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가지산 보림사 대적광전 앞에서 청태전 헌공다례가 열렸다. 한중일 3국의 다인들이 모였다.

지난 10월 21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전남 장흥 가지산(迦智山) 보림사(寶林寺)에서는 국제선차문화연구회가 주관하고 보림사와 장흥군이 주최한 ‘한중일 3국 헌공 다례’가 열렸다. 이 행사의 핵심은 장흥 청태전 차를 부처님께 올리고 보림사 대적광전 앞, 삼층석탑과 석등 주변에 자리를 벌여두고 차별 없이 차를 나누는 ‘무차(無遮) 다도 공양’이었다.

유서 깊은 사찰 마당에서 가을 햇살 아래 마시는 청태전 차맛이야말로 저절로 무심의 경지로 이끌어주는 투명함 그 자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열린 ‘제7회 세계선차문화교류대회’의 마지막 날을 장식한 행사로 선차(禪茶)를 부처님과 사부대중에게 헌공하는 다례이자, 무차(無遮) 행다(行茶)였다.

우리 선차 문화의 역사 남은 가지산 보림사

가지산 보림사의 ‘보조선사 창성탑’은 가지산문을 연 보조선사 체징이 입적한 뒤 884년(헌강왕 10년) 건립된 탑비로 이 ‘가지산 보조선사 비명’에 ‘차(茶)’ 명문이 등장한다. 이는 우리나라 공식적인 차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삼국사기>의 차 기록보다 31년 뒤진 것이기는 하지만 왕이 선사에게 차를 하사하며 선문(禪門)을 열어달라고 권유하고 있는 내용이어서 우리의 ‘선차 문화’의 역사가 1천여 년이 넘는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또 가지산 보림사는 보조선사 체징(體澄, 804~880)이 산문을 여는데 이 체징은 중국 백장 회해 문하에서 공부한 서당 지장-도의-염거 화상으로 이어져오고 있는 선맥으로 중국 백장 회해는 ‘선다일여’의 정신을 강조한 선사로 이름이 높다. 장흥 보림사는 이 국제 선차 문화의 맥이 이어져 내려온 사찰인 것이다.

그리고 장흥은 중국 육우의 <다경>이라는 차책에서 설명된 병차(餠茶), 일명 떡차의 하나인 ‘청태전(靑苔錢)’의 고향이기도 하다. 청태전은 후발효차로 전통 떡차의 남도 대표 차 브랜드이기도 하다. 40년 전까지만 해도 장흥 보림사 주변뿐만 아니라 남도 민가에서 청태전을 만들어 처마 밑에 걸어두고 감기 등의 상비약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손님들을 접대하는 데 쓰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청태전은 최근에 다시 복원되고 연구되어 장흥군은 ‘청태전’ 명품화 사업을 펼쳐나가고 있다. 이런 선차의 사찰에서 한중일 3국의 헌공 다례 의식이 여법하게 펼쳐진 것이다.

이날 행사는 세계선차문화교류대회 대표단과 다음 개최지로 확정된 중국 저장성 창싱현(長興縣)의 관계자들과 자매도시인 전남 장흥군의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다.

대적광전 철조비로자나불에 청태전 차를 헌공했다.

소통하는 생명의 찻자리를 원합니다

구산선문 보림사 비로자나 부처님 전 헌공 다례 의식은 삼귀의례, 반야심경 봉독, 주지 일선 스님의 고불문, 대한불교 조계종 원로의원이신 법흥 큰스님의 환영사로 시작됐다. 그리고 통천 의식, 입정, 육법공양 헌다 의식, 음성 공양, 청태전 전달식, 청태전 무차 공양, 조사전, 부도전 참배 및 차밭 포행으로 마감됐다.

육법 공양 헌다 의식에서는 ‘비로자나 부처님전, 조사전 그리고 근․현대사 변혁의 길목에서 먼저 가신 무주고혼을 위로하는 공양물과 차를 올리겠습니다. 생명이 있는 것과 없는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세계, 유정무정의 많은 인연들이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새롭게 손잡는 소통의 세상을 염원합니다’ 발원하고 있어 새 생명을 여는 소통의 세상을 차와 불교로 이루어나가겠다는 차회의 목적을 분명히 했다.

청태전은 당 송시대 중국에서 성행했던 차로 한반도에 유입되어 삼국 시대부터 1940년대까지 장흥을 중심으로 남도 일대에서 활용되던 우리 고유의 전통 발효차로, 푸른 이끼색을 띠고 엽전처럼 둥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예로부터 차와 인연이 깊은 절을 다사(茶寺)라고 했는데, 보림사는 따뜻한 햇살과 바람, 장흥댐의 한 지류인 유치천의 시작점이어서 차와 찻물의 고장으로서 천혜의 환경을 두루 갖추고 있었던 곳이다. 또 헌안왕이 차와 약을 체징 선사에게 보내왔다는 기록이 있어 ‘선다일미’라고 하는 오늘날 선차 문화가 구산선문의 종찰인 보림사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제7차 세계선차문화교류대회는 지난 10월 18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있은 개막식을 시작으로 21일까지 전국에서 세계 차인들의 선차 축제로 열렸다.

행사는 ‘한국 속의 세계 선차 문화’를 주제로 잡았다. 중국과 대만에서 개최된 지난 6번의 대회와 달리 한국에서는 처음 열렸다. 최석환 대회장은 “1000년 전 구산선문의 조사들로부터 이 땅에 선차 향의 꽃을 피운 이래 1000여 년 간 차와 선은 기나긴 세월을 함께 했다”며 “선차를 꽃피운 한국에서 세계 선차계의 원로와 불교계 차인과 대회를 열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예부터 선과 차는 둘이 아닌 하나로 여겨졌다”며 “신라 무상선사가 중국에 입당 구법해 선차지법을 쓰촨성에서 제창한 이래 송나라 원오 극근 선사가 다선일미를 들고 나오니 선과 차는 대중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선차는 불교의 맥과 흐름을 이어가는 중요한 역할”이라고 선차 교류 대회의 의미를 설명했다.

조유행 하동군수, 정종해 보성군수도 축사를 통해 차문화의 발전에 세계선차문화교류대회가 기여하고 있다고 말하고, 차산업과 문화의 발전에 매진할 것을 다짐했다.

장흥은 청태전의 전통이 남아 있는 곳이다. 청태전을 부처님께 올리고, 모인 모든 사람들이 차별 없는 찻자리를 나누었다.

차의 세계화와 생활화에 기여한 대회

이번 대회에는 중국 차계의 원로들인 커우단(寇丹)·첸윈진(陳云君)·위웨(余悅)·수만(舒曼) 등 차 10걸들과 스따이은(釋大恩)·인웬한(尹文漢)·위에자오(月照) 등 스님과 일본의 저명 차문화 학자인 구라사와 유키히로(倉澤行洋)·가게야마 스미오(影山純夫) 등이 대거 참가하여 각국 차 문화를 선보였다.

조계종 원로의원인 법흥 송광사 큰스님

대회는 ‘학술 대회’와 ‘선차 공연’으로 나눠서 진행됐다. 개막식에 이어 ‘세계선차 학술대회’에서는 엄선된 21편의 논문이 발표됐다. ‘선차 공연’은 차와 선의 만남으로 문화 교류 대회를 장엄했다. 10월 18일 오후 4시 창경궁에선 고궁의 가을과 어울리는 들차 문화 행사가, 다음날인 19일 오후 1시 서울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는 해동 불교 법음단의 바라춤을 시작으로 고선다회의 무상 선다도, 중국 남창 국제다예 표연단의 선차 표연, 일본 심다회의 가게츠 행다가 있었다. 이밖에 한국과 중국, 대만과 일본 등 4개국 15개 팀이 선차 공연을 펼쳤다.

문화교류대회 참가자들은 10월 20일부터 21일까지 경남 하동과 전남 보성을 순례하고, 21일 장흥 보림사에서 있은 이날 헌다 의식을 끝으로 세계선차문화교류대회는 폐막했다.

서울 조계사를 비롯, 경남 하동·전남 보성 등 선차의 생산지에서 나누어 축제를 벌임으로써 한국의 차 문화를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서게 한 행사였다. 또 한·중·일 대표들의 논문 45편이 쏟아져 풍성한 수확을 거두었고, 각종 차문화 행사로 차의 생활화와 세계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세계선차대회는 10여 년 전 한국의 《차의 세계》최석환 발행인이 뜻을 세워, 이 대회를 주관하는 한국국제선차문화연구회(2003년)가 구성되고, 2005년 드디어 제1회 대회를 중국 허베이(河北)성 백림(柏林)선사에서 개최함으로써 오늘에 이르렀다.

선차가 중요한 것은 태평양 시대를 맞아 한국과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가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마당에 세계의 정신문화를 이끌 테마가 필요한데 선(禪)과 차(茶)만큼 여기에 합당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선과 차가 만나서 풍요한 물질문화를 이끌 정신문화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차 문화의 정수가 장흥 가지산 보림사에서 다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화이부동(和而不同)·부동이화(不同而和), 동양 3국의 차 문화와 불교 정신이 물질적 삶과 정신적 삶의 조화와 평등한 삶의 조건을 만들어나가는 문화 현장에 참여한 기쁨을 주는 찻자리였다.

대동문화 73호 [2012 11.12월호]

백승현 기자  porum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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