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책에서 본건데 여자들이 남자보다 코미디에 더 약하다네요. 암컷이 감수성감대가 더 풍부하다는 얘기지요. 그래서 큰애기들 신랑 조건의 1순위가 유머 감각이 있는 머슴아랍니다. 물론 0순위는 쩐(錢)이지요.

그런데 이곳 산중(山中) 군자(君子)들 유머 감각도 무시 못합니다. 속세 인간들 뺨쳐요. 그래서 보살들이 스님네들을 그리도 사모하는가 봐요.

수행이 좀 된 양반들은 늘 웃고 계세요. 틈만 나면 장난치고 우스개하고 완존 철없는 아이들이라니까요. 덜 된 풋중들이 심각하게 인상 쓰고 말 함부로 까고 그러지요.

이번에는 상(相) 여읜 산중 고수들의 골계담(滑稽談) 몇을 엮어봤어요.

스님 말고 그냥 스라고 허제 그래?

꼬장꼬장한 인상의 법정 스님도 의외로 우스갯소리를 즐기십디다. 이건 현재 불초가 묻어서 사는 송광사 유나 현묵 스님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한창 스님에 대한 호칭 문제로 실랑이가 일던 시절, 사부대중들이 모여서 열을 내어 갑론을박을 하는데 법정 스님이 가만히 듣고 있다가 막판에 혼잣말처럼 한 마디 했답니다.

“정 님자 붙이기가 찜찜하면 그냥 스라고 하제. 어이 스, 절에 가요? 허고 말이여.”

법정표 개그 또 하나. 이건 자신의 책에 스스로 털어놓은 말입니다.

“남자 불자 한 분이 법회가 끝나자마자 나에게 오더니, 가지고 온 책 한 권을 펼치면서 ‘좋은 말씀’ 을 한마디 거기에 적어 달라고 했다. 나는 방금 좋은 말이 될 것 같아 쏟아놓았는데 그에게는 별로 좋은 말이 못된 것 같았다.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화두 삼아 지낼 테니 부득부득 써 달라고 했다. ‘나는 누구인가?’ 라고 써주었다. 그는 이 말이 성에 차지 않았는지 다시 좋은 말씀을 써달라고 했다. 말 귀를 못 알아듣는 이런 사람에게 더 할 말이 어디 있겠는가. 하는 수없이 그의 요구대로 ‘좋은 말씀’이라고 종이에 가득 찰만큼 크게 써 주었다.

법정 스님을 웃긴 MB 개그의 결정판

법정 스님과 관련된 정말 재밌는 시사 개그 하나. 이거 실화입니다.

법정 스님이 입적했을 때, 청와대 홍보수석실이 대국민 발표문을 냈어요. “대통령은 <무소유>는 여러 번 읽었고 <조화로운 삶>도 추천한 바 있다.” 운운했어요.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청소년들에게 읽으라고 추천한 <조화로운 삶>은 책 이름이 아니라 법정 스님의 책을 낸 출판사 이름이라네요. MB 개그의 졀정판이라 하겠네요.

암도 있는데! 들리세요? 안 들리세요?

불초가 어느 날 티비를 보는데 낯익은 스님이 법문을 하고 있대요. 조계종 원로 의원인 암도 스님이더군요. 한 초식 하신 분이라 귀를 기울였지요.

암자 방에 앉아 있는데 젊은 부부가 사립문을 열고 들어오는 기색이더니 사위가 조용하므로 보살님이 이렇게 속삭입디다. “오메, 암도 없는 갑소, 그냥 갑시다.” 그래서 내가 점잖게 말했지요. “암도 있소.”

그랬더니 보살님이 “암도 없는 것 같으디 먼 소리가 들리네. 당신도 들었소?” 거사님 왈 “아니, 나는 못들었는디?”

보살님이 “이상허네 분명히 먼 소리가 들렸는디. 분명히 암도 없는디이…”

내가 답답해서 더 점잖게 알려줬어요. “암도 있단 말이요~.”

그랬더니 “오메~!”소리와 함께 부산나게 달려가는 발자국 소리가 들립디다. 혼비백산해서 내뺀 것이지요. 요즘 젊은 양반들 참 실없습디다.

지난 10월 16일이 효봉 스님 46주 기일이었어요. 워낙 도가 높은 분이라 지금도 많은 이들이 모여 다례를 지내지요. 효봉 스님은 파란만장한 일생답게 ‘판사 중’, ‘절구통 수좌’, ‘무라 노장’ 등 여러 가지 별명을 갖고 있는데 ‘니나 잘해 법사’라고도 불렸답니다. 그 사연이에요.

효봉 스님이 통영 도솔암에 머물고 계실 때, 어느 제자가 와서 아뢰었답니다.

“모모 스님은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여색까지 한 대요.” “수행자가 술 마시면 안 된다는 말이지?” “그렇습지요.” “담배를 피워도 안 된다는 말이지?” “그렇습지요.” “여색을 가까이 해서도 안 된다는 말이지?” “그렇습지요.” “그걸 잘 알고 있으면…” “…예 스님.” “니나 잘 해, 인석아!”

파전을 맛나게 부쳐 먹고 말겠네!

근세 선불교를 활짝 연 경허 스님의 탄신 100주기를 맞아 다채로운 기념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경허스님의 무애 법문 한 자리.

청양 장곡사에 경허 스님이 주석할 때 신도들이 곡차 공양을 올렸어요. 상좌 만공과 더불어 거나해졌는데 만공이 좀 했다는 상을 냈어요.

“스님, 저는 곡차가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습니다. 파전도 없으면 굳이 먹으려고 하지 않고, 또 생기면 굳이 안 먹으려고도 하지 않지요.”

경허 스님이 조용히 대꾸했어요.

“자네가 벌써 무애 경계에 이르렀구만. 나는 아직 거기에 이르지 못했네. 곡차가 먹고 싶으면 좋은 밀씨를 구해 심어, 김매고 가꾸어 베어 털어 누룩을 만들어 술을 빚어 걸러 이렇게 먹을 테야. 또 파전이 먹고 싶으면 파씨를 구해 밭을 일구어 파를 심어 거름을 주어 알뜰히 잘 가꾸어 파전을 부쳐 맛나게 먹고 말겠네.”

이 말에 만공 스님은 등에서 진땀을 흘리며 엎드려 큰 절을 올렸다네요.

개그 법문에 깃든 촌철살인의 가르침

산중 군자들의 개그 법문에는 촌철살인의 가르침이 숨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넷 셔플로 건진 개그 하나 공양하고 그만 인사를 드릴게요.

선사가 제자들을 점검하고 있었어요. 화두는 ‘병 안에 든 새를 병을 깨지 않고 온전히 꺼내기.’ 제자 가운데 한 명이 말했어요. “새를 죽이든지 병을 깨든지 둘 가운데 하나밖에 없습니다.” 큰스님 왈, “미친 놈! 누가 그런 뻔한 소리를 듣제.” 또 한 놈, “새는 삶과 죽음을 뛰어 넘어서 피안의 세계로 날아갔습니다.” “지랄허고 자빠졌네.” “병도 새도 삶도 죽음도 허무한 찰나의 장난.” “니가 장난.” “위상 공간에서 유클리드 기하학이 어쩌고저쩌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또 한 제자, “짝!”(한 손으로 내는 손뼉 소리) 큰스님, “앵무새 같은 놈” 이윽고 제자들이 고개 조아리고 “도저히 타파할 수 없나이다.” 이르자 큰스님, “병 주둥이를 가위로 자르면 되느리라. 패트병이었지롱.” 제자들, “??????????”……… 모두, 어리둥절 ㅡ.ㅡ???

큰스님 왈, “페트(PET)병이었느니라” 관세음보살……….

대동문화 73호 [2012 11.12월호]

한송주 <월간 송광사> 편집장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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