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재 지정문화재
어린 단종의 비극 품고 굽이도는 서강단종의 눈물이 머문 청령포
김낙현 기자 | 승인 2020.07.08 15:46

동강이 굽이치는 강원도 영월은 단종의 비극을 품는 고장이다. 2008년 12월 국가지정 명승 제50호로 지정되었다.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상왕으로 있다가 1456년 박팽년, 성삼문 등 사육신들의 상왕복위의 움직임이 사전에 누설되어 모두 죽 음을 당하는 사육신 사건이 일어나고 다음해 인 1457년 노산군으로 강봉 되어 첨지중추원사 이득해 가 거느린 군졸 50인의 호위를 받으며 원주,주천을 거쳐 이곳 청령포에 유배되었다.

청령포는 동,남,북 3면이 물로 둘러쌓이고 서쪽으로는 육육봉이라 불리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있어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밖으로 출입을 할수 없는 섬 과 같은 곳이다,

단종은 이 적막한 곳에서 외부와 두절된 유배생활을 했으며 당시에는 이곳에 거처할 수 있는 집이 있어 호장 엄홍도는 남몰래 밤이면 이곳을 찾아 문안을 드렸다고 전한다,

그 해 뜻밖의 큰 홍수로 강물 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기게 되니 단종은 영월 동헌의 객사인 관풍헌 으로 옮겨야 했다. 이곳에서 시를 지으면 마음을 달랬지만 금성대군이 단종복위를 시도하다 사형을 당하고 얼마 후 단종도 세상을 떠났다. 세조실록에는 “노산군이 이 소식을 듣고 스스로 목을 매어 죽으니 예로써 장사 지냈다”라고 기록 되었다. 그러나 야사가 전하는 것은 너무 다르다. 금부도사 왕방연이 세조가 내린 사약을 들고 단종을 찿았으나 단종이 사약을 거부하고 방으로 들어가 스스로 목을 매어 숨졌다고 전한다. 결국 세조에 의해 죽는 것이다. 단종의 시신은 오랜시간 동안 방치되었다가 엄홍도가 시신을 거두어 제사를 지내고 조 그만한 무덤을 만들었다, 그 후 60년 뒤 중종 때 처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노산군의 무덤을 찿은 과정에서 밝혀졌다. 이후 120년 뒤 숙종 때 장릉이란 능 호를 받고 왕릉으로 대접받았다. 단종의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관풍헌은 현재는 조계종 보덕사에서 포교당으로 이용하고 있고 마당 건너편에는 단종이 자주 올라 시를 읊었다는 자규루가 남아 있다.

 자    규  시 

원통한  새가 되어 궁궐을 나온 후로 

 

외로운 그림자  산중에 홀로 섰네

 

밤이 가고 밤이 와도 잠 못 이루고

 

해가 가고 해가 와도 한은 끝이 없어라 

 

두견새 소리 그치고 조각달은 밝은데

 

피눈물 흘려서 지는 꽃이 붉구나 

 

하늘도 저 하소연 듣지 못하는데

 

 

김낙현 기자  nak1090@naver.com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낙현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광주광역시 남구 중앙로 87, 12층(케이비씨방송빌딩) | 대표전화 : 062-674-6568 | 등록번호 : 광주 아 00227 | 등록일 : 2016.02.19
발행인 및 편집인 : 조상열 | 발행 : 사단법인 대동문화재단 | 사업자등록번호 : 410-82-11184  |  청소년보호책임자 : 조상열
Copyright © 2020 채널코리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chkorea95@hanmail.net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