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문화재단 조상열 대표

사람은 줄을 잡고 태어나서 줄에 의존해 살다가 줄에 매어 저 세상으로 떠난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삶의 여정(旅程)이 광대들의 외줄타기 곡예와 다를 바가 없는 탓에 인생을 하나의‘줄’로 표현해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탯줄을 자르자마자 사립문에 고추와 숯으로 금줄을 걸어 한 생명의 출생을 알리는 것이 우리의 옛 풍습이었다. 탯줄을 잡고 태어나 금줄을 매는 것은 세상에 줄을 섰다는 존재를 알리는 것이지만, 여기에 갓 태아난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줄은 없다. 옛 글에‘아버지가 어머니를 통해 나를 낳으셨다(父生我身)’라고 할 때 이미 부모 자식 간의 혈연 줄이라는 운명의 줄이 정해진 것이다.

친족과는 혈연 줄, 학습기에는 학연 줄, 성인이 되어서는 청실홍실로 맺어진 혼연(婚緣)의 줄이 생긴다. 때문에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보다 더 좋은 연줄을 찾아 동분서주 평생을 줄서기를 하며 줄과 살아가야 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인생인 셈이다.

초짜들은 선배들의 줄을 잘 잡아야 성장하기가 쉽고, 시골에서 서울로, 중앙에서 지방으로 처음 개척하는 일이라면 인적 네트워크, 곧 줄을 찾아 대야 실마리가 풀린다. 그러고 보면 원하든 원하지 않던 거부할 수 없는 다양한 인연의 줄에 엮여 살다가 천수를 다하면 결국 관(棺)이라는 줄에 묶여 저승길로 가는 것이 운명이 아닌가. 결국 자신을 묶어 맨 운명의 줄이 어떠한가에 따라 인생의 성패가 갈린다. 이쯤이면 인생을‘외줄타기 곡예’라 할 만하지 않는가.

‘외줄타기’하면, 2005년 말 개봉되었던 이준익 감독의‘왕의 남자’가 떠오른다. 7개월여 동안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면서 관객 천만 명을 돌파하는 흥행을 이룬 영화다. 이 영화의 명장면은 단연 외줄타기 장면으로 관객들의 뇌리에 명확하게 각인되었다. 외줄타기를 보는 관객들은 감우성이 실제로 줄을 탔는지 의아해 할 정도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사실 감우성은 세계적 줄타기 권위자인 권원태 명인에게 일 년여 동안 직접 사사했다고 한다. 그 결과 실제로 5미터 상공의 외줄에서 능숙하게 춤추며 걷는 수준급의 실력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농경 사회의 아름다운 전통관습으로 줄다리기가 있다. 이때 줄은 반드시 암줄과 수줄을 꼬아 만들었는데 이는 음양의 결합으로 생산과 풍요, 대동단결하는 협동심과 애향심을 갖게 하는 놀이였다. 대보름을 전후하여 마을단위 단체경기로 행해진 줄다리기는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 함께할 수 있었고, 승부를 가리는데 목적을 두지는 않았다. 때문에 승부를 빨리 짓지 않으려고 줄을 늦추고 당기는 소위‘밀당’을 하면서, 하루 종일 또는 며칠 씩 즐기는 줄 놀이였다.

‘인생은 줄이다’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삶 자체가 줄이요 줄다리기이다. 그 줄이 새끼줄인가, 동아줄인가, 아니면 고래심줄인가에 따라 운명이 갈린다. 이를 실감한 사람들은 일평생‘줄 타령’을 하면서 줄을 찾아 헤매고 또 줄다리기를 한다. 힘이 없는 자일수록 안전한 고래심줄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미 고래심줄이라는 기득권의 줄을 잡고 있는 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그 줄을 놓지 않으려 애를 쓴다. 세상 사람들이 줄서기에 안간힘을 쓰는 이유이다.

‘인간(人間)’이라는 말은 사람과 사람의 사이, 곧 관계(關係)이자 줄이다. 하늘 길, 육지 길, 바닷길은 물론 세계를 하나로 소통하는 SNS 등 다양한 네트워크가 동서남북 상하좌우로 모두를 묶어내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하루하루를 보이지 않는 줄에 얽기고 설키며 살아간다.

어디든 이권(利權)이 있는 곳이면 줄을 세우고, 줄을 잡으려고 줄서기를 하는 사람이 많다. 줄에도 공(公)줄과 사(私)줄이 있다. 공줄은 모두를 살리는 줄이고, 사줄은 나와 사회를 죽이는 줄이다. 사욕이 눈을 가려 공줄과 사줄을 구분 못한 채 덤비다보면 결국 패가망신으로 생명 줄이 끊어진다는 것은 불변의 법칙이다. 세상에는 꼭 좋은 줄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운을 불어넣어 살게 하는‘구원의 덕줄’이 있는 반면, 죄인을 옭아매는 오라줄 같은‘비극의 줄’도 있다.

세상사람 누구나 탐내고 끊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줄은 돈줄이다. 하지만 줄 중에 가장 소중한 줄은 밥줄이요, 생명 줄이다. 돈줄, 밥줄은 곧 생명 줄과 직결된다. 생명 줄이 질기기를 누구나 간절히 소망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며 한낱 인간의 힘으로 될 일인가.

허나 인연 줄을 소중히 여기고, 더불어 베풀고 적덕(積德)하기를 평생의 업줄로 삼는다면 인생줄타기, 멋드러진 한판 공연이었다고 할 만하지 않겠는가. 어느 영화의 마지막 대사였던가.“그래! 징한 놈의 이 세상, 한판 신나게 놀다 가면 그뿐.”

조상열 발행인  ddmh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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