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성벽으로 쌓아올린 구마모토성은 일본 3대 명성의 하나로 백제식 축성법이 사용되었다.

기원전 18년 위례성에 첫 도읍을 정한 온조왕을 시작으로 660년 의자왕까지 한반도 서남쪽에 백제가 있었다. 백제는 삼국 중 가장 일찍 멸망하였고, 나당 연합군에 의해 패하였기 때문에 수많은 문화재와 기록들이 소실되고 말았다.

비록 침략에 의해 백제 역사는 끝이 났지만 화려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백제는 한학이 발달하였고, 역사서를 편찬하는 등 역사의식이 강했다. 또 중국 동진, 송, 양, 진과 외교 관계를 맺어 자주 내왕하고 문물을 받아들였다. 또 마라난타가 처음 불교를 전했다.

일본 아스카 문화 기반 구축한 백제 문화

오경박사와 시·서·예와 춘추 등 분야의 전문 박사가 있어 학문을 연구했다. 이 학문을 일본의 상대(上代)에 전해 문명을 계발하고 지도했다. 미술과 석탑, 석등, 기와 등 건축술이 뛰어났고, 백제 기술자들의 솜씨는 신라와 일본에 전해졌다.

백제 문화는 중국 남조 문화의 영향을 받아 매우 세련되고 화려했다. 백제 문화는 고구려와 신라 문화 발달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또 일본과 활발한 교류를 통해 많은 문화 전파 활동이 있었다. 앞선 문물을 일본에 전해주어 일본의 아스카[飛鳥] 문화의 기반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일본과 백제의 가장 대표적인 문화 교류는 일본에 한문과 유교를 전파한 전남 영암의 왕인 박사의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암 구림 출신의 왕인은 백제가 낳은 대학자이다. 일본 오진왕[應神王］의 초빙을 받아 구수왕(仇首王)의 문화 사절로 일본에 건너가 일본 태자의 사부가 되었다. 그리고 일본 조정의 사람들에게 학문을 가르쳤을 뿐 아니라 데리고 간 기술자를 통해 여러 가지 기술도 전했다. 백제 문화를 일본에 전한 선구적 존재였다. 일본에서는 고대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한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고대 일본 농경사회의 장례문화를 알 수 있는 요시노가리 옹관묘

일본 국가 형성의 물줄기가 백제로부터 흐르다

4세기 경 일본에는 제대로 된 문자가 없었던 터라 왕인 박사의 출현과 가르침은 일본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백제는 유교 문화뿐만 아니라 불교 문화도 일본에 전하기 위해 많은 승려들과 기술자들을 보내 절과 탑을 세웠다. 사상과 학문과 문화에까지 선진국이었던 백제는 일본이 나라의 기틀을 세우는데 큰 물줄기를 댔다.

지난 7월 말 대동문화재단 여행사업부는 시민들과 함께 일본에 전파된 수많은 백제 문화와 전라도에 있는 백제 문화를 비교해보기 위해 3박 4일 동안 답사를 다녀왔다. 백제-일본 비교 문화 답사였다.

7월 25일 백제-일본 문화교류 현장 답사단 23명은 광주에서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 금정산에 있는 범어사를 먼저 답사했다. 선찰 대본사인 범어사는 전라도의 평탄한 지형에서는 느낄 수 없는 굴곡이 지고 화려한 형태의 가람배치를 볼 수 있었다.

저녁 시간이 되어 드디어 일본 하카타항으로 향하는 카멜리아호에 올라탔다. 하룻밤을 보내야 하는 페리에는 벌써 일본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일본어로 된 자판기들, 대욕탕 등 여러 편의 시설 등이 깔끔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부산 밤바다를 보며 출발한 카멜리아호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7월 26일 아침 하카타 항에 도착을 했다. 배는 이미 멀찍이 하카타 항이 보이는 곳에 도착을 하였지만 공해상에서 시간을 보낸 뒤 아침 7시가 넘어 배에서 내려 드디어 일본에 입국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간 곳은 백제식으로 지어진 미즈끼(水城) 성터이다. 성이라고 해서 크게 돋보이는 형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토성을 중심으로 해자가 둘러져있어 지금은 자연스러운 둑길이나 언덕길로만 느껴지지만 자세히 보면 인위적으로 평탄하게 만들어진 토성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백제식 토성으로는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이 있다.

학문의신이 있는 천만궁신사 단체사진

백제식 축성법으로 세워진 오노성에서

다음으로 향한 오노성은 663년에 일본이 백제를 위해 백촌강 전투에 지원병을 보냈으나 참패하고 연합군의 보복을 대비하여 쌓은 성이다. 백제 부흥을 위해 백강 전투에 참전한 왜국은 나당연합군에 대패했다. 이후, 나카노오에는 나당연합군의 침공에 대비하여 방비를 견고히 하기 위해 북큐슈의 쓰시마 · 이키 · 쓰쿠시에 사키모리(防人, 변경수비대)와 봉수를 설치하고, 다자이후의 서쪽-쓰쿠시에 평지성인 미즈키(水城)을 축조하였다. 또 665년 8월 나가토에 성을 쌓았다. 그 다음 망명해온 백제 유민들인 오쿠라이후쿠루와 시비후쿠후를 쓰쿠시에 파견하여 이들로 하여금 쓰시마로부터 북큐슈, 기나이의 왕도에 이르는 국방상의 요새에 조선식 산성을 축성하였다. 이것이 오노 성이다.

우리가 방문했던 오노성은 깊은 산골짜기에 있는 곳으로서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원령공주’에 나올법한 배경에 산성의 초석이 대부분인 형태였다. 난데없는 모기떼와 가파른 산지 때문에 조금 고생스럽긴 했지만 백제의 후손임을 되새기며 성터에 올라섰다. 원형대로 보존된 성벽을 보지는 못했지만 산을 오르내리면서 볼 수 있었던 초석들의 숫자로 보면 규모가 상당했음을 짐작 할 수 있었다.

반지하형태의 움막집 요시노가리 전통가옥

광주 신창동 유적과 비슷한 선사 유적 공원

맛있는 고로케 정식으로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요시노가리 농경 유적지로 향했다. 7월 말 뜨거운 태양 아래 농경 유적지를 가기엔 너무 가혹한 시간이었다. 36도가 넘는 폭염 속에 허허벌판을 돌아다녀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모두들 요시노가리 테마 공원에서 빌려준 고대 시대의 전통 모자를 쓰고 출발했다.

요시노가리 유적지는 일본의 고대 농경사회를 복원해 놓은 곳으로서 광주에 있는 신창동과 흡사한 면이 많았다. 신창동 유적지보다 규모나 중요성은 작았지만, 테마공원으로 잘 조성이 되어 있어 고대 일본의 부족사회를 쉽게 이해 할 수 있었다.

요시노가리 역사 공원은 약 600년간 계속된 야요이 시대(기원전 3세기~3세기) 모든 시기에 걸쳐 발굴된 유적을 복원하고 야요이 시대를 체험할 수 있는 공원이다. 98동의 복원된 당시의 건물군과 마가타마(장식용 구슬) 만들기 등의 체험 프로그램도 즐길 수 있다. 반지하의 움집과 크기가 다양한 옹관묘, 조개가루를 이용한 천연 염색 등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일본에는 여기저기에 왕인 박사에 관련된 유적지들이 있다. 일본에서 왕인은 와니라고 불리는데, 요시노가리 유적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 왕인 신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특별히 관리하고 있지 않아 여느 신사보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전남에서 여기까지 찾아온 우리들에게는 그 의미가 더욱 특별하였다.

나가사끼 평화공원 근처에 원자폭탄 자료 기념관이 있다.

한국의 짜장, 일본의 나가사끼 짬뽕의 유사점

왕인신사를 나와 요즘 짬뽕으로 유명새를 탄 나가사끼로 이동을 하였다. 나가사끼는 17세기 네덜란드와 포루투칼의 무역항으로 개항이 되었고 기독교인의 활동이 활발했던 곳으로 현재도 이국적인 건물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나가사끼 짬뽕은 중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여러 해산물들을 넣어 저렴하게 만들어 먹었던 음식으로 일본 전통 음식은 아니다. 1945년 8월 9일 나가사끼에는 미국에 의해 원자 폭탄 피해를 입게 된다. 8월 6일 히로시마에 이어 두 번째로 피해를 입은 나가사끼에는 현재 평화공원과 원자폭탄 자료 기념관이 있어 그 당시의 처참함과 피해 현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답사 둘째 날 밤은 항구 도시답게 다양한 회와 해산물 나가사끼 짬뽕 등으로 저녁을 먹은 후에 나가사끼 야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노천 온천에서 목욕을 했다. 하루 종일 폭염에 지친 몸의 피로가 가시는 듯했다.

7월 27일, 트램[노면 전차]이 지나다니는 나가사끼의 시내를 통과하여 아소산의 운젠(雲仙)로 이동했다. 이름답게 운젠 입구에 들어서면서 구름이 깔리더니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한다. 어제는 종일 36도를 넘나드는 날씨였는데 오늘은 소나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내리는 소나기 사이로 유황 온천수와 연기들이 피어올라 신기하면서도 지옥에 온 듯, 운젠 지옥이라는 별명이 제격인 순간이다.

운젠은 산자락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운젠 지옥으로 유명한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나무 데크길을 따라 지옥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화산이 재앙이라면 온천은 선물이다. 운젠 지옥(운젠 지고쿠, 雲仙 地獄) 일대에는 유황온천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이 일대는 1930년대 일본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던 사연을 지닌 곳이다.

운젠(雲仙) 지옥 공원은 유황 온천수와 연기들이 피어올라 신기하면서도 지옥에 온 듯하다.

일본의 3대 명성 중 하나인 구마모토성

운젠에서 내려와 한 시간 정도 페리를 타고 구마모토로 이동했다. 구마모토성은 일본에서도 3대 성안에 들어갈 만큼 손꼽히는 성 중의 하나이다. 가토 기요사마가 7년에 거처 축조한 성으로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활약하며 터득한 기술로 성벽을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가파른 곡선으로 지어진 성이다. 성의 많은 부분은 파괴되었고 1906년 일부를 재건하였다. 구마모토 성은 나고야 성, 오사카 성과 함께 일본 3대 명성 중 하나이다. 성 주변에 은행나무가 있어 긴난 성(銀杏城, 은행 성)이라는 별명도 있다

구마모토 도심에서 자유 시간을 보낸 후 기쿠치성이 있는 기쿠치로 이동하였다. 기쿠치 평야를 바라보고 있는 기쿠치성 역시 백제식 형태의 성곽으로 특히나 팔각형의 건물지가 눈여겨볼 만한 것이다. 일본에서 전무한 형식의 팔각형 건물지는 경기도 이성산성과 흡사한 형태이다. 또한 기쿠치성에서 7세기 후반의 백제계 불상인 청동보살입상이 발견되었다. 기쿠치성에서 노을을 보며 우리는 백제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일본에 미친 지대한 영향력을 새삼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7월 28일 일정의 마지막 날, 후쿠오카로 이동하여 다자이후 천만궁을 들렀다. 일본의 유명한 학자인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眞)를 '학문의 신'으로 모시는 곳이다. 매년 합격이나 학업 성취를 기원하는 참배객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다양한 꽃이 피는데, 특히 매화인 ‘도비우메’는 다른 매화보다 먼저 피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이곳 명물로 ‘우메가에 모치’라는 떡이 있는데, 이 떡을 먹으면 병마를 물리치고 정신이 맑아진다고 한다. 우리는 천만궁과 정원에 있는 매화나무를 감상하고 매화떡으로 유명한 상점가에서 매화떡을 맛보았다.

3박 4일 동안 36도를 육박하는 더운 날이었지만 이번 답사는 단편적인 일본 문화뿐만 아니라 백제 문화와 비교할 수 있어 입체적으로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였다. 대동문화재단 해외여행 사업부는 우리 역사와 연계된 해외 문화유산 답사를 매년 2차례 이상 실시할 예정이다.(문의 : 해외여행 사업부 062-651-1522)

대동문화 72호 [2012 9.10월호]

김근하 기자  paranbaji@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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