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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뭣고?잊혀져가는 근대문화의 상징
이근섭 기자 | 승인 2020.11.17 08:53
이 뭣고?
화강석으로 정교하게 쌓은 장성 북일면 신흥리 급수탑

철도용 급수탑은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시설이다. 증기기관이 디젤엔진으로 바뀌면서 급수탑에 대한 필요성과 그에 대한 인식이 잊혀져갔다. 우리나라 철도용 급수탑은 1911년 설립시기부터 1950년 축조된 수원역 급수탑에 이르기 까지 전국적으로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하얀 수증기를 내 뿜으며 요란한 소리로 경적을 울리며 달리던 철마의 시대가 있었던 것이다. 현재 전국에 남아있는 철도용 급수탑은 20여기이다. 이중 9기가 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1911년 우리나라 최초로 축조된 연산역 급수탑. 원형이 남아있다.

급수탑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급수탑은 1911년 축조된 연산역 급수탑이다. 함평에도 1921년 건립된 구 학다리역 급수탑이 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그리고 장성에도 신흥리 급수탑이 있다. 호남선 철도가 1914년 1월 22일 전구간이 개통되었는데 이점을 감안하면 신흥리 급수탑은 1910년대 말이나 1920년대 초에 건축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들의 공통점은 철근콘크리트 건축이 아닌 화강암으로 쌓은 석조 급수탑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에 3기 뿐이다. 석조 급수탑은 하부 기계실은 화강석 구조로 구축되었으며 상부 물탱크 실은 철판으로 제작되어 기계실과 물탱크실이 분리된 형태이다.

신흥리 급수탑 아치형 출입구 내부에서 바라본 가을 풍경

신흥리 급수탑은 현재 상부 물탱크가 남아있지 않고 높이는 약 9m정도이다. 몸체는 화강석으로 외곽 테두리를 정교하게 다듬어 바른층 쌓기를 하였다. 출입구는 원형 아치를 돌출시켜 표현한 점이 특징이다. 원통형으로 상부로 올라갈수록 체감율이 줄어드는 안정감 있는 형태가 마치 첨성대를 보는 느낌이 든다. 출입구 아치의 높이는 3m이며 탑의 몸통에는 여러개의 창이 있다. 이는 석조 급수탑 3기가 매우 유사한 형태이다.

국가등록문화재 제63호. 함평 구 학다리역 급수탑

급수탑은 철로 옆에 건립하여 물을 쉽게 공급받기 위한 우물을 두고 있으며 철도의 상황에 따라 위치나 높이가 다르다. 급수탑의 급수원리는 우물에서 펌프를 통해 급수탑 위에 있는 물탱크까지 물을 끌어 올려서 고저낙차 수압을 이용하여 땅 밑으로 연결된 지하관을 통해 급수전까지 보내진다. 열차가 도착하면 급수전 밸브를 열어 열차의 물탱크에 물을 보충하는 것이다. 물은 증기기관차의 원동력이었기에 급수탑의 역할이 중요했다.

장성 신흥리 급수탑 원통형 내부 모습

연산역 급수탑, 함평 구 학다리역 급수탑, 장성 신흥리 급수탑을 제외한 1920년대 이후의 급수탑은 모두 철근콘크리트로 이루어져 있다. 철근콘크리트 급수탑은 1920년대에 등장한 건축 유형으로 당시 첨단 재료와 축조기술을 기반으로 하였다. 이 탑들은 내부의 공간구성은 물론 외부 형태와 기능까지도 콘크리트로 통합하는 일체형으로 변화되었다. 근대문화의 상징이었던 급수탑은 오늘날 종종 지방의 경관을 나타내기도 하며 도시속 구조물로 남아있다.

이근섭 기자  rmstjq2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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