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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년 전의 사랑이야기장화왕비와 순애보적 사랑을 한 흥덕왕
김낙현 기자 | 승인 2019.10.01 16:00
 
 
신라시대 유일한 합장릉이다

경주에는 왕릉이 몇 기나 있을까 ?총38기이다. 이 가운데 무덤주인이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2기 이다 .능 주위에 비석이 발견된 무열왕릉과 흥덕왕릉이다.1200년 전 사랑이야기를 전해줄 경주 흥덕왕릉을 찾아가 보자. 경주지도를 보면 대부분 왕릉은 주로 경주시내 주변이나 근처에 분포되어있다. 그러나 흥덕왕릉은 이들과 동떨어진 경주 북쪽 안강읍에 자리 잡고 있다 .경주의 관광지에 비해 덜 알려져 찾은 사람이 많지 않아서 언제 가더라도 한가롭고 고요한 느낌을 즐길 수 있다. 왕릉 주변 소나무 숲은 제멋대로 휘어진 나무들이 춤을 추고 운치가 있어 사진작가들의 촬영장소로 제격이다 .흥덕왕릉은 원형이 잘 보존된 신라의 왕릉으로 꼽힌다. 봉토를 쌓고 그 아래 흙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판석을 세운 모습에선 정갈함과 위엄을 느낄 수 있다.그리고 판석과 판석 사이에는 12지상을 새겨 놓았다.무덤 주위에는 4기의 돌사자와 한 쌍의 문인석, 무인석을 배치했다. 무인석은 서역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당나라와 활발하게 교역하면서 서역인 을 자주 볼 수 있게 된 영향이라 생각된다.

흥덕왕릉 주변 소나무가 휘어져 흡사 춤을 추고 있는듯 하다

흥덕왕릉이 요즘 자주 회자 되는 이유는 금술 좋은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흥덕왕과 장화부인 이 함께 묻힌 합장릉 이다. 경주에서 공식적으로 확인된

합장릉은 이곳이 유일하다. 흥덕왕이 왕위에 오른 후 2개월 뒤 장화부인이 세상을 떠난다. 이후 흥덕왕은 10여 년의 재위 기간에 늘 부인을 그리워 했다. 여러 신하들이 다시 왕비를 맞을 것을 청했지만 흥덕왕은 홀로된 새도 짝을 잃은 슬픔이 있는데 하물며 좋은 베필을 잃고서 어찌 차마 무정하게 곧 채취하겠느냐며 완강히 거부 했고 곁에 궁녀도 두지 않고 지냈다고 한다. 흥덕왕과 원앙새에 얽힌 일화를 ”삼국유사“는 이렇게 전한다. 부인이 죽자 흥덕왕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원앙새 한 쌍을 길렀다. 그런데 갑자기 암컷 원앙새가 죽자 수컷 원앙새가 슬픔에 잠긴다. 이를 불쌍히 여긴 흥덕왕은 외롭지 말라고 새장에 거울을 넣어 줬는데 거울에 비친 모습을 암컷으로 알고 부리로 쪼다가 결국 수컷 원앙새도 죽게 된다.

흥덕왕은 죽은 후 마침내 부인과 함께 묻혔다. 소나무 숲에서 부인과 1200년의 시간을 보내고 함께하는 모습이 현대인에 전하는 메시지는 무얼까?

김낙현 기자  nak109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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