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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참 좋다” 무등산 '노무현길'을 걸으며···[노무현 서거 10주기] 무등산을 짓밟은 전두환, 무등산이 허락한 노무현
임영열 기자 | 승인 2019.05.22 18:12
무등산 입구 문빈정사 앞에 세워진 무등산 노무현 길 표지석. 글씨는 전남 진도출신 캘리그래피 석산 진성영 작가의 서체다

왕이 되고 싶은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전국의 명산대천을 두루 돌아다니며 산신들에게 왕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지리산이나 금산에는 이에 관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그는 전라도 무등산에서도 제사를 지내며 왕업을 이루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으나 무등은 이를 거절했다.

무등산 증심사 산신각. 태조 이성계와 전두환을 거부한 무등은 노무현을 허락하였다

고려말 명신, 명장들을 다 죽이고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는 왕이 된 후에도 나라에 가뭄이 들자 무등산에서 기우제를 지내며 비를 내리게 해달라고 기도 했다. 무등은 쿠데타로 왕위를 찬탈한 정통성이 없는 왕에게 비를 주지 않았다. 이에 분노한 이성계는 무등산신을 지리산으로 귀양 보내고 왕명을 거절한 이 산을 무정한 산이라는 의미로 ‘무정산(無情山)’이라 부르게 했다.

서석산, 무돌산, 무당산, 무진악, 무덤산 등 별칭이 많은 무등산이 ‘불복(不服)’의 의미가 덧씌워지는 또 다른 이름, ‘무정산(無情山)’이라는 호칭을 얻게 된 사연이다.

무등산 약사사에 서있는 서석산산신비. ‘서석산산신지위’라고 새겨져 있는 이비석이 정확히 언제 새워졌는지는 알 수가 없다

무등이 허락한 대통령, 노무현

오랜 세월이 흘렀다. 국가의 체계가 왕이 주인인 ‘왕조국가’에서 백성이 주인이 되는 ‘민국(民國)’으로 바뀌었다. 여전히 왕 노릇을 하고 싶은 또 한 남자가 있었다. 1980년 5월, 그 남자는 민주화를 요구하며 불의한 국가 폭력에 거세게 저항하는 무등을 총칼로 짓밟고 그해 9월 기어이 왕이 되었다. ‘무등의 피’를 먹고 탄생한 제5 공화국 전두환 정권이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이라 했다. 서슬 퍼런 전두환의 임기가 끝난 1988년 4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소 야대의 정국을 이루어낸 평민당, 민주당, 공화당 등 야 3당이 연합하여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진상 조사 특별 위원회 구성 결의안’과 함께 ‘5공 청문회’가 열렸다.

이때 청문위원 중에 부산지역의 열혈 인권 변호사에서 국회의원으로 변신한 통일민주당 소속 초선의원 노무현이 있었다. 노무현 의원은 국회에 출석하여 증언하고 회의장을 빠져나가는 전두환을 향해 국회의원 명패를 던지며, 여당인 민정당 의원들을 향해 “전두환이 아직도 너희들 상전이야?”라고 소리 치며 항의했다.

청문회 때마다 날카로운 송곳 질문으로 증인들을 심문하던 ‘청문회 스타’ 젊은 노무현 의원은 망자의 원혼을 달래주는 '곡비(哭婢)'처럼 광주시민들의 한을 풀어주었다.

2002년 3월 16일 광주 염주체육관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연설하는 노무현 후보. 이날 경선에서 광주시민들은 ‘경상도 출신’이라는 지역감정과 ‘고졸 출신’이라는 편견을 떨쳐 버리며 노무현을 1위로 등극시켰다 ⓒ오마이 TV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광주 호남사람들의 노무현 사랑은 남달랐다. 2002년 민주당 대선 경선 때 광주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노무현을 밀어줬다. 그해 3월 16일 광주 염주체육관 경선에서 당시 쟁쟁하던 이인제와 한화갑을 누르고 ‘경상도 출신’이라는 지역감정과 ‘고졸 출신’이라는 편견을 떨쳐 버리며 노무현을 1위로 등극시켰다. 위대한 역전 드라마를 연출했다. 그렇게 광주는 노무현 바람, 이른바 ‘노풍(盧風)’의 진원지가 됐다.

2002년 대선에서 호남의 압도적 지지로 민주당 후보로 나선 노무현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물리치고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이 되었다. 이성계와 전두환을 거부한 무등은 노무현을 허락했다.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광주를 잊지 않았다. 재임 기간 중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했다. 재임 마지막 해인 2007년 제27주년 5·18 기념식 다음날인 5월 19일에 시민들과 함께 무등산에 올랐다.

2007년 5월 19일 무등산 등반 도중 활짝 웃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수행했던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도 활짝 웃고 있다.

무등산에는 ‘노무현길’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무등산행은 대통령이 되기 전인 1999년 ‘광주시민과의 약속’이었다. 1999년 4월,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였던 노무현 의원은 광주를 찾았다. ‘무등산 보호단체협의회’에서 주관한 ‘21세기 환경운동과 정치의 역할’이라는 주제 강연을 위해서였다. 강연이 끝나고 뒤풀이에서 노무현은 “광주시민 여러분들이 저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시면 무등산에 오르겠다”라고 약속했다.

2007년 5월 19일 시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광주의 어머니산, 무등에 오른 노무현 대통령은 무등산의 대표적 탐방로이며 광주의 문화유산이 살아 숨 쉬는 8번 등산로를 시민들과 함께 산행하였다. 이 길은 훗날 시민들의 제안에 의하여 ‘무등산 노무현길’로 지정되었다.

 

당산나무 쉼터는 노무현 대통령이 시민들과 만나 담소를 나누며 쉰 곳이다. 당산나무는 수령 450년이 넘었다
당산나무 쉼터. 쉼터에서 붕어빵을 파는 할머니와 악수하는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재단

무등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노무현 길은 무등산의 대표적 사찰인 증심사 입구에서 시작하여 당산나무‣ 중머리재 ‣ 용추 삼거리‣ 장불재로 이어지는 3.5 km의 구간이다.

무등산 노무현 길을 따라간다. '영원한 오월의 소년' 금아 피천득 시인(1910~2007)의 표현처럼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 같은 5월의 신록이 연두에서 초록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울긋불긋 화려한 색깔로 한바탕 꽃대궐을 이루었던 봄꽃들이 서서히 물러가고 찔레꽃, 때죽나무 꽃 등 향기 가득한 하얀 여름꽃들이 피어나고 있다.

광주 문화유산의 보고, 증심사를 지나 약 30 여분을 오르자 450년 수령의 당산나무 쉼터가 있는 송풍정에 도착했다. 당산나무 쉼터는 노무현 대통령이 시민들과 만나 담소를 나누며 쉰 곳이다. 지금은 무등산 정화 사업으로 없어졌지만 당시에는 붕어빵을 구워 파는 노점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붕어빵 할머니와 따뜻하게 악수하며 인사를 나눴다. 평소 소탈했던 그의 모습이 남아 있다.

무등산의 중심 허브 역할을 하는 중머리재. 노무현 대통령은 이곳 약수터에서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달랬다

한 모금 물로 목을 축이고 길손은 다시 무등산의 중심 허브 중머리재로 향한다. 잘 다듬어진 탱자나무 길과 단풍나무 숲길을 지나자 노무현 대통령이 앉아 쉬었다는 벤치가 나온다. 잠시 앉아 쉬면서 그가 추구했던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해 생각해 본다.

가파른 돌길이 이어진다. 숨이 가쁘다. 무거운 짐을 졌던 그도 이렇게 숨이 가빴을까. 중머리재에 다다른다. 스님의 머리처럼 밋밋하여 중머리재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산행객들이 쉬어 가며 목을 축이는 약수터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약수 한 모금으로 목을 축였으나, 임기말 기득권 보수 세력들의 저항에 목이 탓을 것이다.

노무현의 타는 목마름을 상기하며 장불재로 향한다. 약 30 여 분을 걸었을까. 너덜길을 건너고 신우대 밭 길을 휘돌아 걷다 보니 ‘깊은 산속 옹달샘’이 산객을 반긴다. 광주천의 발원지 ‘샘골’이다.

광주천의 발원지 ‘샘골’. 샘가 돌은 무너지고 관리가 허술하다는 느낌이 든다

임진왜란 때 호남의병장이었던 제봉 고경명(1533~1592)의 무등산 답사기 ‘유서석록(遊瑞石錄)’에 의하면 고경명 장군과 광주 목사 임훈(1500~1584) 일행은 1574년 초여름에 무등산에 오른다. 여기 샘골에서 잠시 쉬는 동안 미숫가루를 타 마시며, “금장옥례(金醬玉醴)’에 비할쏘냐”라며 물맛에 감탄한다. 유서 깊은 샘이다. 광주의 시원(始原)이다. 샘가 돌은 무너지고 웬지 관리가 허술하다는 느낌이 든다.

무등산 장불재. 장불재는 무등산 9부 능선에 있는 넓은 개활지다. 옛날 광주, 담양, 화순 사람들이 만나 교류와 소통의 장을 만들었던 곳이다
무등산 장불재에 올라 산상 연설을 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뒤로는 입석대와 서석대가 보인다 ⓒ노무현 재단

금장옥례 한 모금으로 방전된 원기를 충전시키고 오늘의 목적지, 장불재에 도착한다. 광주 시가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장불재(919m)는 넓은 개활지로 무등산 9부 능선이다. 사방이 탁 트인 넓은 공간이다.

옛날 광주, 담양, 화순 사람들이 만나 교류와 소통의 장을 만들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이날 장불재에서 많은 시민들을 만나 교류하고 소통했다. 무등산 장불재의 ‘산상 연설’의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는 곳이다.

무등산 장불재에 올라 산상 연설을 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재단
2007년 5월 19일, 광주 무등산 장불재에서 “아! 참 좋다” 글귀를 쓰고 활짝 웃는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재단

"좀 더 멀리 봐주십시오. 역사란 것은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멀리 보면 보입니다. 눈앞의 이익을 좇는 사람과 역사의 대의를 좇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의만 따르면 어리석어 보이고 눈앞의 이익을 따르면 영리해 보이지만 그러나, 멀리 보면 대의가 이익이고 가까이 보면 이익이 이익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장불재 산상 연설문 '시민민주주의의 전망' 중에서-

올해 5월은 노무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10주년이 되는 5월이다. 그가 꿈꿨던 ‘사람 사는 세상’은 아직 진행 중이다. 산이 돼버린 바보 노무현, 그가 그리운 5월이다.

임영열 기자  youngim147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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