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천재 최치원을 제향 하는 사당, 지산재에도 봄기운이 완연하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다는 말이다. 절기상으로는 분명 봄이지만 추운 날씨가 이어지거나, 좋은 시절이 왔어도 상황이나 처지가 여의치 않을 때 은유적으로 쓰는 말이다.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휩쓸고 다니는 요즘이 딱 그렇다.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일상을 잃어버린 지 벌써 두 달이 지나갔다. 이런 인간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계절의 시계는 어김없이 봄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지산마을 입구에 피어있는 홍매화

지금으로부터 1100여 년 전 신라 말 혼돈의 시대. ‘위대한 신라’를 재건하고자 했지만 기득권 세력과 신분제의 높은 벽을 뛰어넘지 못한 비운의 천재 최치원을 제향 하는 사당에도 봄기운이 완연하다.

광주광역시 남구 백운동에서 도심을 빠져나와 효천역을 거쳐 나주시와 경계를 잇는 도로를 지나다 보면 멀리 '지산재'란 표지판이 보인다. 남평 쪽으로 고개를 넘어 그 길로 우회전하여 철도 건널목을 건너면 약 이십여 가구의 조그만 마을이 나온다.

지산재 솟을대문

지산재 내삼문. 이문을 통과하면 고운 최치원 선생을 배알 할 수있다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 지산마을이다. 입구에 있는 낙락장송들이 유서 깊은 마을임을 알리듯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대숲을 끼고 좌측에 잘 꾸며진 사당이 고풍스러운 자태로 자리하고 있다. 이곳이 신라 말 대학자이며 문장가, 경주 최 씨(慶州崔氏) 시조인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857 ~ ?) 선생을 배향하고 있는 사우(祠宇), 지산재(芝山齋)다.

지산재는 조선 영조 13년(1737)에 지은 사당이다. 이 고장 후손들이 영당을 세워 최치원 선생의 초상만을 모셔왔으나, 헌종 12년(1846)에 '지산사(芝山祠)'에 강당을 지어 개설하면서 최치원을 중심으로 19 세손(世孫)인 최운한·최형한 형제와 약포 정오도를 포함해 네 분을 모셨다.

고독한 구름, 최치원의 영정을 모시는 지산영당

신라 말 대학자이며 문장가, 경주 최 씨(慶州崔氏) 시조인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857 ~ ?) 의 영정. 지산영당에 모셔져 있다

그 뒤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지산사도 훼철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그 후 고운(孤雲) 선생의 영정만 봉안해 오고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22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지산재는 당시 서원의 강당으로 사용된 건물이다.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지어졌다. 정면 중앙에 서예가 고당 김규태가 쓴 '지산재'란 현판이 걸려 있다. 대부분의 서원들이 그렇듯이 지산재도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앞쪽에는 학문의 공간을 뒤에는 제향의 공간을 배치했다.

지산재는 당시 서원의 강당으로 사용된 건물이다.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되어 있다

강당 중앙에 서예가 고당 김규태가 쓴 '지산재'란 현판이 걸려 있다

강당 양편 좌우로는 동재와 서재가 배치되어 있다. 모두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책 두 권을 세워 서로 맞대 놓은 형태의 맞배집이다. 영당은 내삼문을 지나 후정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운 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부연(浮椽)이 있는 겹처마 집이다. 지산재는 조선시대 후기 영당과 서원이 함께 있는 형태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임영열 기자  youngim147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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