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이름이 있듯이 땅에도 이름이 있다. 사람들은 사람의 갈래를 구분 짓기 위해 혈통에 따라 성을 정하고, 족보도 만들며, 세계(世系)에 따른 항렬도 있다. 더 넓게는 민족에 따라 성과 이름 짓는 방법이 다르기는 하지만 성만으로 출신지와 직업과 신분을 구별하기도 한다.

땅도 인간처럼 족보가 있다

현대과학은 성이나 이름과 관계없이 혈액형을 중심으로 사람을 구별하기도 하고 체질을 규정짓기도 한다. 심할 때는 문중으로 더 좁게 나누기도 하고, 출신지를 따지기도 한다. 출신지를 따지는 것은 출신지에 따라 사람은 알게 모르게 그 땅토리의 영향을 받고 성장지에서 이웃의 영향을 받아 인격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옛사람들은 문벌도 중요하지만 사람은 저마다 출신지와 성장 관계에 밀접하게 영향을 받는다는 뜻으로 ‘지령이 인걸을 낳는다’는 말을 했다.

땅이름은 대개 그 지역의 형상을 따라 짓는 것이 기본이지만, 역사와 인물에 따라 지어지기도 하고, 시대 변천에 따라 지역 형상과는 관계없는 새로운 역사 지명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어느 지역의 이름이 땅토리와 관계없이, 지어진 땅이름들은 그 연원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생물이 진화하듯 땅이름도 진화해왔음을 살필 수가 있다. 이 진화 과정은 사람의 족보 체계와 닮았음은 흥미 있는 현상이다.

효덕동의 지명 족보와 역사 유래

광주 남구에 속해 있는 효덕동은 1957년 12월 2일 새로 생겨난 지명이다. 오늘날 효덕동은 법정 동네 이름이 아니고 행정 편의상 새로 만든 땅이름으로 법정 동네인 진월동, 행암동, 덕남동, 노대동의 4개 동을 거느리고 있다.

효덕동은 효천면과 덕남동에서 한 글자씩 따서 만든 이름이다. 그러므로 효덕동의 조상은 효천면과 덕남동이지만 효천면이 아비 땅이름이라 할 수 있다. 효천면은 1914년에 새로 태어난 땅이름으로 효우동면과 도천면을 합해 만들어졌다.

본디 도천면은 오늘날 봉선동과 염주동 백운동 등이 된 곳에 있던 옹정, 이선, 조봉, 불노, 화산, 용정, 백운, 월전, 신기, 신촌, 염주, 월산 12동네를 거느렸던 조선시대 중기 이후 1914년까지 있던 행정 구역 이름이었다.

도천면은 조선 총독 정치가 시작되면서 죽임을 당하면서 봉선동, 백운동(벽도리), 주월동의 세 동을 남기고 효우동면 진월리에 월전리를 양자로 들여보낸 연고로 옛 이름 중 천(泉)이라는 한 글자를 살려 효우동면에 그 흔적을 남겼다. 이로 인해 효천면은 남광주역과 남평역 사이에 효천역이라는 이름만 남기고 1935년 효지면으로 바뀌었다.

효지면은 효천면과 지한면(동구 용연, 월남, 운림, 소태, 용산)을 합한 행정구역 지명이다. 지한면은 1957년 새로 지원동을 신설할 때 가까스로 옛 이름 중 한 글자를 되살려 옛 흔적을 남겼다. 그러므로 효우동면은 도천면과 합해 효천면이 되었다가 다시 지한면을 합해 효지면이 되었으며, 지원동을 독립시켜 분가하면서 효덕동이 되었다.

효덕동의 조상 땅이름 효우동면은 1760년대의 <여지승람>에 250호 1,072명이 살고 있는 면 이름으로 나온다. 이곳은 1907년 인구 조사 때 15개 동네에 430호 2,003명이 살고 있던 곳이다. 효덕동의 최근 인구는 15,065호 45,078명이다.

지명은 그곳 사람들의 희망을 담고 있다

효우동의 본디 이름은 노대 동네에 정착해 350여 년 간 살아온 김해 김씨 김재선의 후손들의 우애와 효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후에도 이곳 사람들은 부모에 효도하는 심성이 남달라 청주 한씨 쌍효비와 효우재 제실이 있고 김경두의 처 밀양 박씨 효열비, 윤씨 형제가 아버지를 위해 지은 만오정, 효부 고성 이씨 기행비, 효자 윤광훈과 그의 부인 열녀비 등이 있다.

이같은 효행의 전통은 한때 남구청의 행정 구호가 되기도 했으며 오늘날 이 일대가 광주광역시 노인복지타운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구 4만 명이 넘어선 효덕동은 또 한 번 분동하여 지명 족보의 다음 세대를 이어갈 것이다.

마찬가지로 광주의 진산인 무등산은 불교에 뿌리를 둔 산 이름이지만 민주화와 평등을 추구하는 광주 사람들의 이념이 되었듯이 땅이름은 단순한 지형의 표현이 아니라 역사성과 미래 지향의 이상을 품고 있음을 무심하게 지나쳐서는 안 된다.

1907년 새 민적법 시행 당시 광주 인구는 16,482호 78,669명이었다. 이 인구가 20배로 늘어나면서 옛 땅이름들은 새 이름에 묻혀가고 옛 유적마저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헐려가다 보면 광주는 사람도 땅도 족보도 없는 뜨내기들이 사는 시전이 될 수밖에 없다. 없던 전통도 만들어 지역 정체성을 만들어가야 할 판에 뿌리 없는 고을이 되어가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의 위상이 안타깝다.

대동문화 73호 [2012 11.12월호]

김정호 광주향토문화연구소장  webmaster@chkorea.news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