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효동 왕버들 군 전경

김덕령이 태어난 생가가 있는 마을 앞에는 나무의 나이가 400년이 넘는 왕버들 세 그루가 우뚝 서 있다. 천연 기념물 제539호 이기도 한, 이 나무는 가슴 높이 직경이 6m가 넘고, 나무의 가지와 잎이 달려 있는 부분이 최대 27m 나 되는 노거수의 모습은 바라보는 이 로 하여금 위압감을 느끼게 한다. 왕버들이 이처럼 거목이 될 수 있는 이유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자.

김성수가 지은 “한국의 조경수목” 에 따르면 “왕버들은 마을 주변이나 냇가, 습지 등에서 무리를 이루어 자라고, 잎과 가지가 치밀 해서 녹음 효과가 크며, 나무의 나이가 많아 질수록 줄기가 독특한 모습으로 비대하게 되고, 둥글게 만들어 지는 수관이 대단히 보기 좋다.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높아서 때로는 물속에서 자라기도 하며, 오염된 물이 고여 있는 하천가 에서도 잘 자란다” 고 나와 있다.

토양의 아주 작고, 거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알갱이 사이에는 틈이 있고, 그곳에는 공기나 물로 채워져 있다. 공기 로만 채워져 있으면 토양이 너무 건조하여 식물이 이용 할 수분이 부족하고, 물 로만 채워져 있으면 공기가 부족하여 뿌리 호흡에 지장을 초래 해 썩고 만다. 적절한 수분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왕버들은 뿌리를 내린 후 에는, 물속에 허리가 잠기더라도 썩지 않을 뿐 아니라 성장에도 아무 지장이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놀라운 특성 뿐 아니라, 오염된 곳도 아랑곳 하지 않고, 각종 영양분이 축척된 습지에서 잘 자라며, 수관을 마치 우산을 펴 놓은 모습으로 둥그렇게 만들어 햇빛을 최대한 많이, 그리고 골고루 받을 수 있어 생장이 빠를 수 밖에 없는 장점을 가졌다.

맹아력도 탁월하여 가지가 부러지더라도 바로 옆에서 새 가지를 만들며, 천근성 이어서 바람에 취약한 약점을 키를 키우는 대신 줄기를 비대하게 만들어 어떤 강풍에도 견디는 구조를 갖고 있다. 마을의 지형적인 결함을 보완 해 주는 비보림으로 심어진 왕버들이 괄목한 성장을 거듭 해 큰 나무가 되자, 언제부터 인가 김덕령 나무로 불리어 지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김덕령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담양에서 의병을 일으켜 그 세력을 떨쳤고, 의병장이 되어 곽재우 와 함께 영남 서부 지역의 방어 임무를 맡았으며, 거제도의 왜적을 수륙 양면으로 공격할 때 선봉장으로 활약 하였다. 고성에 상륙 하려는 왜적을 기습 격퇴하는 공을 세웠다. 이와 같이 적지 않은 공이 있음에도, 명성에 비해 전공이 작다고 여기는 등, 그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부분이 존재함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몽학 난에 연루되어 그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데 대해서는 문헌이나 자료를 통하여 누구나 인정하는 바다. 돌이켜 보면, 양반층이 모든 특권을 독점하고 가혹한 세금 수탈이 있었던 조선 후기 사회, 빼앗긴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야 했던 일제 36년, 타의에 의해 두 동강난 조국,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눈 6.25, 그리고 독재 정권의 기나긴 터널을 지나오는 동안, 우리는 특권과 반칙이 난무하는 야만적인 세월을 살아왔다.

그 안에서 생겨난 억울함은 400년 동안 생겼다 사라진 버들잎 숫자 보다 적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김덕령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동정하거나 아프게 여기는 사람이 생겨나고, 그 숫자가 무리를 이루고, 기하급수로 늘어나자 그는 전설이 되었다. “김덕령의 힘은 대단하여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거나, 거친 말을 길 들이고, 백근의 철퇴를 양 허리에 차고 다녔으며, 왜장은 김덕령이 그려진 그림만 보고도 두려워서 철수 했다 한다”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불쌍히 여기듯이 덕령은 억울함을 당한 사람들의 상징이 되고, 양분을 공급 받아 왕버들처럼 자란 것이다.

김덕령의 목관. 충장사 유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선조 실록 1596.8.19.에는 “김덕령을 3차례 형장으로 신문 하였다. 형장 30대를 쳤으나, 이전의 진술과 차이가 없었다. 추국청에서 건의 하였다. 김덕령을 3차례나 형장으로 신문 하였으나, 숨이 겨우 붙어서 이름도 대지 못 합니다. 만약 곧바로 죽어 버리게 되면 죄상을 알아 낼 수 없을 것이므로 내일 고문 할 것을 청합니다. 임금이 대답하였다. 건의 한 대로 하라” 엄청난 고문의 고통 속에서도 거짓과 불의에 죽기까지 굴복하지 않았던 덕령의 외로운 싸움에 가슴이 먹먹 해 온다.

우리는 역사의 준엄한 평가를 잊지 않아야 한다. 김덕령에게 억울한 죽음을 안긴 왕과 사대부에 대한 평가는 이 땅에 사람이 존재 하는 한, 영원히 계속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귀백 기자  gasun61.@ne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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