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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 주변의 원주 폐사지를 찾아서원주 거돈사지, 법천사지, 흥법사지
김태석 기자 | 승인 2019.10.08 15:53

강원도 태백의 검룡소에서 발원한 남한강은 충주와 원주를 지나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하여 한강으로 흘러드는 강이다. 예전 육지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에 사람과 물자의 교류는 수로와 해로를 통해서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남한강을 끼고 있는 원주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주변에 규모가 큰 사찰이 들어서기에 적당한 곳이다. 원주 거돈사지, 법천사지, 흥법사지가 모두 남한강 주변에 몰려있는 이유가 아닌가 추정해본다. 모두 통일신라 때 창건되어 임진왜란 때 폐허가 된 절터다.

먼저 원주시 부론면에 있는 거돈사지(사적 제168호)를 찾았다. 석축을 비집고 자란 수령 1000년이 넘는 느티나무가 거돈사지임을 알려주고 있다. 너른 절터에 수수한 자태의 삼층석탑이 오랜 세월 동안 묵묵히 폐허를 지키고 있다.

거돈사지는 발굴조사 결과 신라 말기인 9세기에 처음 지어져 고려 초기에 확장·보수되어 조선 전기까지 유지된 것으로 밝혀졌다.

원주 거돈사지 삼층석탑(보물 제750호)은 2단의 기단위로 3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 석탑이다. 2단의 기단구조와 기둥 모양의 새김, 5단의 지붕돌 받침 등으로 수법으로 보아 9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다만, 특이하게 돌로 된 축대 안에 흙을 넣고 그 위에 탑을 세운 것이 특이하다. 탑 앞엔 활짝 핀 연꽃이 조각된 배례석이 놓여있다.

거대한 느티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절터를 보노라면, 석탑 뒤에 금당 터 중앙에는 부처님을 모셨던 약 2m의 화강암 대불좌가 있다. 석탑과 산기슭에 서 있는 승탑 사이에는 사찰건물의 주춧돌과 터가 잘 남아 있다.

산기슭에 있는 거돈사 원공국사탑(보물 제190호)은 2007년에 복원된 것이며, 실물은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있다. 이 승탑은 고려 태조 13년(930)에 출생하여 현종 9년(1018년)에 88세로 입적한 고려전기의 고승 원공국사 지종의 사리탑이다. 평면 8각으로 팔각원당형으로 신라 승탑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이곳에 앉아 절터를 바라보면 단아함과 고즈넉함을 느낄 수 있다.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비(보물 제78호)는 원공국사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고려 현종 16년(1025년)에 세운 것으로, 당시 ‘해동공자’로 불리던 최충이 글을 짓고, 김거웅이 해서체로 글씨를 썼다. 거북의 머리는 용의 머리 모양이라 설명이 되어있으나 양머리 같았다. 등에 새긴 무늬는 정육각형에 가까우며, 육각형 안에는 卍자와 연꽃무늬를 돋을새김하였다.

 

원주 법천사지는 사적 제466호로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에 위치하고 있다. 고려 문종 때 당대 제일가는 고승이었던 지광국사 해린이 젊은 시절 승려의 길로 들어선 곳이자 말년에 입적한 곳이다. 법천사는 통일신라 때 창건되어 고려 시대에 이르러 크게 번창했고, 임진왜란 때 폐사되었다고 한다.

법천사지는 아직 발굴 중인 구간이 많다. 곳곳에는 대규모 절터에서 나온 주춧돌을 비롯한 돌무더기들이 흩어져 있다.

사용 용도를 잃어버린 농가의 퇴색한 건물 근처에 자리잡고 있는 당간지주(강원도 문화재자료 제20호)를 찾았다. 이 당간지주는 고려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전체적으로 간결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당간지주를 보고 나오면 오른쪽 산기슭에 잘 다듬은 몇 단의 석축을 쌓고 맨 위에 세워진 지광국사탑비를 만날 수 있다.

고려시대의 스님인 지광국사 해린(984~1070)의 유해를 모신 지광국사탑(국보 제101호)은 이름이 현묘이다. 984년 원주에서 태어난 스님은 승려로서 최고지위인 왕사, 국사가 되어 온 백성과 왕의 존경을 받았다. 1070년 10월에 스님은 입적하였고 이후 1085년에 승탑을 건립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오사카로 무단 반출되었다가 반환되었다. 이후 경복궁 내 국립 고궁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다가 보존처리를 위해 현재 대전에 있는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있다. 보존처리가 끝나면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로 결정되었다. 지난 6월 22일에 국보 제101호 지광국사현모탑 환수 축하 음악회 ‘백년의 기다림’의 개최한다는 현수막이 아직 남아 있다.

홀로 남아 옛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지광국사탑비(국보 제59호)는 고개를 바짝 들고 서쪽을 응시하고 있다. 비는 거북 받침돌 위에 까만 비석을 등에 업고 왕관 모양의 머릿돌을 올린 모습이다. 거북 받침돌의 얼굴은 용의 형상이며 턱 밑에는 기다란 수염이 달려있고 등에는 왕(王)가 새겨 있다. 옆면에는 구름과 어우러진 두 마리의 용을 사실적으로 조각하였다.

법천사지 답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흥원창이란 큰 표지석이 서 있는 남한강을 만난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보관하였다가 서울의 경창으로 옮기던 곳이다. 흥원창은 강원도의 원주·평창·영월·정선·횡성·강릉·삼척·울진·평해 등지를 관할하여 세곡을 운반·보관하던 곳이다. 수로 교통의 요충지로서 번화하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강변을 따라 자전거 도로가 놓여있는 한적한 곳으로 변하였다.

 

흥법사지는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섬강 옆에 위치한다. 섬강은 경기도와 강원도가 접한 지점에서 남한강과 합류하니 같은 물줄기로 봐도 상관없다. 밭으로 둘러싸인 공터에 흥법사지(강원도 문화재자료 제45호)가 있고,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보물 제463호)와 삼층석탑(보물 제464호)가 이 절터를 지키고 있다. 흥법사는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진공대사탑비로 보면 신라말에 창건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조선 숙종 때 도천서원을 건립하였다가 폐지된 곳이기도 하다.

흥법사지 진공대사 탑비는 신라말에서 고려 초에 활약한 진공대사(869~940)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현재 거북 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고, 비문은 깨어진 채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거북 받침돌은 용의 형상이며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다. 등에는 이중의 육각형 속에 卍(만)자와 연꽃이 새겨져 있다. 머릿돌에는 구름무늬 속에 두 마리 용이 얽혀 서로 노려보고 있다.

흥법사지 삼층석탑은 2중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갖춘 고려시대 탑이다. 기단과 탑신의 불균형이 눈에 띄며, 돌의 구성이나 조각 수법이 소박한 점으로 보아 고려전기에 세웠을 것으로 보인다. 석탑의 일부가 깨지고 새로운 돌로 교체되어 있지만, 무심한 듯 서 있는 탑과 탑을 둘러싼 풍광을 바라보면서 옛 영화를 생각해 본다. 흥법사지가 발굴되어 절의 전모를 알 수 있게 되고, 국립 중앙박물관에 있는 (전)흥법사지 염거화상탑(국보 제104호)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 및 석관(보물 제365호)이 제자리에 돌아와 흥법사지를 채우는 날을 기대해 본다.

 

 

김태석 기자  wally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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