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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지 않고 그리고, 말없이 말하고발행인 칼럼
성슬기 기자 | 승인 2019.10.07 18:09

어릴 적 배운 천자문은 천지현황(天地玄黃),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고 시작했다. 하늘은 푸르고 검은 것은 까마귀로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크게 의문을 갖지는 않은 채 무조건 외워댔던 기억이 있다.

성장하면서 푸른 하늘도 다 같은 하늘색이 아니고, 시커먼 까마귀도 꼭 검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까마귀 깃털도 해가 비치면 자줏빛을 띠기도 하고, 홀연 유금(乳金)빛과 비췻빛이 되기도 한다. 본질을 알기도 전에 학습을 통해 알게 된 정보에 우리의 눈이 맞춰가는 과정인가 싶다.

과학이라는 학문을 적용하면 이런저런 말 필요 없이 단칼에 규정되는 현상이지만 말이다.

육체의 일부인 눈과 귀에 의존하여 눈앞에 보인 현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범부들과 대별되는 영적감각을 지닌 고수(高手)들의 세계도 존재한다.

‘踏花歸去馬蹄香(답화귀거마제향), 꽃 밟으며 돌아가니 말발굽에 향내가 나네’ 옛 시험에 제시된 화제(畵題)다. 모두가 끙끙대던 그때, 한 무명 화가의 그림은 절묘하다. 달리는 말의 꽁무니를 따라 날아가는 나비 떼를 그려낸 것이다. 입이 떡 벌어진다.

한말 고종이 남종화의 대가 소치 허련에게 장난 삼아 춘화도를 그려 바칠 것을 명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을 것이다. 소치다운 발상의 간결한 작품은 고종의 장난기를 무색하게 하고도 남을 만했다. 깊은 산속 외딴 집 댓돌 위에 놓여 진 두 켤레의 신발. 성인이라면 할 수 있는 상상의 범주에 있는, 요즘말로 고급진 한 컷이다.

전술용어에 성동격서(聲東擊西)가 있다.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에서 적을 친다는 뜻인데,

예술작품의 세계에 이 전술을 차용한 격이랄까.

말 하지 않고 말을 하고, 그리지 않고 그리는 그림인 셈. 직접적인 표현 대신 대상 속에 응축시켜 전달하는 방식, 슬그머니 우회하여 표현하는 이런 방식은 극적 효과를 낸다.

동양의 예술 정신은 긴장을 머금은 함축(含蓄)을 귀히 여긴다. 다변(多辯)과 요설(饒舌) 또한 경계한다. 대상이 자연이든 사람이든 마음이 통하는 생물체 사이에서의 교감에 다른 건 필요 없다. 더군다나 무수한 언어란 군더더기일 뿐.

이백의 시 ‘笑而不答心自閑(소이부답심자한), 대답하지 않고 그냥 웃으니 마음이 한가하네.’ 말 없이 하는 말, 웃음으로 답은 충분하다.

‘書不盡言 言不眞意(서불진언 언불진의)’ 글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하지 못한다.’

[대동문화 111호, 발행인 칼럼]

성슬기 기자  tmf59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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