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현 대동문화재단 사무처장

고모는 특이하게 누군가를 병문안하고 돌아오면 환자의 병을 함께 앓으신다. “아야! 느그 큰엄마가 연골 수술을 했는디 거그 문병 갔다온께 어째 내 무릎이 시큰시큰허믄서 아퍼야! 요거이 뭔 일이다냐?” 이런 식이다. 약이 없는 헛병이다. 하지만 제대로 앓으신다. 그렇게 환자와 함께 앓다가 환자의 병환이 고만고만해지면 고모의 헛병도 그친다. 그래서 조카는 어진간한 친소 관계가 아니라면 고모 친지나 지인분들의 문병을 대신 다녀온다. 남의 병을 대신 앓는 그런 사람도 세상에는 더러 있다.

남의 병을 대신 앓았던 부처가 유마거사다. “어리석음 때문에 애욕이 있게 되면 병이 생깁니다. 뭇 생명이 아프므로 저도 병을 앓고 있습니다. 만약 뭇 생명의 병이 사라지면 제 병도 사라질 것입니다.” 이렇게 설법한 재가불자다.

경주 석굴암 본존불 뒤편 천정 맨 아래 부분에 10개의 감실이 있고 여기에 모셔진 한 분이 유마거사다. 물론 관람객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다. 불상은 수건을 말아 머리 위에 얹은 듯 두건을 쓰고 상체를 앞으로 쑥 내민 자세를 취하고 있다. 딱 병든 사람의 모습이다. 석굴암은 불교의 종교성을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한국의 세계문화유산이고 그 조형의 가치는 바로 뭇 생명이 아플 때 나도 같이 병을 앓는 공감과 자비의 정신적 가치에 다름 아니다.

김훈이라는 소설가가 최근 어떤 인문학 강연에 나가 “(우리 시대는 지금) 전통적 가치를 잃어버린 결과 어수선하고 천박한 세상이 되었다. 악다구니, 쌍소리, 욕지거리, 거짓말로 날이 지고 샌다. 사람들이 생각 없이 혓바닥을 너무 빨리 놀리며 혀가 마음껏 날뛰게 내버려 둔다.”고 말했는데 전적으로 공감한다.

유람선 사고가 난 다뉴브강 다리 위에 헝가리 시민 수백 명이 모여 ‘아리랑’을 부르며 한국인 희생자를 추모하던 그 시간에 한국 땅 어떤 당의 대변인은 “골든타임이 기껏해야 3분”이라고 말했다. 그 당의 다른 국회의원은 법정기념일로 제정된 5·18민주화 운동에 대해 “종북 좌파들이 판을 치며 유공자라는 이상한 괴물 집단을 만들어내 우리의 세금을 축내고 있다.”며 유공자와 유가족들을 괴물로 만들어 버렸다. 그 당의 또 다른 어떤 의원은 세월호 유족들에게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쳐 먹고, 찜쪄 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먹고 진짜 징하게 해쳐먹는다.”고 막말을 쏟아냈다.

일베라는 집단이 있어 자기들 커뮤니티에 2013년 5월 13일 ‘아이고, 우리 아들 택배 왔다.’는 사진글을 게재했다. 5·18 때 한 여인이 관 앞에서 오열하는 모습의 사진에 화물 운송장 이미지를 합친 사진이었다. 밑에는 “착불이요!”라는 말도 달려 있었다. 5·18 민주열사와 그 희생자들을 관에서 꺼내 부관참시하는 반인륜의 막말이었다. 이런 집단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절망스럽고 수치스러울 뿐이다.

절망의 시대에 공감이라는 단어를 다시 떠올린다. 공감이란 긍정하고 배려하는 감정으로 공익적인 가치를 지닌 것이다. 긍정하고 감사하고 배려하는 행동과 언어를 쓰면 그런 사람들의 뇌는 긍정적으로 구조화된다. 상대방은 그 말과 행동을 보고 보상중추가 활성화된다.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이라는 물질이 분비되고 이것이 반복되면 사람들이 삶에서 더 큰 만족감과 활기,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공감 능력 훈련이 되면 사람들은 사람에 비해 더욱 관대하고 남에게 더욱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고, 옳고 좋고 재미있는 일을 하려고 노력한다. 자기 스스로를 가치 있게 여기고 다른 사람을 더욱더 돕게 된다. 그런 공감의 사람들이 많아지는 사회가 바로 문화적 도시, 문화적 국가다.

공감 근육과 허파를 강화시키는 것이 문화와 예술의 힘이다. 인문학의 힘이다. 인간이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지 않고 서로 대립하지도 않고 인간과 인간이 서로 연결되어 ‘공감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는 힘이 바로 문화와 예술에서 나온다. 그 힘은 사회적 공감으로 이어져 그 사회를 살만한 세상으로 만든다.

광주가 전남이 추구하는 문화 도시, 예술 도시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문화 도시 시민들은 남이 눈물을 흘릴 때 같이 울고, 남이 기쁘면 같이 미소 짓는다. 남에게 공감하고 그 힘으로 시민들이 정의로운 덕성과 가치를 가꿔나가고 그 문화를 도시의 자산으로 만들고 계승해나가는 것.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문화 도시다.

백승현 기자  porum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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