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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수군의 선구적 역활을한 정지장군서남해안 왜구섬멸에 혁혁한 공을 새운 정지장군
김낙현 기자 | 승인 2019.09.02 18:23
정지 장군의 영정

경열공 정지 장군은 최영,이성계와 더불어 고려말 3대 명장 가운데 한 사람이고 이순신 장군과 같이 우리나라 수군 역사상 위대한 명장이기도 하다.

광주 동명동에서 말년을 보냈고 조선시대에 오랜세월 그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한 경열사가 광주 동명동에 있었기에 그와의 인연이 깊은 동네이다.정지의 본관은 하동이고 1347년 나주 문평에서 태어나셨고 처음이름은 준제였다.

준제가 6살 때 할아버지가 숨을 거두기전 유언을 함으로써 정지로 개명하엿다.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했으며17세때 나주남문밖을 지나가는데 황소가 갑가기 날뛰더니 주인을 들이 박으려하자 정지는 재빨리 황소의 두 뿔을 잡고 힘차게 메다꽂았다.

때마침 이 광경을 보고있는 나주목사 박춘이 정지장군을 사위삼았다.

나주 목사 사위가된 정지는 고려공민왕때 사마시에 장원급제하고 다음해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무공이 뛰어나 무장이 되었다.왜적은 끊임없이 남해안 마을을 약탈하고 백성들을 살상했다.

그러나 조정은 수군병선이 왜구에 격퇴당해 육상에서 방어에만 급급한채 수전(水戰)에는 엄두고 못내고 있었다.이때 정지 장군은 공민왕에게 수군양성 계책을 올려 전라도 안무사로 임명돼 수군 창설과 조련에 힘쓰도록 했다.

그후 공민왕이 최만생에게 시해당하자 정지장군은 전라도 치안에 온힘을 쏟앗다.이후 순천도병마사가 되어 순천,낙안등지에서 칩입한 왜적과 싸워 큰 전과를 올리고 영광,광주,화순등지에 나타난 왜적을 쫓아 곡성에서 모두 전멸시킨다.그러나 정지장군도 고려의 멸망과 조선건국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이성계를 따라 위하도 회군에 종군하였으나 이성계가 창왕을 몰아내고 공양왕을 추대하면서 김저의옥사에 연루되어 귀양을 가게된다..정지 장군은 다시 윤이,이조의 옥사에 휘말려 청주로 귀양갔다가 홍수가 나서 풀려났다.

평생을 나라를 위해 싸웠단 장군은 말년에 정쟁에 싫증을 느끼고 광주로 내려와 후학을 양성하다가 4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청옥산에 있는 정지장군 예장석 묘

 

정지장군은 삶은 진정 애국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보여줫다.왜적 극성기에 태어나 국내정치의 혼란 중에도 의연하게 출사하여 역사적 소임을 다한 우국지사 였다.백성을 보호하는 전쟁 전략가로서 책무를 더 중요하게 느낀 양심 있는 선비였다.

훗날 대한민국 해군은 수군명장 정지를 기리고자 잠수함 부대인 “정지함”부대를 창설했고,광주에는 경열공 정지를 기리는 경열로가 있다.최영,이성계와 더불어 고려말3대 명장 정지장군은 동명동의 옛 경열사터와 더불어 광주의 대표적인 역사인물로 기억될 것이다.

 

김낙현 기자  nak109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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