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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임의 '기러기'(평설 정재영 장로)
기독교한국신문 | 승인 2015.12.29 07:38

매년 시린 날을 골라
꺼억 거리며 날아간다
가는 걸음 아프다한들
남겨진 여운만 하리요
손을 흔들어도 보지 못하고
까만 가슴도 헤아리지 못하여
쓸쓸한 늦가을이 올 때마다
그렇게 스쳐갈 뿐이다

   
▲ 정 재 영 장로
시의 기본 구조는 은유로 된 형상화다. 은유란 숨긴 비유라는 말이다. 즉 감추어 둔 의미가 있으니 그리 알고 읽어달라는 의도를 깔고 있다는 점이다.

예시는 기러기를 보고 감각하는 정서다. 그것은 불가시적인 것이다. 이것을 드러내 보여주는 일을 표현이라고 하는데, 시에서는 그 자체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정서는 숨기고 감각적인 형태인 형상화로 만들어야 된다. 이 말을 엘리엇의 ‘정서로부터 도피’라는 용어로 불린다.

‘시린 날’ 이란 말은 날씨의 온도가 아니다. 이가 시리거나 무릎이 시린 것처럼 내적인 반응을 말한다. ‘꺼억’거린다는 말도 마찬가지로, 속에서 나오는 신체의 반응의 소리다. 화자는 기러기가 날아가는 늦가을의 정서만이 아닌, 심리적 늦가을이 주는 내적 감정을 말한다.

또한 ‘가는 걸음 아프다’ 하는 것도 실은 떠난 것 보다 남아 있는 자신의 입장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을 더 한 바퀴 돌려, 남아 있는 사람이 느끼는 아픔이 더 크다는 것이다. 이것을 역설이라 하며, 현대시의 중요한 요소다.

손을 흔들어 외부적인 표시를 하거나, 내면의 속을 열어 속을 태워 검게 된 화자의 속마음을 보여주어도 그 감정을 남은 잘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감정이 무엇인가는 숨겨 놓고 있다. 기러기를 통해 느끼는 늦가을의 보편적인 정서거나, 사람의 별리(別離)에서 오는 애린이거나, 또는 누구나 도사리고 있는 본질적인 고독일 수도 있다. 마지막 행의 ‘스쳐가’는 말을 보면 그것은 자기 치유가 가능함을 짐작케 하는 아픔이다. 어떤 것으로 해석해도 모두 수긍이 가는 빈 칸이다. 시에는 정답은 없고, 현답이 있을 뿐이다. 전자는 자연과학의 영역이고 후자는 인문학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한국기독교시인협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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