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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안심당‧육화당 문화재 추진미등록문화재 - 곡성 성륜사 안심당·육화당
김을현 기자 | 승인 2017.09.10 18:37
육화당 마당의 자미꽃

곡성 성륜사는 젊은 절이다. 고려나 조선시대가 아니라 대한민국 시대에 지어진 절이다. 보통의 절간에 전설하나쯤 내려오는 것이 보통이다. 성륜사는 어떤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가.

성륜사는 1990년 청화스님이 설령산 10여만평의 부지에 창건한 절이다. 1989년 아산 조방원 화백이 절 부지와 국포고택의 안심당과 육화당을 시주하며 성륜사의 역사가 시작됐다. 이후 대상그룹의 임창욱 명예회장이 대웅전을 비롯한 전각을 시주하면서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곡성의 명문가로 구휼사업에 앞장섰던 국포고택이 아산 선생의 묵향을 품으며 예술의 터전이 됐다가 다시 불교 도량이 됐다. 전설보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탄생했다. 이는 전통건축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가장 짧은 기간에 문화관광부(2017)로부터 전통사찰로 인정받은 곡성 성륜사. 그곳에는 안심당과 육화당이 있었다.

안심당 전경

주인은 변해도 건물은 유구하다

곡성 성륜사의 안심당과 육화당은 구례군에 있던 국포 김택균(1872-1945) 선생의 안채와 사랑채였다. 그의 아들 김종필 선생과 손자인 김원배 님이 소유하다 1980년에 매매되어 곡성으로 옮겨졌다. 이어 안심당과 육화당은 조방원 화백의 예술 공간으로 사용됐다. 마지막으로 청화 스님이 주석하고 있던 성륜사에 기증되어 종교공간으로 거듭났다.

원래 건립자인 국포 김택균 선생은 치산(治産)에 힘을 쓴 문인이었다. 그는 출산을 하는 주민에게는 쌀 닷 되와 미역을 보냈다. 상을 당한 사람에게는 옷감과 목관(木棺)을 보내 도왔다고 한다. 국포 선생이 쓴 ‘국포실기(菊圃實記)’가 전해지며, ‘송혜비명’은 국포 선생의 송덕비로 구례 전군에 세워지기도 했다.

국포고택은 김종필(1904-1990) 대에도 지역 공동체의 중심이었다. 1936년 설립한 금란회(金蘭會)는 구례지역 지식인과 문인들의 모임으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역할을 했다. 대를 이어 고아원을 운영하며 사회사업과 이웃사랑을 실천한 곳이 바로 국포고택의 사랑채(현 성륜사 육화당)였다.

문화재 등록을 추진하고 있는 김희태(전남도청 문화재전문 위원) 선생은 “육화당(1920년)과 안심당(1922)은 건립된 이후로 사회구제-문화향수-중생제도의 공간으로 이어졌다. 당초 건물과 이건된 전각이 설립과 경영의 배경은 다를지라도 본질적인 정신에서는 같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자미꽃, 연꽃에 어울린 육화당, 안심당

국포고택 이건과 아산 조방원, 청화대종사

국포고택은 목조 와가로서 전통한옥에 근대기의 건축양식이 반영된 건축유산이다. 건립자의 손자인 김원배 씨의 증언에 따르면 안채(몸채, 일자형, 팔작집), 사랑채(일자형, 우측 날개채), 바깥대문(소슬삼문), 소마굿간이 딸린 안대문, 중문, 샛문 등으로 구성되었다. 그 중 안채, 사랑채, 문간채 2동은 곡성으로 이축되어 지금은 성륜사 안심당과 육화당이 됐다.

국포고택에 대하여 자문을 하고 있는 목수 공동수 씨는 “현재의 안심당과 육화당 건물은 대체적으로 원형 그대로 이축됐다”고 말한다. 1984년 구례 현지에서 찍은 사진과 현재의 건물을 비교해 보면 원형 그대로임을 알 수 있다. 한옥의 건축 구조상 당초의 건물이 변형되었다면 종도리 등의 부재는 그대로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포고택의 종도리 장여에 쓴 상량문 부재가 그대로 옮겨와서 결구되어 있다. 다만 안심당의 기둥 일부가 사각에서 원형으로 바뀌고 육화당 뒤쪽의 작은 문짝 2개가 교체되었다고 한다.

처음 국포고택을 사들인 사람은 아산 조방원 화백(1926-2014)이다. 남농 허건(1907-1987)선생의 화맥을 이어 받은 한국화가이다. 아산 선생은 성륜사 자리에 전통예술교육과 창작 시설을 조성해 후학을 기르는 교육센터를 계획하며 전남 각지의 고택을 이축했다고 한다. 1987년 이축된 안심당과 육화당도 성륜사에 기증되기 전까지 후학을 지도하던 공간이었다.

아산 선생은 더 큰 뜻을 위해 청화대종사가 주석한 성륜사에 토지와 함께 기증하게 된다. 비로소 안심당과 육화당은 성륜사의 승당이 된다. 청화대종사(1924-2003)는 전남 무안 출신으로 당시 곡성 성륜사의 조실 스님이었다.

구례 마산 냉천리 510-1 국포고택(1984년, 사진제공 김희태)

유무형의 가치 충분, 문화유산 등록추진

국포고택은 ‘ㅡ’자형의 실용적인 가옥으로 건립의 연대나 건립자를 정확히 할 수 있다. 또한 대를 이어 고아원을 운영하면 주민 구휼, 사회사업에 앞장섰던 의미있는 공간이었다는 것이다. 1980년대 이축하는 과정에서도 건축 당시의 상량기록 부재가 그대로 사용되어 원형이 유지됐다. 이는 근대기의 한옥 건조물의 건축적, 유형적 특징을 그대로 간직한 사례가 된다.

민가건물에서 아산 조방원 화백의 예술공간으로, 결국 승당으로 거듭났지만 건물의 기능은 달라지지 않았다. 성륜사의 육화당과 안심당은 문화재적 가치가 충분하다는 결론이다.

설령산을 올려다보며 청화대종사를 그려본다. 아산 조방원 선생의 묵향을 맡아 본다. 육화당과 안심당에서 두 팔을 펼친 듯 옛모습 그대로 서있다.

안심당의 장식

*본 내용은 김희태(전남도청 문화재전문위원), 김형수(옥과 향토사학자), 이은정(곡성군청 학예연구사)의 자료조사를 참고했습니다.

<대동문화 102호. 2017년 9월 - 10월>

 

김을현 기자  somchane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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