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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연극계의 잔다르크연극 부활의 불쏘시개로 열정 태우다
김영순 | 승인 2018.01.15 18:58
연극인 윤석화

한국 연극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연극배우 스타 1호. 운명처럼 만난 연극이 그냥 좋았다. 그래서 40년 넘게 한눈 팔지 않고 무대를 지키며 애오라지 연극사랑에 빠진 연극쟁이. 누가 뭐래도 뼛속까지 연극인이다. 바로 연극인 윤석화씨다.

 

스스로 묻고 답하는 사회

한국연극 1백년사에서 연극으로 이만큼 유명해질 수 있을까. 스스로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은 없었다. 그러나 너무 유명해져버렸다. 그에 따른 책임이 그의 어깨에 걸머져 있음을 깨닫는다. ‘아름다운 책임’과 자신이 짊어져야 할 무게를 항시 느낀다.

그 때문이었을까. 부담감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에 지난 10월 하순께 취임했다. 이사장직을 수락하며 마음이 정말 무거웠다. 해야 할 일이 만만치 않기에. 연극인의 애로사항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안다. 마치 일제 강점기시절에 독립운동만큼이나 힘든 게 연극이다. 그러하니 연극인들의 삶은 오죽할까. 연극인 자신들이 힘든 건 그렇다 치고 자녀들은 또 무슨 죄일까. 연극판을 지키느라 가족 건사는 물론이고 자녀들의 학업에도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게 여느 연극인이고 간에 거의 비슷한 공통 사항에 다름아니다.

연극인 자신들이야 연극이 좋아 스스로 선택한 인생이지만 그로 인해 더불어 힘든 가족들, 특히 자녀들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 자녀들 뒷바라지가 온전치 못해 좋은 대학 보내기가 수월치 않지만 설령 좋은 대학에 입학한다고 한들 등록금 마련하기도 힘들다. 해서 연극인 자녀를 위한 장학금을 마련해볼 생각을 이리저리 궁리 중이다. 또 연극인들의 일자리 창출도 이모저모로 생각 중이다. 쉽지 않을 건 안다. 해낼 수 있으려나를 생각하면 마음이 천근만근 무겁다. 그렇다고 해서 미리 포기하지는 않으련다. 최선을 다해 볼 양이다. 끝까지 하면 뭔가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배짱, 그동안 연극을 지켰던 뚝심(?)으로 밀어붙여 보련다.

 

문화는 슬로건으로 되는 게 아니다. 예술은 어렵다. 그렇다고 실천하지 못할 것은 없다. 예술은 철학을 꿈꾸게 하고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를 주며 ‘나’를 ‘나’답게 하는 에너지원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인식하며 철학을 세워 생활 속에서 실천하게 한다. 또 그 같은 분위기를 전염시키게 한다. 이게 바로 연극 윤석화가 믿는 예술론이다. 그는 어쩌면 이걸 지키기 위해 그 오랜 세월 무대를 지키며 목청 높여 연극을 해댔는지 모른다. 그가 해야 할 사명이고 지켜야 할 소명처럼.

“내가 꿈꾸는 것은 물질적인 풍요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스스로 묻고 답하는 사회입니다. 그 답은 생각하고 인식하며 철학하는 삶 속에서 찾아질 것이고 예술을 통해 가능하다고 봅니다.”

예술가에게 보상이 따로 없다.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치러내는 동시에 정신을 지킬 수 있는 에너지를 가져야만 예술가로서의 위상을 지킬 수 있다. 그것은 예술인이 감내해야 할 몫이고 숙명이다. 그 과정에서 윤씨는 ‘자기다움’을 만들어왔고 지켜 내고 있다. 그래서 그의 행보가 아름다운 것이다. 출연료가 수억원씩 하는, 소위 돈벌이(?)가 쉬운 영화나 드라마에의 요청을 간단히 물리치고 오로지 연극판에 남아 연극무대를 지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가진 정신과 가치에 이미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에 척박하고 고단한 길을 마다않고 가고 있는 것이다.

연극인 윤석화, 40년 외길을 걷다

CF의 여왕에서 연극배우로

‘연극은 나의 운명, 배우는 나의 것’. 한번 연극에 꽂힌 뒤 연극으로 길들여졌다. 그러나 연극에의 입문은 정말 우연이었다. 우연히 접한 연극에 홀라당 마음을 빼앗기고 반백에 가까운 세월을 연극에 몽땅 바쳤다. 그러나 결코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란 게 지금의 생각이다. 먼 세월을 거쳐 와 뒤돌아보니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을 거라며 미소를 짓는다. 당초 윤씨는 아주 잘 나가던 CF 여왕이었다.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드려요.

아름다운 날들이여 사랑스런 눈동자여

오오오 오란씨.

 

1977년 '트윈 폴리오'의 윤형주씨가 만든 오란씨의 CM송을 윤씨가 메인보컬로 불러 대박을 터뜨렸다. 이후 CF가 쏟아져 들어왔다.

 

열두시에 만나요 브라보콘

둘이서 만나요 브라보콘

살짝쿵 데이~트

해태 브라보콘!

브라보~ 브라보 코오온

 

유행했던 해태 브라보콘 CM송이다. 라이벌 제품인 싸만코도 그가 불렀다. 경쟁사인 제품들을 모두 윤씨가 부른 게 한 두 개가 아니다. 지금으로선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거의 모든 CM송을 독식하며 단연 CF 여왕으로 우뚝 섰다. 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 참 잘 나가던 그 때 그는 연극과 조우한다. 정말로 우연히. CM송 본거지였던 대중음악평론가인 ‘똘강’ 이백천 선생의 사무실 옆으로 극단이 들어왔다. 극단 대표는 당시 이백천 선생과 절친인 이효영 선생이었다. 김수현 작가와 ‘새엄마’ ‘정’ 등을 만든 MBC 부장 PD였다. 형편이 어려운 극단에 이백천 선생이 연습실을 내어준 것이다. 하루는 극단이란 곳은 도대체 뭘 하나 싶어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놀러갔다. 이효영 선생이 빤히 윤씨를 보았다.

“점잖게 생긴 분이 왜 자꾸 쳐다보십니까”

당차게 쏘아 붙였더니 이효영 선생은 웃으면서 탤런트 할 생각이 없느냐고 했다. 그 제안에 연극배우라면 몰라도 탤런트는 싫다고 당돌하게 말했다. “연극이 뭔 줄 아느냐”며 매우 반가워했다. 그리곤 연극을 보러가자고 했던 게 바로 엊그제 같다며 추억에 잠긴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연극과 평생 사랑을 지키고 있다.

'신의 아그네스’ 아그네스로 분장한 윤석화

아름다운 연극배우 윤다르크

그에게 인생작은 ‘신의 아그네스’. 86, 87년 실험극장에서 올린 이 작품은 공전의 히트를 치며 ‘윤석화’란 이름을 연극계의 베테랑으로 낙인찍히게 했다.

“작품은 자식과 같습니다. 열 손가락 중에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듯이 작품마다 다 소중합니다. 그럼에도 ‘신의 아그네스’를 꼽는 것은 가장 위기에서 가슴 졸이며 했던 작품이기에 그렇습니다.”

번역극인 까닭에 문화적 특성이 차이로 우리와 맞지 않는 정서를 딛고서라도 선보이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그리고 극단에서 거들떠보지 않는 서러움을 안고 시작했기에 여기저기서 ‘저 작품이 될까?’하는 우려감이 높았었다. 그런 분위기에도 기 눌리지 않고 잘 될거라 믿고 눈물과 땀으로 얻은 결실이었다. 뜨거운 호응 속에 연극배우 ‘윤석화’가 우뚝 섰다. 오늘의 윤석화를 있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신의 아그네스’ 뿐이 아니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 ‘덕혜옹주’ ‘마리아 칼라스’ ‘나는 너다’ 등이 연극배우 윤석화에게 잊지 못할 작품들이다. ‘마리아 칼라스’는 배우인생 40년을 맞아 어려운 작품을 해냈구나 하며 스스로 토닥여주고 싶은 작품이며 안중근 열사의 ‘나는 너다’는 연극쟁이로서 자랑스런 무대였다.

연극배우에 그치지 않았다. 제작과 연출로 영역을 넓혀 연극무대를 다채롭게 꾸미는데 앞장섰을 뿐 아니라 월간 객석 발행인을 맡아 한국 무대공연의 발전을 도모하는데 힘을 보태었다. 주변에선 그더러 한국연극의 ‘윤관순’ ‘윤다르크’라 한다. 연극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고 그걸 ‘업’으로 삼아 지켜 내려는 뚝심을 보고서 하는 말이다. 유명해진 ‘탓’(?)에 나만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소명의식으로 한국연극계의 잔다르크로 남길 마다하지 않는다. 대학로에 위치한 설치극장 정미소를 운영하고 가슴으로 낳은 두 자녀를 키우며 자선콘서트 등을 지속적으로 펼치는 동시에 연극계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그의 이름은 하고 있는 일이 ‘아름다운 연극 배우’ 윤석화다.

대동문화 103호(2017. 11-12월)

김영순  somchane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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