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 작가의 작업은 어린 시절 아버지 서재에서 맡았던 오래된 책 냄새의 기억으로부터 출발한다. 오래된 책들이 쌓여 발산하는 냄새와 아버지의 냄새가 뒤섞인 그 안에서 작가는 많은 상상을 할 수 있었다. 이처럼 진한 경험으로 작가는 타고난 예민한 후각을 사용하여 대부분의 경험을 기억하게 된다.

요란한 냄새, 캔버스에 과슈, 116.8×91cm, 2019. [사진=아트스페이스 휴]

김지수 작가는 개인전 ‘풀 풀 풀-향’을 9월 16일부터 11월 19일까지 파주 아트스페이스 휴에서 열고 있다.

이번 전시에 후각이 예민한 작가의 근원을 묻는 ‘유전감각’과 작업실에 불이 났던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한 ‘냄새나무’ 드로잉 시리즈, 작가의 아버지가 실제 사용한 낡은 서류 가방과 이끼로 작업한 설치작품 ‘아버지와 나’ 등을 선보였다.

유전감각, 52.3×41.2cm, 종이 위에 펜, 2019. [사진=아트스페이스 휴]

‘유전감각’은 가족의 체취를 채집하여 작은 유리병에 넣고 가까이 갔을 때 관객이 이 냄새를 맡을 수 있도록 설치한 작업이다. 작가는 체취를 맡았을 때 떠오르는 인상을 시구로 적어 표현하였다. “태초의 이끼로 뒤덮인 숲에서 방금 걸어 나온듯한 체취”,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마음의 냄새”, “일만 년 된 원고지와 원고지 사이에 흐르는 공기의 깊고 넓은 냄새”, “새하얀 노트에 고급잉크로 써내려간 시의 냄새”.

작가는 직접 조향한 향을 전시장 전체에 퍼지게 하고 이를 “겹겹이 퇴적된 동굴 속의 빛을 타고 흘러나오는 냄새”로 명명한다.

김지수 작가는 작가노트에서 “나는 감각이 많이 발달되어 있다. 그 중에서 후각이 특히 발달하여 어린 시절 형제들 사이에서 별명이 ‘개코’였다.”며 “내가 기억하는 가장 특별한 냄새는 역사학자인 ‘아버지의 서재’ 냄새, 그리고 그가 정원에서 나무를 손질할 때 쓰던 오래된 가위의 손잡이 냄새이다. 아버지의 서재에서는 오래된 책 냄새와 아버지의 체취가 섞여 묘한 향이 났고, 나는 가끔 서재에 혼자 들어가 책을 보거나 상상하길 즐기며 그 냄새공간을 점유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아버지의 ‘서재’와 ‘정원’이 작업을 하는 영감의 원천이자 ‘유전감각’의 출발지이라고 밝혔다.

아버지와 나 이끼, 서류가방 2019, [사진=아트스페이스 휴]

김지수 작가는 오래 전 식물학 전공자와 융합 프로젝트를 할 때 식물 실험실에 처음 들어선 순간 식물의 다양한 냄새를 맡았던 기억에서 영감을 얻어 식물추출물을 활용하여 식물과 사람이 ‘냄새’로 교감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올해 5월에는 우연히 참여한 퍼포먼스 워크숍에서 김지수 작가는 자연스럽게 손, 정수리, 목, 발 등 신체의 냄새를 맡는 퍼포먼스를 했다. 그는 “그때 퍼포먼스 상대의 체취를 언어로 표현하면 마치 ‘태초의 이끼 숲에서 방금 걸어 나온 냄새’ 같았다.”며 그날의 경험 이후 그는 지인들의 냄새를 상상하며 마치 ‘시’처럼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글을 쓰며 체취를 채집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냄새나무, 2019. [사진=아트스페이스 휴]

“이번 전시는 나의 ‘감각’의 근원에 대하여 묻고 탐색하는 ‘유전감각’에 대한 작업과 함께 다양한 생태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곳의 냄새를 맡고 채집하는 여정에서 드러난 회화와 드로잉으로 구성되어 있다. 근원적인 감각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와 세계가 ‘냄새’라는 감각으로 마치 ‘생명의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이러한 ‘냄새’는 나에게 다른 생명체와의 교감과 동시에 과거와 현재, 미래의 삶을 연결해 주는 매개라고 할 수 있다.”(김지수 작가 ‘작업노트’)

‘냄새나무’는 작업실에 불이 났던 사고를 계기로 무언가 탔을 때 나는 냄새, 그을림 등의 강렬한 기억을 바탕으로 제작한 작업이다.

전시장. [사진=아트스페이스 휴]

아트스페이스 휴 김노암 디렉터는 전시 서문에서 “김지수 작가는 냄새 분자들의 운동을 엔트로피(Entropie)로 이해한다. 동물과 사람과 식물의 흔적이 향기의 숲을 이루고 자연과 사회, 역사, 숲과 인간의 생(生)이 교차하는 사건, 세계를 인간의 후각, 냄새로 기록하고 표현한다.”며 “이번 전시는 가족의 체취를 채집한 ‘유전감각’ 설치작업과 ‘냄새나무’ 드로잉을 통해 예측할 수 없는 향의 운동을 은유하는 작업을 선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방으로 솟아오르고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햇빛과 물과 공기가 만나는 생명력이 넘치는 모습이다. 그것은 식물이기도 하고 동물이기도 하며 인간의 정신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김지수 작가는 성신여자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석사(미술교육전공), 단국대학교 대학원 조형예술학과에서 미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곱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다수의 기획전에 참가했다.

■전시개요

-전시명 : 김지수 개인전: 풀 풀 풀-향
-전시 기간 : 2019. 9. 16. ~ 11. 19. (월-금요일 10-18시)
-전시 장소 : 아트스페이스 휴(경기도 파주시 광인사길111, 301호)
-전시 문의 : 전화 031-955-1595

정유철 기자  hsp3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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