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는 가고 한 시대는 온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부터 67년이 지났다. 아직도 동족상잔의 비극을 기억하지만 주변에서 전쟁과 관련된 유산은 사라지고 있다. 광주를 지키기 위해 폭파해야만 했던 옛 산동교, 그곳은 먼 옛날이야기가 되고 있는가. 산동교 너머 외갓집에 두고 온 기억이 가물거린다. 기억하고 싶은 과거와 잊고 싶은 과거 앞에서 묵념을 올렸다.

옛 산동교(사진제공 광주지방보훈청)

광주로 들어가려면 영산강을 건너야 하지. 겨울에야 마른 강이 버석버석 얼어붙었지만 여름철이면 미루나무를 집어삼킬 듯 푸른 물이 철철 흘렀네. 그 물에 외줄기 다리가 걸렸으니 산동교(山東橋)라. 강 건너 보이는 외갓집의 불빛이 가물거리네.

한 때, 뜻도 모르고 ‘미아리 눈물고개, 님이 넘던 이별고개’를 따라 불렀다. 그 구성진 가락은 단장(斷腸)을 에일 듯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뿐이던가 ‘전선야곡’, ‘굳세어라 금순아’ 그런 노래들이 막걸리 장단에 맞춰 양은냄비를 두드리곤 했다.

헤픈 웃음으로 잊으려했던 전쟁의 상처는 아문 것이 아니라 잠시 기억 속에 묻혀있었을 뿐이다. 우리 민족사의 깊은 그늘, 한국전쟁의 포화는 멎었지만 그날의 상흔을 곳곳에 남아있다. 2000년부터 ‘이산가족 대면 상봉’이 이뤄져 20차례 계속되고 있지만 그것은 어떤 대가로도 갚을 수가 없는 동족상잔의 연장선에 있다.

옛 산동교 한국전쟁 재현 (사진제공 임무택)

아아, 끊어진 다리 산동교(228m)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발발한 한국전쟁. 당시 사전대비가 부족했던 한국 정부는 불과 3일 만에 서울을 잃고 국가존망의 위기에 처했다.

광주‧전남은 북한군 제6사단이 군산으로 진격하면서 전화에 휩쓸렸다. 전쟁 발발 이후 채 한 달도 못 된 7월 22일 고창을 점령한 북한군이 장성 갈재를 공격하면서 전남지역 전투가 시작됐다. 광주에서는 군경합동부대로 재편성된 제5사단 제26연대가 광주방어를 위해 산동교를 폭파하고 적을 저지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인민군 3천여 명과 맞서 싸운 군경은 고작 5백여 명, 23일 광주가 함락되고 24일 화순을 빼앗겼다.

산동교 전투에 참전했던 조귀보(87세) 용사는 말한다.

“장성 남면과 장성읍 경계에서 인민군 6사단 선발대를 만났다. 인민군의 광주 진입을 막기 위해 산동교 교각을 절단 폭파하고, 아군 3개 중대를 전투배치 포진하여 접전을 벌였다. 적군은 주력 탱크와 보병 약 1개 연대였다. 광주 방어전은 약 2시간에 걸쳐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이 전투에서 강대송 경위 등 30여명의 전사하고 5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결국 북한군의 집중 포화 공격으로 아군은 지리멸렬되어 전남 경찰국으로 후퇴했다.”

1934년 개통된 산동교, ‘역사가 숨 쉬는 다리’로 보존

장성에서 광주로 학교를 다니던 사람들은 옛 산동교를 기억한다. 산동교를 건너 구불구불 영산강을 따라 동림동 언덕을 오르다보면, 간혹 버스가 멈춰서기도 했다. 특히 겨울철에는 언덕길과 씨름하는 차량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얼마나 교통량이 많았던지 도로포장도 안 된 흙길이 반짝반짝하던 광주와 장성구간. 가끔 신작로에 박힌 쇠붙이를 뽑아다가 칼을 만들기도 했다.

1933년 동아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산동교는 경목선(京木線)의 일등도로로 광주군 비아면에 잇는 산동교 신설공사를 공사비 오만 팔천 원으로 착수한다’고 써있다. 제원은 ‘길이 228m에 폭은 6m로 철근콘크리트’였다.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국도 1호선, 1934년 개통된 산동교는 가장 오래된 다리 중 하나이며, 전쟁의 총탄이 남아있는 역사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새로운 산동교가 건설되고 친수공원이 생기면서 옛 산동교는 불필요한 존재였다. 광주의 목젖과도 같은 산동교는 노후된 시설로 철거 위기에 직면했다.

그때 동림동 마을주민들이 나섰다.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옛 산동교를 보존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광주시에 의견을 제출한 것이 받아들여졌다. 2007년 산동교는 ‘역사가 숨 쉬는 다리’로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어 신창동의 선사시대 유물과 동림동의 백제시대 마을터 등 다량의 유물이 발굴되기에 이르렀다.

동림동은 마을만들기 사업으로 산동교 위에 쉼터와 조경시설을 꾸몄다. 산동교의 과거와 현재를 그리고 영상강과 관련된 그림을 전시하는 등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공간으로 발전시켰다.

Remember 산동교, 그날의 포성!’ 산동교 전투 재현극(사진 광주지방보훈청)

사철 푸르른 옛 산동교, 역사는 흐른다

한국전쟁의 유물로 흉물이 되었던 산동교를 산책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별빛보다 찬란한 산동교의 야경이 휘황하다. 1934년 일제강점기, 1950년 한국전쟁, 2007년 마을만들기 사업 등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영산강 굽이굽이 역사는 흐르는데 하마터면 광주의 유일한 전쟁 전적지, 83년 된 다리를 잃어버릴 뻔 했다.

앞으로도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이지만 당면한 과제 앞에 옥석을 가리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이다. 무조건 없애고 새로 만드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것 같다. 광주지방보훈청은 옛 산동교 일대에서 ‘Remember 산동교, 그날의 포성!’으로 당시 상황을 재현하는 문화행사를 열고 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은 ‘호국보훈’의 뜻을 살피며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도 누군가의 손을 거쳐왔다. 산동교의 불빛이 아름답지만 누군가에게는 눈물과도 같은 기억이 아닐까. 새삼 산동교 앞에서 신성한 마음으로 묵념을 올린다.

대동문화 101호. 2017년. 7-8월.

김을현 기자  somchane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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