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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영심의 '그늘'(평설 정재영 장로)
기독교한국신문 | 승인 2015.12.08 08:22

내가 눕는 곳은 바람만 사는 곳
내 몸 속에선 피 조금씩 빠져 나가고
눈물 조금씩 달아나더니
목 잘린 빛의 텅 빈 고요로만 누워있는 맨몸의 고요
절망의 가장자리 그 어두운 외진 곳

누가 나를 이렇게 눈멀게 하나
누가 나의 깊은 잠을 흔들고 가면서
젖은 꿈 마디마디 잘라내나

나의 외침은 들리지 않는 돌의 울음
너의 슬픔은
어둠 내리는 속의 뿌리 묻어가는 안개풀?

나의 아물지 않는 상처를
언 가슴 녹이는 그 뜨거운 갈망의
햇빛 입술은 어디 있나

빛을 그리워하는
나는 꽃의 주검만 쌓아두는
언제나 어두운 곳간.

   
▲ 정 재 영 장로
사물을 노래하는 것과 정서(관념)를 노래하는 것은 묘사나 표현이라는 용어로 구분한다. 후자는 회화에서도 표현주의라 불리는데 심리학의 발달로 생긴다. 그 경향은 무의식의 언어체계를 다루는 현대시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지금 많은 작가들이 시도하는 아방가르드적인 현대시의 특징의 하나는 언어가 지시하는 의미의 다양성을 허락하는 태도다. 즉 수용체에 의한 해석의 다양성으로, 언어가 일차적으로 직접 지시하는 의미를 거부하고, 수용자가 각각 해석하라는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 표현주의와 동일한 맥락을 하고 있다. 즉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유의 자유가 존재한다.

예시의 시제인 ‘그늘’을 해석함의 단초를 찾아내기 위해 몇 개의 단어를 빼내어 생각해보기로 한다.
그 그늘은 ‘바람만 사는 곳’으로, ‘절망의 고요와 어둠의 외진 곳’이다. 그곳은 ‘아물지 않는 상처’를 가진 화자와 ‘꽃의 주검’만 있는 장소다.

바람과 고요, 그것은 논리적인 모순이다. 역시 상처와 꽃도 마찬가지다. 그런 모순된 곳이 바로 그늘진 곳이다. ‘상처로 죽은 꽃의 무덤’과 같은 절대적 고요만 있는 실존의식의 장소다. 그곳은 햇빛이 상실한 존재의식의 현장이다. 그것이 내면의식이든 아니면 현실 속 현장이든 포괄적이어서 중의성(重義性)을 가진다. 이런 중의성을 중요시 하는 현대시 특징을 애매성(ambiguity), 모호성(obscurity), 막연성(vagueness)으로 불린다. 이것을 굳이 구분하여 설명한다면 시어가 가지는 언어의 애매함, 지시하는 존재의 특징인 모호함, 문학의 특징인 허구로 인한 막연함이다. 모두 난해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경향은 겉으로 드러낸 의식이 보다 본연에 침전한 무의식 세계가 더 진실하다는 심리학적 이론의 토대를 가진다.

한국기독교시인협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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