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식인 선정, 보향다원 최영기 대표

인류의 3대 기호 식품은 커피, 코코아, 차(茶)이다. 이중 국내에서 생산되는것은 차. 그런데 차는 커피 열풍에 저만큼 밀려나 있다. ‘아침밥을 거르는 사람은 있어도 모닝커피는 거르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커피를 좋아하고 많이 마시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편의점의 저가 커피에서부터 프렌차이즈의 고가 커피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다양하고 소비층도 폭넓다. 그러다 보니 2013년 말 기준 한국에서의 커피 소비량은 6조원. 그에 비해 차 매출액은 3억원. 매출액으로만 보면 커피에 비해 한국 차의 모습은 초라하다.

그러나 우리 차를 통해 세계 차 시장의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이가 있다. 보향다원(寶香茶園)의 최영기씨(62)와 최승선(60) 부부이다. 보성군 보성읍 우산리에 있는 보향다원은 1937년, 최영기씨의 증조부가 조부와 함께 야산을 개간하여 과일나무와 차나무를 심으면서 시작되었다. 그것을 아버지와 최영기씨가 이어가고 있고 이제는 최영기씨의 두 아들이 함께 하고 있다. 5대째 차농사를 짓고 있는 80년 역사가 있는 다원이다. 보향다원에는 1년이면 2만여 명의 관광객과 체험객들이 다녀간다. 그곳에서 시음을 하고 차를 따고 차와 차음식을 만들고 다례를 배운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데 그들은 잘 가꾸어진 다원과 차맛을 보고 ‘원더플‘ ’파라다이스‘를 외친다.

금을 먹고 자라는 차나무

금을 먹고 자라는 차나무

2만여 평의 보향다원에는 특별한 차밭이 있다. 시음장과 체험장 앞에 있는 차밭인데 그곳에는 ‘금차밭’이라는 푯말이 붙어있다. 이곳의 차나무는 금으로 만든 물을 먹고 자라는 아주 특별한 나무다. 이 차나무에서 채취한 찻잎으로 만든 차가 보향다원의 명품 ‘금차’(金茶)다.

“한국의 차 시장은 참으로 열악합니다. 차를 마시는 사람이나 소비량에서도 중국이나 일본, 유럽 등에 비해 턱없이 부족합니다. 커피 시장은 자꾸자꾸 커지는데 왜 차 시장은 활성화되지 못할까? 많이 고민하고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가 금차 개발입니다.”

‘금차’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몇 년 전 시판되었던 금가루가 든 소주를 생각했다. 차잎에 금가루를 넣었을 것이라고.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금을 전자분해 하면 용액으로 변하는데 그것을 희석하여 차나무에 준다고 했다. ‘금차’는 금용액을 먹고 자란 차나무에서 채취한 녹차를 가지고 만든 것이다. 진짜 녹차잎에 금성분이 들어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금성분인증서, 즉 금성분 성적표를 보여준다. 금차는 차 시장의 고급화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주말이면 고향에 내려가 다원 일을 돕던 최영기씨는 본격적으로 차산업에 뛰어들면서 ‘보성차의 활성화 방안’에 대해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중국, 일본, 대만 등 차 소비량이 많은 나라를 보면서 그들에게 없는 차를 개발하지 않고는 답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더군다나 2007년 ‘농약녹차’라는 보도로 인해 녹차의 위상과 신뢰도는 곤두박질쳤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재배농가에서는 차밭을 포기했다. 2007년 대비 2015년 현재 재배농가는 35%, 재배면적은 27%가 감소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예부터 금은 지니고만 있어도 건강에 좋다고 해서 금반지, 금팔찌, 금비녀 등을 했었죠. 금니를 하고 금침을 맞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차와 금을 접목 시켜보면 어떨까, 차도 좋고 금도 좋은 것인데...그렇게 해서 개발된 것이 금차입니다.”

보향다원 최영기‧최승선 부부

차 시장의 고급화 바람을 불러일으킨 ‘금차’

그의 금차 개발은 ‘농약녹차’ 파동 이후라 더욱 의미가 있었다. 차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물론 세계박람회에 선보이면서 한국 차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금차는 미국(USDA), 일본(JAS), 유럽(EU)의 국제 유기농 인증을 획득했다. 최영기씨는 금차 개발로 수상도 많이 했다. 2010년에는 신지식인 농업인으로 선정됐고, 같은 해 농업인의 날 행사에서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다.

“금차가 개발된 다음 해인 2010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초청되어 금차와 한국 다례를 선보였는데 그것이 그곳 매스컴에서 크게 보도됐어요. 당시 오스트리아 대사님이 저희를 공관에 초청해서 ‘비엔나는 국제기구가 많은 곳인데 금차로 한국의 위상을 높여주었다’면서 만찬을 베풀어주셨어요.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국제차박람회도 잊을 수 없는데요 한국에도 차가 있냐고 할 정도도 한국 차에 대해 모르고 있었어요. 그런데 금차를 보고는, 중국 사람들은 특히나 금을 좋아하잖아요, 정말 놀라고 좋아했어요. 그럴 때 차하길 참 잘했다, 보람을 느꼈죠.” 그의 아내 최승선씨의 이야기다. 그녀는 보향다원을 찾는 수많은 관광객들과 체험객들에게 다례와 차음식, 차만들기 등을 지도한다. 또한 차를 이용한 음식을 개발하고 연구하기 위해 책을 보고 사람들을 만나고 강의를 듣는다. 중국 차문화의 원류를 알고자 해발 2500미터가 넘는 곳에 사는 고산족을 만나러 가고 소수민족을 만나기 위해 몇시간을 걷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인도, 베트남, 유럽 등 차에 대한 정보와 자료가 있다면 어디든지 찾아간다.

“생각이 막히면 다원으로 달려가 김을 매요. 김을 매면서 생각을 하죠. 이 풀이 왜 내 손에 뽑힐까? 필요하지 않는 곳에 낫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내 마음 속에 필요치 않는 것은 뭐지?”

자문자답 하다보면 막혔던 것이 풀린다. 그래서 김매기는 그녀에게 일이자 문제해결의 장이다. 그러고 보니 부부가 참 많이 닮았다. 학구열이 높고 배우고 연구하는 것을 즐긴다는 점이.

5대째 차농사.... 80년 역사의 보향다원

여보, 여보 여기 좀 와서 봐

위기도 있었다. 몇 년 전 탄저병이 왔다. 차잎이 까맣게 타들어갔다. 일을 하려 온 사람들이 오히려 더 걱정을 하면서 난리다. 빨리 농약을 해라고. 그러나 최영기씨 부부는 그럴 수 없었다. 선대 때부터 유기농을 신앙처럼 지켜왔기 때문이다. 그녀가 차밭의 김을 매는 것도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탄저병이 온 차밭으로 번지자 며칠 동안은 차밭에 가지 않았다. 속이 상했다. 며칠이 지났을까, 차밭에 나간 그는 깜짝 놀랐다. 아주 푸릇한 새싹들이 까맣게 타들어가던 잎을 밀고 올라오는 것이었다. 눈을 비벼봤다. 혹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어서였다. 이 고랑으로 가서 보고, 저 고랑으로 가서 봐도 어린 싹이 온힘을 다해 올라오고 있었다. 그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아내를 소리쳐 불렀다.

“여보, 여보 여기 좀 와서 봐. 여기 좀 와서 봐.”

지금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그것은 환희였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증조부 때부터 유기농법을 지켜왔기에 차나무가 자생력을 잃지 않고 버텨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유기농의 소신을 지켜온 그들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탄저병의 위기를 넘긴 그는 유기농에 대한 신념이 더욱 확고해졌다. 그의 아들 준용(34), 준성(30) 군도 선대들의 신념과 소신을 지키는데 유념하고 있다.

차를 마시는 사람은 향기롭다. 차를 만드는 사람은 아름답다. 차를 마시고 차를 만드는 최영기 가족. 그들은 향기롭고 아름다운 가족이다.

<대동문화 102호. 2017년 9월 - 10월>

정명혜 남부대교수  somchane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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