몇 년 사이에 이뤄진 셈이다. 인구수도 개항 이후 10여년 만에 4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와 함께 새로운 도시 형성이 가속화되면서 관청 건물을 중심으로 서구의 사조를 따른 건축물들이 활발하게 건립됐다.

물론 근대 건축의 발흥은 당시 수군진을 중심으로 배치돼있던 조선의 전통건축들이 깡그리 사라지게 된 안타까운 일면을 남긴 것 또한 사실이다. 19세기 중엽에 그려진 목포진 지도를 살펴보면 만호진 성곽 안에 객사를 비롯해 아사, 군 관청, 사부청, 작청 등의 건물이 군집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일장기를 달고 임시 영사관으로 사용되던 아사가 만호진 폐지 칙령에 따라 폐쇄되면서 전통 조선식 관청 건물은 영원히 목포에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 빈자리에 근대적 가로망을 갖춘 시가지가 형성되면서 관청, 학교, 상업 건물, 주택 등 서구 또는 일본 양식의 근대 건축물들이 조계지를 중심으로 경쟁적으로 들어섰을 것이다. 1920년대 초에 이르러 이미 호수 매립과 같은 택지 확보 사업이 펼쳐졌던 것을 보면 시가지 확장 속도가 상당했음을 짐작케 한다.

이처럼 개항 초기 목포 개발사를 돌이켜보았을 때 그 무렵 개항지들인 부산, 인천, 군산 등과 다를 바 없이 수많은 근대 건물들이 즐비했겠지만 현존하고 있는 목포의 근대 유산들은 보존의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빈곤한 게 사실이다.

이는 목포의 지역적 기질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1930년에 발표된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 상징하듯, 식민지 수탈의 역사에 대한 반감이 목포의 경우 유난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목포가 해방 공간 속에서 반제 공산주의 운동의 산실과 같은 역할을 했다는 점도 그러한 의미 부여에 힘을 싣는다. 근대 유산들을 보존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식민지 수탈의 상징으로 받아들인 측면이 특별히 강했다는 얘기다.

목포 양동교회. 1910년에 세워진 유서 깊은 기독교 선교 유적이다. 정명여중 구 선교사 사택. 1920년 건축됐다.

근대를 기억하고 있는 목포의 건축물들

김지민 목포대 교수의 ‘목포 1세기의 역사와 근대 건축’ 논문에 따르면 주요 근대 건축물로 분류된 50여개의 건조물 중 고작 8곳만이 원래의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을 정도로 목포의 근대유산 훼손율은 심각한 게 사실이다.

이 중에서 구목포일본영사관 건물은 특별히 원형이 잘 보존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목포시 북교동 국도 1·2호선 기점 뒤편 언덕바지에 있는 영사관 건물은 선명한 붉은 벽돌조의 단아한 외양이 아직도 빛을 잃지 않은 아름다운 건물이다. 현관 입구로 들어서는 목조 포치, 윤곽을 석재로 마감한 아치 창문 등이 붉은 벽돌과 어우러지며 시각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면서 독특한 자태를 뽐낸다.

건축 사조 상 르네상스 양식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절충주의 양식에 가깝다는 시각을 가질 수도 있다. 영사관 건물의 건립 시기가 1900년인데 반해 서구의 르네상스 사조는 이미 13~15세기에 풍미했다는 점에서 우선 차별화되고 있다. 또 당시 서구 건축의 사조가 근대 건축의 출현을 앞두고 고전의 양식들을 작가의 취향대로 조합하는 절충주의가 유행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르네상스 취향을 선택한 절충주의 양식의 건물이라 분류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구 동양척식회사 목포 지점 건물. 1920년에 건립됐으며 지금은 목포 근대 역사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금은 목포근대역사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구 동양척식회사 목포 지점 건물도 건립 당시의 외양이 비교적 잘 보존된 건물이다. 석재로 외관을 마감해 장중한 고전미를 풍긴다. 후기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로 분류돼 있지만 그리스 로마 양식에서 흔히 발견되는 상단부의 박공 장식이 눈에 띄는 등 신고전주의 건물 분위기도 풍기고 있다.

현재 목포문화원으로 사용되고 있는 구 호남은행 목포 지점 건물은 건립 연도(1925)가 말해주듯이 목포의 근대 건축물들 중 가장 현대적인 외양을 갖추고 있다. 고전적인 장식이 일체 생략되어 있으며 수평과 수직의 간명한 구조로 정리된 입체미가 돋보인다.

검은 빛이 도는 붉은 타일로 외장을 마감한 점도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목포 양동교회, 정명여학교 구 선교사 사택 등도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중요한 선교 유물이다. 국내에 있는 선교 건물들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석조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수직 수평의 창이 일정한 규칙으로 배열돼 있다.

구 동본원사 목포 별관(1920). 이 지역 최초의 일식 불교 사원이라는 문화사적 의미를 지닌 건축물이다.

1920년에 건립된 동본원사 목포 별관은 목포에 세운 이 지역 최초의 불교 사원이라는 연원을 지녔다는 관점에서 주목되는 건물이다. 석조 단층 건물이긴 하지만 구조와 외양이 독특해 찾는 이들이 많다. 일본식 암키와를 사용한 팔작지붕, 포치에 일본식 특유의 반원형 장식 지붕을 설치한 점 등 일본 불교의 사찰 양식이 짙게 드러나 있어 목포를 찾는 일인 관광객들의 주요 탐방 코스가 되고 있다.

근대 유적, 도시의 추억을 브랜드로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목포시의 근대 문화 유적은 선이나 면이 아닌, 점의 형태로 산재돼 있다. 이 때문에 근대의 거리와 같은 공간의 이미지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인천이나 군산과 같은 여타 개항지들의 일정 공간이 근대 문화유산 영역의 이미지를 갖추고 있음에 비교해본다면 아쉬운 대목이다.

그러나 목포 시가지를 두루 순례해보면 아직도 근대 문화유산으로서 관심을 가질만한 건물군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근대 거리로서의 정취도 눈에 띄는 곳이 많다. 2007년도에 목포대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한 ‘문화유적 분포지도’의 결과물만 두고 봐도 144개 정도의 유적군이 확인되고 있다.

이들 유적군의 보존 전망은 결코 밝지 않다. 대부분이 개인 소유의 유적군이기 때문이다. 이미 철거가 됐거나 심각하게 훼손이 진행된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이들 유적군이 목포가 개항을 통해 근대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시대적 상징이라는 관점에서 중요한 도시 브랜드적 가치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보존을 통한 활성화 시책이 시급하다는 얘기다.

구 호남은행 목포 지점(1925). 지금은 목포문화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보존의 문제에 있어서도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할 것으로 여겨진다. 일상적 활용성이 강조돼야 한다는 얘기다. 아르누보의 대표적 건축가인 오토 와그너의 비엔나 지하철 역사 건물(1894)은 지금도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인천의 근대 건축문화 거리도 모범적인 전례다. 조계지 일대의 근대 건축물들을 갤러리, 창작 공방 등으로 활용함으로써 예술가들과 시민들의 일상의 발길이 닿는 영역으로 활성화되고 있다.

사람 살지 않는 집은 쉽게 폐가가 된다. 근대 유적의 보존도 마찬가지의 이치가 적용되지 않을까 싶다.

대동문화 72호 [2012 9.10월호]

박호재 광주문화재단 문화정책실장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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